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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장수풍뎅이 한 마리 1만원… 곤충이 아니라 가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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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곤충 14종 가축으로 인정

조선일보

'퇴치' '박멸' '해충'…. 인터넷 검색엔진에서 곤충을 입력하면 함께 뜨는 연관 검색어들이다. 곤충은 죽이거나 없애거나 쫓아야 할 존재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곤충 활용도는 급증했다. 식용·농업·애완…. 자연스레 호감도 역시 우상향 그래프를 그린다. 곤충은 미래 대안식량으로 꼽힌다. 집에서 아이들은 곤충을 애완용으로 키운다. 의약품·화장품 개발에도 활용된다. 농약 대신 해충을 제거하는 천적 곤충과 식물 꽃가루를 매개해주는 화분 매개 곤충은 친환경기술로 주목받는다. 정부는 지난 7월 갈색거저리·장수풍뎅이·흰점박이꽃무지 등 곤충 14종을 축산법에 따른 가축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곤충 사육 농가는 취득세·지방교육세 50% 감면, 농어촌특별세 비과세 등 각종 지원을 받는다. 가축으로서 곤충은 어떻게 사육될까. '아무튼, 주말'은 식용·애완용 곤충 농장에서 곤충 축산 과정을 체험했다.

가축으로 신분 상승한 굼벵이

충북 옥천군의 한 굼벵이 농장. 논밭 사이에 120평(396㎡) 규모로 지은 농장은 고요했다. 다른 가축 농장이 멀리서부터 분뇨 냄새와 동물 소리로 그 존재를 드러내는 것과는 180도 달랐다. 실내화로 갈아 신고 농장 안으로 들어갔다. 오와 열을 맞춘 선반 위로 굼벵이가 들어 있는 25L 크기 반투명 플라스틱 상자가 쌓여 있었다. 상자마다 굼벵이 150~200마리 정도가 자라고 있었다. 농장보다는 저장 창고처럼 보였다. 상자 하나를 열어 들여다보니 흰 굼벵이 100여 마리가 힘차게 꿈틀거렸다. 굼벵이 50만 마리를 키울 수 있는 규모의 농장이다. 4년째 굼벵이 농장 '여가벅스'를 운영하는 여진혁(36) 대표는 농장이 깔끔하다는 칭찬에 이렇게 대답했다. "굼벵이는 식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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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수풍뎅이 수컷(왼쪽)과 암컷. 2 김성윤 기자가 애완용 곤충 농장 ‘곤충하우스’에서 장수풍뎅이 선별 작업을 하고 있다. 3 조유진 기자가 식용 곤충 농장 ‘여가벅스’에서 굼벵이를 수확하고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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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굼벵이의 탄생부터 수확까지 체험했다. "굼벵이 사육은 어렵지 않아요. 벌레가 왜 벌레겠어요.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거든요." 흰점박이꽃무지 성충이 톱밥 사이에 낳아 놓은 알을 받아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알과 성충이 분리됐다. 성충을 식용으로 쓰진 않지만, 3일에 한 번씩 알을 받아내기 위해 키운다고 했다. 성충은 등에 흰색 무늬가 있는 풍뎅이다.

분리한 알은 굼벵이의 먹이인 발효시킨 나무 톱밥에 넣어줬다. 여 대표는 "알이 알아서 큰다. 크는 동안 손이 거의 안 간다"고 했다. 사육 시설은 굼벵이가 가장 잘 크는 온도인 섭씨 28도로 유지한다. 조그만 알이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굼벵이로 클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두 달에서 두 달 반. 다 큰 굼벵이의 '수확'도 간단하다. 상자째로 체 위에 부어 흔들면 하얀 굼벵이들만 남는다. 상자가 무겁지 않아 팔 힘이 약한 편인 기자도 쉽게 작업했다. 두 달 사이 굼벵이들은 처음 알과 함께 채워 준 톱밥을 다 먹고 똥을 만든다. 천연퇴비로 쓰이는 굼벵이 똥은 악취라기보다 흙 냄새가 났다.

수확한 굼벵이들을 두 손으로 모아 봤다. 빛을 싫어하는 굼벵이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농장에 막 들어왔을 때는 곤충이 무서워 손이 덜덜 떨렸지만, 한 시간 넘게 흰점박이꽃무지 성충부터 유충까지 계속 보다 보니 굼벵이에 대한 거부감이 덜해졌다. 이 굼벵이들은 건조되고 나서 진액이나 환으로 만들어져 판매된다. 기자가 맛본 굼벵이 진액은 한약 향이 나는 숙취 해소제와 맛이 비슷했다.

성장 가능성이 크지만, 식용 곤충에 대한 혐오감은 여전히 넘어야 할 과제다. 농촌진흥청은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애칭을 공모해 사용하기도 한다. 흰점박이꽃무지 유충의 애칭은 꽃벵이, 밀웜(mealworm)이라고도 불리는 갈색거저리 유충의 애칭은 고소애다.

하찮은 곤충? 억대 수익 올리는 곤충 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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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허물을 벗은 장수풍뎅이. 부드럽고 노란색이던 껍데기는 몇 분 지나자 짙은 갈색으로 단단하게 변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대전 '곤충하우스'의 500평(약 1650㎡) 규모 우화장(羽化場) 역시 조용했다. 축사라기보단 과학실험실에 더 가까웠다. 우화장이란 애벌레가 번데기가 됐다가 날개가 있는 성충으로 탈바꿈하는 우화(羽化) 과정이 진행되는 곳이다. 선반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고, 선반마다 32L짜리 대형 반투명 플라스틱 상자가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황규민 곤충하우스 대표는 "상자마다 장수풍뎅이 애벌레가 50마리씩 들었다"고 했다. 우화장 한편 선반에는 음료용 페트병과 비슷한 크기의 플라스틱병들이 쌓여 있었다. "사슴벌레는 병에 한 마리씩 길러요. 그러지 않으면 서로 잡아먹거든요."

곤충하우스는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 등 애완용 곤충만을 전문적으로 사육하는 농장. 한국곤충산업중앙회 회장도 맡고 있는 황 대표는 "1년에 약 20만 마리, 국내 유통되는 애완곤충의 8% 정도가 이 농장에서 나간다"고 했다.

황 대표는 곤충 사육을 '농사'라고 불렀다. "애벌레는 2000평 규모 별도 농장에서 따로 키워요. 참나무 톱밥을 뿌려 놓으면 장수풍뎅이·사슴벌레 암컷이 알을 낳아요. 봄에 알을 낳고 6~7개월쯤 지나 가을이면 애벌레를 캐지요."

캐낸 애벌레는 발효 톱밥으로 채운 플라스틱 상자에 담아 우화장 옆 저온창고에 보관한다. 섭씨 8도로 유지되는 창고에서 애벌레는 동면 상태에 들어간다. 더 이상 자라거나 변태(變態)하지 않고 애벌레 상태를 유지한다. 출시 스케줄에 맞춰 필요한 만큼씩 애벌레를 우화장으로 옮겨온다. 섭씨 25~30도 우화장에서 애벌레는 번데기 상태를 거쳐 성충이 된다. 애벌레부터 성충까지 총 45일가량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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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애 쿠키와 고소애 볶음. /조선일보DB


애벌레가 성충으로 자라 허물을 벗고 나올 때가 '추수철'이다. 탈피 직전의 장수풍뎅이들이 담긴 플라스틱 상자를 황 대표가 선반 위에 뒤집었다. 딱딱하게 굳은 톱밥이 통째로 떨어졌다. 손으로 톱밥 덩이를 헤집자 구멍마다 허물을 뒤집어쓴 장수풍뎅이가 들어 있었다. 장수풍뎅이를 꺼내 30구짜리 일반 달걀판에 한 마리씩 칸마다 올렸다. 꿈틀꿈틀 장수풍뎅이가 허물을 벗었다. 껍데기가 부드럽고 옅은 노란색이었으나 몇 분 지나자 익숙한 짙은 갈색으로 바뀌며 단단해졌다.

암컷들은 대야에 함께 두지만, 수컷들은 서로 싸우기 때문에 한 마리씩 플라스틱 통에 분리해 담는다. 힘든 건 없었지만 수컷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의 뿔이나 턱에 물리면 매우 아프기 때문에 주의해야 했다. 인터넷 쇼핑몰이나 대형마트 등으로 출고된다. 성충은 마리당 약 1만원, 애벌레는 3000원(소매가)에 판매된다.

황 대표는 "곤충 사육은 전망이 밝다"고 했다. "농사처럼 몸이 힘들지 않으면서 작은 면적에서 큰 부가가치를 내지요. 특수작물 재배라고 해봐야 500평이면 수익이 몇 백만원 정도인데, 곤충은 500평이면 억대 수익을 올릴 수 있어요. 소방관 등 극한직업 종사자 스트레스 치유 과정에도 곤충이 낍니다. 귀뚜라미 소리를 듣거나 곤충을 키우면 심리 안정 효과가 있다네요."

[대전·옥천=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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