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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공식행사 음식은 모두 채식으로! 암스테르담의 뉴 노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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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강하라·심채윤의 비건 라이프(10)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북유럽과 서유럽의 모습을 함께 지닌 도시다. 북유럽으로 향하는 대문 같은 위치 덕분에 서유럽의 주요 도시와는 다른 북유럽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세계인이 사랑하는 반 고흐 미술관과 도심을 가르는 아름다운 운하, 예술 거장들의 발자취와 독특한 건축물 덕분에 암스테르담은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풍성한 도시기도 하다.

무엇보다 암스테르담을 가장 특별하게 하는 도시 풍경은 자동차보다 많은 자전거다.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가정마다 가족 수만큼의 자전거가 있고 세계의 여느 도시보다 자전거와 대중교통 이용률이 높은 도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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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은 도심을 이루는 독특한 건축물과 자동차보다 많은 자전거에 가장 먼저 눈이 간다. 양복을 입고 자전거로 출근하는 많은 시민들을 볼 수 있다. [사진 강하라, 심채윤]



암스테르담은 유럽 내에서 런던, 베를린, 스톡홀름, 코펜하겐과 함께 채식하기 좋은 도시로 손꼽힌다. 세계 각 나라의 전통음식을 뉴욕에서만큼 다양하게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모든 음식을 채식 전문 식당에서도 즐길 수 있다. 다양한 채식 식당이 있고 일반식당에서도 비건, 베지테리언 선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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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깨끗한 ‘Soup en Zo’ 식당에서는 매일 다양한 수프와 든든한 샐러드를 만날 수 있다. 착한 가격과 훌륭한 맛으로 암스테르담 여행이 더 즐거워지는 추천 식당이다. [사진 강하라, 심채윤]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소개하고 싶은 곳은 국립 미술관에서 멀지 않은 ‘Soup en Zo’ 식당이다. 다양한 수프와 샌드위치, 식사로도 든든한 여러 샐러드를 판매한다. 비건과 베지테리언 선택도 다양했다. 모든 수프와 음식을 매장에서 직접 만들고 당일에만 판매한다. 이 집의 수프에는 이 세상의 맛있다는 여러 음식과 호화로운 식당의 값비싼 음식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따스함이 있었다. 거칠고 투박하게 양파를 손질하던 주인의 진중함을 엿보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라따뚜이'에 등장하는 '안톤 이고'의 냉정한 마음을 녹인 것은 값비싼 음식이 아니었다. '안톤 이고'는 호화로운 음식점만 찾아 음식을 평가하는 음식평론가였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녹인 음식은 어린 시절 맛보았던 라따뚜이였다. 여러 채소와 토마토소스가 어우러진 라따뚜이는 소박하고 푸짐한 비건 음식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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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라따뚜이'의 한 장면. 악명 높은 음식평론가 '안톤 이고'가 라따뚜이를 맛보며 놀라고 있다. 엄마의 라따뚜이를 떠올리며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된다. [사진 월트 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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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암스테르담은 한발 더 나아갔다. 정부기관을 비롯하여 공식 석상에서 제공되는 모든 음식이 채식으로 바뀌었다. 고기나 유제품, 생선이 포함된 일반식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고 채식이 뉴 노멀(New Normal)로 정의된 셈이다. 암스테르담에서는 이제부터 채식이 일반식이다. 고기나 유제품, 생선을 먹기를 원한다면 사전에 별도로 신청을 해야 한다. 암스테르담 정부가 이런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공장식 축산과 과도한 육식, 석탄 기반의 삶으로 인하여 전 인류가 기후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육식이 채식보다 탄소 배출이 많음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강력한 온실가스이다. 지난 한 세기에 걸쳐 30배 이상 강력한 효과를 미쳤고, 공장식 축산이 가파르게 급성장한 지난 25년 동안에는 약 100배의 농도가 상승했다고 한다. 이제는 인류가 지속 가능한 삶을 살기 위해서 싫더라도, 피하고 싶더라도 석탄 기반 산업의 시급한 대체에너지 전환과 식물 기반의 식사가 필요하다.

인류가 모두 비건이 될 수는 없다. 평생 고기를 즐겨 먹던 사람들을 몰아세우며 고기 먹는 것을 비난하는 것도 또 다른 폭력이다. 다만 현재의 육식이 주가 된 식문화에 새로운 인식이 더해져야만 한다. 적어도 우리가 먹는 고기 위주의 식사가 기후 위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알고 먹어야 한다.

스무 살부터 여든 살까지만 기준으로 해도 매일 세 번의 식사를 한다고 했을 때, 65,700번의 식사를 하게 된다. 먹고 사는 일만으로도 우리는 세상에 많은 흔적을 남기게 된다. 식습관은 우리의 건강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집인 지구를 위해서라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지금은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 위기’의 시대다. 지구온난화가 나와 무슨 상관일까? 사실은 거의 모든 이유에서 나와 직접적인 상관이 있는 시급하고 위험한 재난 수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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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sterdam’ 조형물은 환경파괴와 기후 위기를 인식하자는 뜻을 담은 ‘I amazonia’로 바뀌었다. [사진 강하라, 심채윤 / Greenpeace]



암스테르담의 국립 미술관 앞 광장에는 ‘I amsterdam’이라는 거대한 조형물이 늘 여행자들의 사진 배경이 되어왔다. 최근 이 조형물이 ‘I amazonia’로 바뀌었다. 세계 각지에서 암스테르담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도시의 존재를 알리던 조형물이 바뀔 수 있었던 것은 시급한 것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선진의식 때문이다.

거대한 다국적 식품기업들에게 아마존의 밀림이 팔려나가고, 콩과 옥수수를 심어서 소, 돼지를 먹이기 위해 수천 년의 밀림이 불타고 있다. 그 밀림에 살던 아름답고 경이로운 야생동물들도 불타서 멸종되고 있다. 아마존의 이런 현실을 암스테르담은 남의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전 세계인이 알고 생각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조형물을 바꾸었다.

암스테르담의 여러 변화를 보면서 무엇이 우리 인류에게 더 중요한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환경 위기 속에 살고 있다. 어쩌면 인류세(Anthropocene)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류는 위대한 잠재력을 가졌고, 모두의 마음에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씨를 가졌다. 학교와 직장, 단체, 공공기관 등에서 인식하고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기후 위기’는 우리가 지금까지 편하게 누리고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다시 생각해야만 하는 문제다. 에너지, 교통, 산업부문뿐 아니라 식습관의 개선도 절실하다. 어쩌면 식탁의 변화가 우리 개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기후 위기 대처법이 될 것이다.

IMF 당시 전 국민이 힘을 모아 금을 모으고 나라를 살린 일은 세계적으로 각국에서 경제 위기 극복의 모델이 되었다. 대한민국을 외치며 하나가 되어 응원했고 월드컵 4강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평화적 촛불 시위로 세계를 놀라게도 했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는 실천에서 우리는 이제 더 큰 무언가가 필요하다. 지구는 우리의 집이다. 지금은 지구 전체를 보호하는 운동에 나서야 할 때다.

강하라 작가·심채윤 PD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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