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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취재파일] 산양이 지킨 설악산…케이블카 사업 '백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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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을 두고 벌어진 환경과 개발 논리의 대결은 환경 보존의 우세로 끝났다.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사업에 대해 16일 '부동의' 결정을 내렸다. 설악산의 자연환경,생태경관, 생물다양성 등에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는 게 이유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8월 28일 국립공원위원회에서 강원도 양양군이 신청한 공원계획 변경을 승인해 준 뒤 4년 만이다. 환경 파괴냐 관광 활성화냐를 놓고 벌어진 극심한 찬반 갈등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만시지탄이지만 과거 환경부의 잘못된 정책추진을 현재 환경부가 되돌려 놓았다는 의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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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케이블카사업의 뿌리는 이명박, 박근혜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립공원입장료가 2천7년 폐지된 뒤 국립공원위원회가 2010년 케이블카 시범사업을 결정했다. 이유는 탐방객증가에 따른 탐방로 훼손우려다. 그 뒤 2012년 경남 사천, 설악산, 지리산 4곳<함양, 산청, 남원, 구례>,월출산 등 전국 7개 자치단체에서 케이블카 설치사업을 신청했다. 이 가운데 경남 사천만 가결이 됐고 나머지는 노선이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부결됐다. 설악산은 13년에 노선을 바꿔 다시 신청했지만 역시 부결됐다.

양양군은 2015년에 1, 2차 노선보다 1km가량 짧은 오색에서 끝청 하단까지 3.5km에 대한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세 번째로 신청했다. 그런데 끈질긴 사업 추진 뒤에는 박근혜, 최순실로 이어지는 국정농단 세력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2018년 3월 23일 환경정책제도개선위원회는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4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외국 관광객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위해 산악관광 활성화 정책을 건의했고, 6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환경부는 비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국립공원위원회에서 통과되도록 주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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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케이블카 사업 대상지는 국립공원일 뿐 아니라 천연기념물인 산양이 사는 곳이다. 산양은 반세기 전인 1968년 11월 20일 천연기념물 217호로 지정됐다. 산양은 또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이다. 따라서 케이블카를 놓으려면 환경부와 문화재청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만일 두 기관 중 한 곳이 반대하면 사업이 불가능하다.

문화재청 문화재심의위원회는 2016년 12월 28일 양양군이 신청한 현상 변경 허가를 부결시켰다. 케이블카 사업이 무산되는가 했는데 양양군은 행정심판으로 맞섰다. 2017년 6월 15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양양군 손을 들어주면서 케이블카 사업을 시작하도록 다시 길을 열었다. 공은 환경부로 넘어왔다. 환경부가 '동의' 하느냐 '부동의' 하느냐에 케이블카 사업의 존폐와 산양 서식지의 운명이 달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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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군은 2015년 12월 24일 원주지방환경청에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제출했다. 국립공원위원회의 승인 결정이 난 뒤 4개월 만이다. 환경부는 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등 전문기관의 검토를 거쳐 2016년 2월 2일 내용을 보완할 것을 요구했다. 5개월 뒤 2016년 7월 26일 양양군은
영향평가서 본안을 제출했고, 환경부는 4개월 뒤인 11월에 다시 보완을 요구했다. 그 사이 문화재위원회의 부결과 행정심판위원회의 결정 등의 시간이 흐르고 양양군은 지난 5월 16일 2년 6개월간의 보완기간을 거쳐 환경영향평가서를 원주지방환경청에 제출했다. 케이블카 사업 추진 의지를 본격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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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지방환경청은 환경영향갈등조정협의회를 통해 7회에 걸쳐 주요 쟁점을 논의했다. 그 결과 외부위원 12명은 부동의 4명, 보완미흡 4명, 조건부 동의 4명 등으로 의견을 냈다고 한다. 초안에서 본안에 이르기까지 두 차례의 보완요청이 있었지만 양양군은 영향평가서를 여전히 부실하게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곳에서 산양 38마리가 발견됐는데, 이를 놓고 양양군 측에선 설악산 상위 4%에 해당하는 산양 서식지로 평가했다. 하지만 환경부와 문화재청은 상위 1%로 판단했다. 또 탑승객 체류와 발전기 소음으로 산양의 이동로 단절과 서식지 파편화 등 부정적 우려가 컸지만 대책은 부적정했다. 야생동물은 10db이하 소음에도 번식, 행동, 생리 등에 영향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가축 피해 소음기준인 60db를 적용했다. 또 산양 외에 하늘다람쥐, 삵, 담비, 무산쇠족제비 등 다른 멸종위기종에 대한 조사가 부실하고 적정한 보호대책이 없었다.

식물 관련 내용도 부실했다는 지적이다. 자주솜대 등 희귀식물에 대한 조사가 빠졌고, 영구 훼손지 조사 지점이 부적정하고,설악산에만 자생해 보전가치가 높은 이노리나무에 대한 보호대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케이블카라는 이질적인 인공경관이 설악산의 우수한 산림경관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도 받았다.

또 설악산에는 돌풍이 자주 불지만 케이블카 지주간 거리가 500m를 초과한 곳이 4개 구간이나 돼 안전성도 문제였다. 가장 긴 구간은 761m에 이른다. 기상 악화로 케이블카 운행이 중단될 경우 헬기를 이용한 탑승객 구조 계획을 밝혔지만 기상 악조건에서 헬기 운행이 불가능하며 지주 높이가 45m나 돼 밧줄을 이용한 탈출도 쉽지 않을 것으로 지적됐다.

이처럼 동물, 식물, 지형지질 및 토지이용, 소음진동, 경관, 탐방로 회피대책, 시설안전대책 등 7가지 항목별 검토의견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의 결정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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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추가로 설치해 관광객을 불러오겠다는 사업은 발상부터 잘못됐다. 설악산에는 이미 권금성을 오가는 케이블카가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도 추가로 멸종위기 동식물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고 자연유산을 훼손하며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선을 넘었다. 숲을 파헤치고, 쇠기둥을 박고, 3.5km에 이르는 철선을 깔아 사람을 실어 나르겠다는 것은 회복할 수 없는 산림파괴와 자연환경 훼손을 감수해야 한다.

설악산은 백두대간에서도 허리에 해당하는 중심이다. 국민들이 즐겨 찾고 사랑하는 대표적 국립공원이다. 탐방객이 부족한 게 아니라 탐방객들로 붐빈다. 산이 건강하고 동식물이 안전해야 사람도 숨을 쉴 수 있다. 산은 걸어서 오르라고 있는 거다. 다만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노약자들도 쉽게 숲에 접근할 수 있는 무장애 탐방로를 개발해 굳이 케이블카를 타지 않아도 숲 이용에서 소외받는 분들이 없게끔 노력해야 한다.

환경부는 정권에 따라 해바라기성 정책을 만들어선 안 된다. 소신과 뚝심이 필요하다.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로 지구환경은 이미 병들어있다. 환경정책은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깊은 나무로 가꿔야한다. 인간을 포함 생태계 식구들의 지속가능한 생존과 건강한 삶을 위해 다른 선택은 없다.
이용식 기자(ysle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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