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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부모 잘 만나야 성공하는 나라'…50년간 더 굳어진 'SKY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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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년의 썸타는 경제]차트와 통계로 본 '흙수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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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아크로 광장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대하는 3차 촛불 집회가 열렸다. [이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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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 "검찰개혁 떠나 조국 자녀가 다른 대우 받는데 박탈감"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이 '상류층 카르텔'을 이용해 명문대에 진학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청년·학부모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다. 조 장관 딸은 부모 도움으로 고교 시절 의학 논문 제1 저자가 됐고 이를 통해 고려대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 무시험 입학했다는 의혹 등은 기자간담회와 인사청문회를 거쳐도 해소되지 않았다. 조 장관은 임명 직전 기자간담회에서 "'흙수저' 청년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청년들은 상류층의 고학력 대물림이 얼마나 불공정한지를 꼬집고 있다.

청년단체 '청년하다'의 유지훈 주거지원센터장은 "부모가 일류대 교수거나 재산이 많아 자녀가 성공 가도를 달린다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청년들의 노력은 무의미해진다"며 "검찰개혁 찬·반을 떠나 조 장관 자녀가 또래와 다른 대우를 받는 '사회적 불공정'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장관 딸과 평범한 청년들의 출발선은 정말 다를까.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자녀 학력과의 관계는 경제·사회학계의 오랜 연구 대상이었다. 주류 학설은 부모 학력·소득이 자녀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견해다. 청년들이 제기하는 '흙수저·금수저론'이나 '개천용 담론' 등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격차가 실제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다. 한편에선 한국 사회는 '나름대로' 불평등이 해소되고 있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다만, 학계가 의견 일치를 보이는 지점은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이른바 '스카이대학'과 의대·약대 등 상위 학과의 경우 부모 학력·소득 대물림 현상이 시간이 지나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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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아동 이미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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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생보다 80년생 이후 SKY 가기 더 힘들어졌다"



최성수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해 '한국에서 교육 기회는 점점 더 불평등해져 왔는가?'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최 교수는 이 논문에서 4년제 대졸자 부모와 중졸자 부모의 자녀 간에 벌어지는 4년제 대학 졸업 여부 격차는 1980년대 출생자부터 줄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위권 대학 졸업장을 딸 때는 이 격차가 1950년대생에 비해 1980년대 중후반 출생자로 오면서 두 배로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점점 대학 가긴 쉬워졌지만, 명문대 들어가기는 더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최 교수가 연구 목적으로 규정한 '상위권 대학'이란 10년 단위로 끊은 출생자 또래가 상위권 대학으로 평가하는 서열 15위 이내 대학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교와 상관없는 4년제 의·약학 계열 전공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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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졸자와 중졸자 자녀의 상위권 대학 졸업 가능성.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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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학력에 따른 교육 격차는 어학연수, 법학·의학 전문대학원 진학 등으로 옮겨가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최 교수는 논문에서 "한국에서 교육 기회 격차가 전문대학원 진학 등으로 영역을 바꿔가며 진화했을 뿐 전반적으로 격차가 감소했다고 평가하기 어려웠다"며 "기회 격차가 더 증가했는지는 유보적이지만, 교육 불평등 양상이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는 중요한 연구과제"라고 밝혔다.



"상류층 대학생, 리더 경험, 해외여행, 단체활동 경험 더 많아"



김영미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도 비슷한 연구 결과를 내놨다. 김 교수는 '일·가족형성에서 나타나는 청년기 불평등(2016)' 논문에서 설문에 응답한 청년(20~39세) 1122명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상·중·하로 삼등분한 뒤 청년들의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졸업 비율을 측정했다. 그 결과 하층은 13%, 중증은 15%, 상층은 3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재학 중 학생회나 동아리 등에서 리더를 맡은 경험 역시 상층 청년일수록 높게 나타났다. 해외여행과 단체활동, 대학 생활 만족도 등에서도 같은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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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서울소재 대학 졸업자 비율.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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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해외여행 경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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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대학 재학 중 리더십 경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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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있어도 상위층 진입 못할 확률 계속 높아져"



경제학계에선 기회 불평등 정도를 측정한 '개천용 불평등 지수'를 개발한 학자도 있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다. 이 지수는 '용'이 된 상위층 중 '개천' 출신자들의 비율(N)과 상·하위층 모두를 포함한 전체 집단에서 '개천' 출신자들의 비율(Q)을 구한 뒤 지수화(1-N/Q)한 수치다. '개천' 출신자가 모두 '용'이 되면 N과 Q 값이 같아져 지수는 0이 되고, 반대로 아무도 '용'이 되지 못하면 N은 0이 돼 지수는 1이 된다. 지수가 0에 가까울수록 기회가 평등하다는 의미다.

주 교수가 '개천용 지수'로 측정한 결과도 '수저론'이 실재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부모 학력이 가장 낮은 집단(중졸 이하) 출신자(30~50세)가 능력이 있어도 소득 상위 20%에 진입하지 못할 확률(개천용 지수를 백분율로 환산)은 2000년 23%에서 2013년 34%로 뛰었다. 이후 다소 하락했지만, 2017년 28.9%를 기록해 여전히 과거보다 높은 수준을 보였다. 아버지 학력이 낮을수록 자녀 소득이 적어지는 현상도 심화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고소득층 자녀 사교육 시간 11시간, 저소득층 7.5시간



부모 경제력과 학력은 어떻게 자녀에게 대물림될까. 해외 연수와 논문 참여 등 '스펙' 확보에 유리한 환경과 함께 한국 특유의 사교육 투자가 자녀 학력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로 볼 수 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지역·가구소득·양육자학력별 사교육 경험 통계(2017년)에 따르면 '사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가구 소득 600만원 이상인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의 경우 91%에 달했지만, 소득 100만~200만원 미만인 가정의 청소년은 50.5%에 그쳤다. 주당 평균 사교육 시간도 소득 600만원 이상 가구 청소년은 11.08시간이지만, 100만~200만원 미만 가구 청소년은 7.46시간이었다. 부모(양육자) 학력이 대졸자 이상인 청소년의 사교육 경험은 88.8%였지만, 초졸 이하 청소년은 30.6%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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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가구소득·양육자학력별 사교육 경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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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청년 평균 연봉 월 224만원, 대졸 이상 261만원



고학력을 가질수록 고소득 계층 편입 확률도 높아진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집계한 지난해 청년층 학력별 월평균 소득(세후)은 고졸 이하 청년이 224만2000원이지만, 대졸 이상 청년은 261만5000원이었다. '부모의 높은 경제·사회적 지위→사교육 투자→상위권 대학 진학→고소득층 편입'으로 이어지는 '불평등 사다리'는 학계 연구 결과와 통계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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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 학력별 현재 일 통한 세후 월 평균 소득.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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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조국 사태' 이후 "교육 개혁 강력히 추진" 언급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사태'로 교육 제도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거세지자 지난 9일 대국민담화를 열고 "고교 서열화와 대학 입시의 공정성 등 기회의 공정을 해치는 제도부터 다시 한번 살피고, 교육 분야의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도 교육 공정성 강화 특별위원회 설치를 검토 중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교육 제도만 바꾼다고 기회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교육 제도를 빈번하게 바꾼 결과, 학생 혼자서는 달라진 교육 제도에 적응하기 더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사교육 시장은 더욱 커지고 결국 가정의 사교육 투자 역량이 자녀 학력을 결정하는 기존 시스템만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입시만 바꾼다고 기회 균등 어려워…'산업 맞춤 교육' 판 짜야"



경제학자들은 청년의 기회 균등을 보장하려면, 입시 제도 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경제와 일자리 시스템을 '학벌' 위주에서 '기술과 재능, 아이디어' 위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비 취업자의 경력과 경험을 깜깜이로 뽑는 '블라인드 채용' 형식보다는 기업이 채용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에 맞는 기술과 경험을 갖춘 인재들이 노동시장에서 객관적으로 평가받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대학 교수는 "블라인드 채용 방식은 상류층 자녀가 알음알음 채용되는 일을 더 빈번하게 만든다"며 "예비 취업자가 결과에 승복하도록 채용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예비 취업자도 기준에 맞춰 능력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채용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졸자를 교육해 채용과 연계하는 독일의 '아우스빌둥'이나 구글이 코딩 인재를 '채용 연계형 인턴'으로 뽑는 것처럼 학벌 상관없이 재능이 있으면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며 "'명문대' 졸업장이 없어도 반도체·코딩전문대학 등 특화 교육 기관을 나온 인재가 고소득을 올리는 '4차 산업혁명 맞춤형 교육'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 김도년의 썸타는 경제

액수ㆍ합계를 뜻하는 썸(SUM)에서 따온 ‘썸타는 경제’는 회계ㆍ통계 분석을 통해 한국 경제를 파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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