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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주7일 학원에 내몰린 아이들 “일요일 하루라도 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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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육청 ‘학원 일요휴무제’

오늘부터 11월까지 공론화

시민 200명 토론 거쳐 도입 추진

“학생 휴식·건강권 위해 필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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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부터 학원을 다녔고, 평일엔 학원 끝나면 밤 10시예요. 주말에도 학원에 가서 영어 문장을 외우거나 독해 문제를 풀어요. 엄마에게 ‘왜 이렇게까지 공부를 해야 하냐’라고 물으면 ‘이젠 고등학교도 입시야’ 하세요.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나 싶어요. 일요일에 학원이 모두 쉰다면 그날만이라도 쉴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한 유명 학원 근처에서 만난 중학교 1학년 최정윤(가명)의 말이다. 입가가 부르튼 정윤이는 ‘학원 일요휴무제’라는 말에 잠깐 눈을 반짝거리다 ‘다음 학원’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성인도 ‘주 5일 근무’를 하는 시대에 아이들은 ‘주 7일 학습’에 내몰려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학원 일요휴무제’ 도입을 위해 ‘숙의민주주의 공론화’를 본격 시작한다고 19일 밝혔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대표적인 공약 중 하나인 ‘학원 일요휴무제’는 일요일만이라도 의무적으로 학원 문을 닫게 해 학생들에게 ‘쉼이 있는 주말을 돌려주자’는 제도다. 서울시교육청은 20일부터 시작하는 온라인·전화 사전여론조사와 함께 ‘열린 토론회’ 및 200여명의 시민참여단이 진행하는 토론을 통해 오는 11월까지 ‘학원 일요휴무제 공론화’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공론화가 ‘입시 지옥’ 속 학생들에게 ‘숨 쉴 구멍’이 되고, 학생들의 ‘여가권’ ‘휴식권’ ‘건강권’에 대한 인식 변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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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물론 고교까지 서열화되면서 해마다 사교육비는 늘고 있다. 지난해 초·중·고생 사교육비 총액은 19조5천억원으로 전년(18조7천억원)보다 8천억원이나 늘었다. 올해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20조원과 맞먹는 규모다. 영재고·과학고·외국어고·자율형사립고 등이 늘어나 ‘고교 입시’까지 과열화되면서 사교육 시작 연령이 갈수록 어려지고 심야나 주말까지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이 늘었다.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이 2017년 발표한 ‘학원 휴일휴무제 및 학원비 상한제 도입방안 연구’를 보면, 중학생 세명 중 한명인 33%가 일요일에도 학원에 다니고 있다. 특목고 입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학생들의 고교 입시에 대한 압박감과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중학교 2학년 서현수(가명)는 “주중에 10시까지 학원을 다니고 주말에도 과학·논술 학원을 다닌다”며 “과학고를 가고 싶은데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현수는 “학원 가는 것이 힘들지만 또 학원을 가지 않으면 나 스스로 나태해질까 두렵다”며 불안감도 드러냈다. 이런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끼니조차 대충 때우며 밤늦게까지 ‘공부’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18일 저녁 6시께 초·중·고 학원이 밀집한 서울 서초구 삼호가든사거리는 학원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로 북적였다. 이들 중 상당수는 초등학교 2~3학년 학생들이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지만 아이들은 집으로 가지 않고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엄마들이 시간 맞춰 주문해 놓은 김밥이나 국밥 같은 음식을 먹기 위해서다. 아이들은 15분 만에 후루룩 밥을 ‘넘기고’ 학원으로 향했다. 근처에 산다는 학부모 박예원(가명)씨는 “두 달 동안 한 학기 선행학습을 해주는 유명한 수학학원이 있는데 입학 경쟁이 치열하다”며 “초등학생이 영·수 학원만 다녀도 매일 밤 8~10시에 학원이 끝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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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뺑뺑이’로 아이들의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는 통계도 나온다. 지난 5~7월 중학교 2·3학년, 고등학교 2학년 16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강남구 청소년 사교육·정신건강 현황조사’ 보고서를 보면, 중고생의 43.1%가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감으로 신체에 자해를 했다는 응답자가 4.7%에 이르렀다. 강남 등지에 사는 청소년을 많이 상담해온 한 심리상담가는 “스트레스에 쌓인 아이들의 공격성이 학교 안에서 친구를 따돌리고 괴롭히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갈수록 그 방식도 심해지고 있다”며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성인도 주52시간제 같은 제도를 통해 과도한 노동시간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서 아이들에게 주말까지 학원을 다니라는 것은 가혹하다”고 말했다.

김진우 ‘쉼이 있는 교육 시민포럼’ 운영위원장은 “학원 심야영업 제한 논의 때도 과외 증가 등 풍선효과 우려가 있었지만, 제도 시행 후 밤 10시 이후에 학원 가는 아이들이 50% 이상 줄었다”며 “과로사에 해당될 정도로 학습 시간이 긴 학생들에게 쉬는 날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쉬는 시간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이 있지만, 수많은 뇌과학적 결과를 보면 잘 쉬어야 창의성 발달에도 도움이 되고 학습 효율도 올라간다”며 “여가나 휴식의 다양한 필요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학원 뺑뺑이 멈추려면’… 두달여 숙의 민주주의로 해법 찾는다

‘일요일만이라도 학원 문을 닫고 학생들에게 쉴 시간을 돌려주자.’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하고자 하는 ‘학원일요휴무제’의 취지는 좋지만, 효과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고교 서열화, 대학 서열화가 엄연한 현실에서 단순히 일요일에 학원 운영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냐는 문제 제기, 고액 과외 등 풍선효과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반론 등이다. 서울시교육청도 바로 조례 개정을 하기보다 ‘공론화’ 방식을 통한 숙의 민주주의로 다양한 층위의 의견 수렴을 도모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학원일요휴무제’ 공론화는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

서울시교육청이 19일 내놓은 ‘학원일요휴무제 숙의 민주주의 공론화 사업’ 내용을 보면, 최근 공론화추진위원회(7명)와 자문회의(10명)가 앞으로 진행할 공론화 방식과 일정 등 큰 틀을 확정했다. 시민참여단 200명이 두차례 토론회를 여는 것이 공론화 사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데, 좀더 다양한 의견 수렴을 위해 사전 단계를 거치도록 했다. 먼저 오는 10월15일까지 2만3500여명을 대상으로 ‘학원일요휴무제’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와 이유 등을 묻는 ‘사전 여론조사’를 하고, 9월27일과 10월22일에는 ‘사전 열린토론회’를 연다. 사전 열린토론회에서 오간 이야기들은 시민참여단의 ‘온라인 숙의’ 자료로 쓰이게 된다.

시민참여단 200명은 학생 80명, 학부모 60명, 교사 30명, 일반시민 30명으로 이뤄지며, 학생 80명에는 초등학생 10명을 포함시킨다. 이들은 먼저 웹페이지를 통해 의견을 개진하는 등 ‘온라인 숙의’에 참여하고, 10월26일과 11월9일 두차례에 걸쳐 토론회를 벌인다. 토론회에선 사전·사후 현장 설문조사, 전문가 주제 발표, 분임 토의 등이 이뤄질 예정이다. 최종적으로 공론화추진위원회가 시민참여단의 활동 결과를 근거로 삼아 권고안을 내는 구조다.

공론화를 통해 ‘학원일요휴무제’를 찬성하는 여론이 높아 도입하려고 해도 법·제도 차원의 넘어야 할 산도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학원일요휴무제’를 도입하려면 관련 조례를 제정해야 하는데, 이는 교육감의 권한에 대한 법적 다툼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학원법)은 교육감이 시·도 조례로 정할 수 있는 범위로 “교습시간”만을 규정하고 있다. 법제처는 2017년 “교육감이 시·도의 조례로 심야시간에 대한 제한은 둘 수 있지만 특정 요일이나 주말에 교습할 수 없도록 하는 ‘휴강일’은 규정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놓은 바 있다. ‘학원일요휴무제’를 도입하려면 학원법 개정이 비교적 확실한 방법이긴 하나, 이는 교육청이 아닌 국회에서 논의해야 할 사안인 것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18일 기자들과 만나 “민감한 사안이라 의견 수렴을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며, 정책화 여부는 그다음에 결정할 문제다. 다만 여론 지형은 (추진 쪽에) 유리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정보연구원이 2017년 발표한 ‘학원 휴일휴무제 및 학원비 상한제 도입방안 연구’를 보면, 중학생 75%는 물론 학부모 68%가 학원 일요휴무에 찬성했다. 조 교육감은 법·제도적 문제에 대해선 “공론화 결과에 따라 조례를 제정하는 단계로 간다면, 그 조례의 법적인 타당성을 따지는 쟁점 자체가 숙의 민주주의 과정이라 볼 수도 있다. 또 그런 과정에서 국회가 ‘학원일요휴무제’의 법제화에 나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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