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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지지고 볶고 배달까지… 팁 줄 필요도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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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 네 바퀴 위에 상자 같은 몸통을 단 로봇이 도서관 옆 언덕을 돌돌 오르고 있었다. 전면(前面) 모니터엔 눈웃음 이모티콘(⌒⌒)이 앙증맞게 깜빡였다. GPS(위성항법장치)와 6개 카메라를 장착한 이 로봇의 이름은 '키위봇(kiwibot)'. 사람 걸음보다 느린 시속 2㎞ 안팎으로 움직인다. 몸통에 담긴 것은 학생들이 앱으로 학교 근처 식당에 주문한 햄버거나 만두, 타코와 같은 음식들. 식당 배달원이 캠퍼스 내 집결지에 모여 있는 로봇들에 음식을 하나하나 넣어주면 로봇이 마지막 수백m를 뛰는 '최후의 배달원'이 되는 것이다. 주문자는 앱을 통해 키위봇의 실시간 위치와 주변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3월 첫 배달을 시작한 키위봇은 현재 150여대가 UC버클리 등 미국 12개 대학 캠퍼스에서 음식 배달부로 뛰고 있다. 키위봇 한 대가 배터리 결함으로 UC버클리 캠퍼스에서 불타는 일이 있었던 작년 12월. 일부 학생들이 소셜미디어에 '동료가 갔다'며 애도하고 교내에서 촛불 추도식까지 열었을 만큼 키위봇은 친근한 존재가 됐다. 키위봇을 만든 스타트업 키위캠퍼스의 최고제품책임자 사샤(Sasha)는 "요즘 배달은 5~15달러를 줘야 하는 고급 서비스"라며 "그 비용을 거의 제로(0)까지 낮추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했다. 한국으로 치자면, 캠퍼스 잔디밭 사이를 누비던 철가방 오토바이를 로봇이 대신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로봇이 커피·햄버거 만들고, 배달까지

지금 실리콘밸리에선 로봇이 패스트푸드 만들기부터 배달까지 모든 것을 빠르게 장악해나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북동쪽에는 '로봇 가게'들이 밀집한 '로봇 셰프촌'이 등장했을 정도다. 작년 6월 문을 연 로봇 햄버거 가게 '크리에이터(Creator)'는 일주일에 딱 사흘(수~금),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하루 세 시간만 문을 여는 콧대 높은 집이다. 미셰린 레스토랑 출신 셰프로부터 사사(師事)한 조리법으로 햄버거를 내놓는 주인공은 대당 수억원, 가로 4m, 높이 2m의 햄버거 로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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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 로봇 이렇게 생겼습니다 -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햄버거 가게 '크리에이터'의 햄버거 로봇. 한 시간에 최대 120개의 햄버거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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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음식 배달 '키위봇' - 시속 2㎞로 대학 캠퍼스 누비며 음식 배달, 앱으로 배달 과정 실시간 모니터링 가능. (오른쪽)'카페X'의 바리스타 로봇 - 태블릿PC로 주문하면 로봇팔이 커피 서빙, 손님에게 손 흔들고 춤도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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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입구 종업원에게 7달러짜리 베이컨 치즈버거를 주문하고 카드 결제를 완료한 순간, 로봇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에서 햄버거빵을 살짝 밀어 울퉁불퉁한 칼날 위에 떨어뜨리더니 달달달 움직이면서 10초 만에 빵을 절반으로 잘라냈다. 이어 로봇 손이 버터를 바르고 세 차례에 걸쳐 프라이팬에 은근하게 구워냈다. 잘 구워진 빵 두 쪽은 종이 받침대에 톡 떨어져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착착 이동했다. 소스가 먹음직스럽게 뿌려졌고, 칼날로 정확히 잘라낸 신선한 피클과 토마토, 양파가 툭툭 떨어졌다. 잘게 썬 치즈가 흩뿌려졌고 마지막으로 잘 익혀진 고기패티까지 살짝 얹는 데 총 5분이 걸렸다. 종업원이 한 일이라곤, 이걸 받아들고 "햄버거 나왔어요"라고 외치는 것뿐. 받아든 햄버거는 모든 재료가 삐져나오지 않고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 다만 빵 맛은 약간 퍽퍽했고 미국 버거라는 점을 감안해도 좀 짠 편이었다. 첫 햄버거를 만든 뒤로는 시간당 최대 120개, 30초마다 하나씩 햄버거를 만들 수 있다. 로봇을 운영하는 회사는 알파벳(구글 모회사) 등으로부터 2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

삼성은 '요리 로봇 팔' 개발 박차

햄버거 가게에서 10분쯤 걸어가면 로봇 팔 바리스타가 있는 '카페X' 세 곳이 모여 있다. 입구에 놓인 태블릿PC에 커피를 주문하자, 투명한 통유리 안에 있던 로봇 팔이 종이컵을 착 들어 커피머신에 갖다놨다. 커피가 쪼르르 흘러나오자 조심스럽게 이를 들어 정해진 위치에 내려놨다. 그러고는 신이 난 듯 팔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춤을 추고, 손님에게 인사하듯 손을 좌우로 흔들기도 했다. 손님이 자신의 주문 번호 세 자리를 입력하면 통유리 안에서 커피를 꺼낼 수 있다. 커피 한 잔 값은 4달러. 다만 로봇 종업원은 팁(tip)은 받지 않았다. 실리콘밸리에선 스타트업, 대기업을 가릴 것 없이 로봇과 요리를 접목하려는 시도가 한창이다.

지난달 29일 찾은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의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에선 요리용 로봇 팔 '삼성봇 셰프'를 개발하고 있었다. 이곳은 삼성전자의 핵심 연구개발(R&D) 기지로, 건물 입구도 경비원 로봇이 감시한다. 요리용 로봇 팔은 주방에서 사전에 입력된 요리법에 따라 식재료를 자르거나 섞고, 양념을 치는 식이다. 손·팔이 불편한 사람도 얼마든지 요리할 수 있게 돕는다. 삼성은 이달 초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T 전시회에 이 제품을 전시했고, 내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에는 개선작을 선보일 계획이다.

샌프란시스코시(市)도 로봇 배달, 요리 시대의 도래에 맞게 관련 제도를 바꾸고 있다. 음식 배달 로봇 업체 포스트메이츠(Postmates)에는 인도(人道) 주행을 위한 첫 허가를 내줄 계획이다. 다만, 사람 통행이 드문 지역에서 회사 직원이 10m 이내에서 감시하는 조건이다. 지난 2017년 여러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로봇 배달을 시도하자 시 당국이 이를 전면 금지한 지 2년 만이다. 이 업체는 180일간 3대의 로봇으로 실험을 할 수 있다.

박순찬 기자(ideac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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