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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日 고이즈미, “총리 is me!”…아베와 공생? 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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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력한 차기 총리로 거론되는 고이즈미 신지로 중의원(왼쪽)이 지난달 7일, 총리관저에서 다키가와 크리스텔 아나운서와의 결혼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 영화 '친구'를 7번이나 봤다. 아이돌 '트와이스'엔 일본인 멤버가 3명이나 된다. 양국 문화·예술 교류를 늘려야 한다."

지난해 1월,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일본 자민당 수석 부간사장이 방일한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만나 건넨 말입니다. 원 지사는 한국을 한 번도 찾은 적 없던 그에게 "초대할 테니 꼭 와 달라"고 제안했습니다. 1981년생, 우리 나이로 37살에 불과했던 자민당 내 중간급 당직자의 움직임에 일본 언론은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당시는 아베 정부가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우리 정부의 문제 제기에 극렬 반발하던 시기였습니다. "합의가 짓밟힌 느낌이다"(외무상), "합의를 1mm도 움직일 생각이 없다"(관방장관)는 등 연일 거친 말을 쏟아냈습니다. 아베 총리 역시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불참이라는 '외교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한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던 때였습니다.

이를 두고 일본 우파 잡지 '주간 포스트'는 " 한국이 아베 총리 이상 인기가 있는 고이즈미를 열렬히 환영해 '친한파'라는 인상을 부여함으로써 (아베) 총리의 허를 찌르려는 목적이 엿보인다"는 총리관저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일종의 경계감이죠. 그런데 이 잡지가 하고 싶었던 말은 마지막에 나옵니다. 고이즈미에 대해 "한국이 던져준 먹이를 역이용할 의도라면, 매우 교활한 남자"라고 평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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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와 차남 고이즈미 신지로 (사진 출처 : 고이즈미 신지로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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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뛰어넘은 고이즈미…"총리 is me!"

고이즈미의 정치력을 높게 평가하고, 심지어 그를 자민당 대표와 '동급 비교'한 이 기사는 1년 6개월여 만에 현실이 됐습니다. 보수 성향 요미우리신문이 16일 보도한 '차기 총리에 적합한 자민당 정치인' 여론조사에서 고이즈미는 또다시 1위(21%)에 올랐고, 아베 총리는 3위(17%)까지 밀려났습니다. 고이즈미의 '파죽지세'에 아베의 '굴욕'이 극명히 대비됐습니다. 하지만 시기가 문제일 뿐, 언젠가 총리까지 오를 것이라는 데 이론이 없는 고이즈미에게 날개를 달아준 인물은 역설적이게도 아베 총리입니다.

그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차남입니다. 2009년 8월, 아버지 지역구(가나가와·神奈川)를 물려받아 중의원을 내리 4선 했죠. 잘 생긴 외모와 화려한 언변, 겸손한 자세와 소신 발언 등 정치적 후광을 뛰어넘는 자체 경쟁력이 검증된 정치인입니다. 이런 그에게 아베 총리는 11일 개각에서 '전후 최연소 남성 각료'라는 타이틀까지 얹어줬습니다. 입각 바로 직전, 고이즈미가 세 살 연상 혼혈 아나운서 다키가와(瀧川) 크리스텔과 '속도위반 결혼'을 전격 발표한 장소 역시 총리 집무실이 있는 총리관저였죠. 최근 두어 달 동안 일본 방송사 주요 뉴스와 와이드 쇼 등은 고이즈미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아 안방에 전달하기 바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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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고이즈미 활용론'은 성공할까?

자민당 총재 4연임이 거론되는 아베 총리에게 고이즈미는 예비 후계자이자 견제 대상입니다. 이런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그를 깜짝 등용한 배경에 대해 일본 아사히신문은 '이미지 전략, 눈속임 발탁'이라고 평가절하했습니다. 언론의 관심이 고이즈미에게 집중되면서 '측근 중용', '친구 내각'이란 비판을 담을 그릇이 줄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 신문 여론조사(17일 보도)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개각을 전후해 6%P(42%→48%) 상승효과를 봤습니다. 비판을 희석할 목적으로 고이즈미의 젊음과 인기를 활용한 게 맞는다면 일단 성공한 셈이죠. 이제 관심은 다시 '주간포스트'가 주목한 고이즈미의 '교활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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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패전일이자 한국의 광복절인 8월 15일, 일제 침략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에 고이즈미 신지로 자민당 중의원 의원이 참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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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이즈미의 자기 정치…그 결말은?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기반이 무너지는 두려움으로 나라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단숨에 '총리급 대우'를 받게 된 고이즈미는 이미 자기 정치에 들어갔습니다. 환경상에 취임하자마자 아베 총리의 트라우마이자 급소를 겨눴습니다. "원전을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 연구하고 싶다"며 거침없이 탈(脫) 원전관을 밝혀 '원전 재가동' 기조를 내세운 총리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후쿠시마를 찾아 어민들에게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해야 한다'는 전 환경상의 발언을 사과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당장 일본 정계와 우익 내부에선 "탈원전은 비현실적이다"(스가와라 잇슈 경제산업상), "경험 부족에서 나온 발언이다"(하시모토 전 오사카 시장)는 등 '고이즈미 견제'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적어도 아베-고이즈미, 둘 다 손해 본 장사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들의 '아슬아슬한 공생'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아베의 자민당 총재 임기는 2021년 9월까지, 꼭 2년 남았습니다. 고이즈미는 여성과 무당파(특정 정당 비지지층) 지지층을 기반으로 한 '확장성'이 강점이지만, 당내 기반은 취약합니다. 파벌 정치가 횡행하는 자민당 내에서 그는 어떻게 소속 의원들의 표심을 살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영화 '친구'를 7번이나 보고, '트와이스'를 좋아한다는 고이즈미가 차기 총리가 된다면 최악의 상태가 된 한·일 관계는 어떤 국면을 맞게 될까요.

황현택 기자 (news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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