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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만주 무당 옷 가슴팍에 전라도 유물 ‘팔두령’ 주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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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북방문화기행 ①]

북만주 산속 동굴과 시냇가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 문화의 깊은 뿌리를 보았다. 문헌사학자, 고고학자, 서예학자 등으로 구성된 국내 고대사학계 연구자 20여명이 올여름 북만주, 내몽골 일대의 고대 북방문화유적을 돌아보는 대규모 답사단을 꾸렸다. 지난달 11~17일 진행된 답사의 핵심은 4~5세기 북위 왕조를 세우고 북중국을 통일한 뒤 수당 제국의 기틀을 만든 유목족 ‘탁발선비’의 자취를 좇는 것이었다. 금속공예, 무기, 불교미술 등 한반도 고대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그들이 선조들의 고향인 북만주 알선동에서 동몽골 초원을 거쳐 중원까지 수백년간 이동한 2천㎞ 넘는 경로를 되밟았다. 고대 북방-중원-한반도의 교류사 현장을 새롭게 돌아보는 길이었다. 답사의 주요 여정을 세 차례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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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두령’이었다!

아득한 옛날 한반도 선조들만이 독창적으로 만들었다는, 저 유명한 청동제 제사 용구. 여덟개 가락지 같은 돌기 끝엔 앙증맞게 여덟개 방울이 달렸다. 북만주 옛 샤먼(무당)의 옷 가슴팍에 대롱대롱 매달린 왠지 친숙한 물건의 정체였다. 살펴본 학자들 눈에 불이 켜졌다.

팔두령은 해와 햇살을 표현한 상징이다. 전북 익산과 전남 화순에서 나온 국보 팔두령의 아름다운 문양과 맵시가 눈에 익숙한데, 샤먼 옷에 걸친 물건은 국보 팔두령의 모양새와 딱 맞았다. 팔두령 걸친 샤먼의 옷이 진열된 곳은 한반도 남도와 3000km 가까이 떨어진 북만주 서북쪽 대초원의 소도시. 1000km 넘는 다싱안링(대흥안령) 산맥을 낀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의 하이라얼이다.

학자 20여명 북만주·내몽골 답사
한반도 고대문화 큰 영향 끼친
4~5세기 북중국 통일 유목족
‘탁발선비’의 수백년 이동 자취 쫓아

■ 북만주에서 만난 팔두령

팔두령을 옷에 매달고 다녔을 이는 사슴과 순록을 떠받들며 수렵으로 삶을 영위하는 수렵민족 어원커 오루춘족의 당골무당. 팔두령은 한반도만 나오는 특유의 유물이라고 그동안 국내 학계에선 단정해오지 않았던가. 머나먼 북만주로 답사온 연구자들이 진열장 앞에서 술렁거리며 이야기를 나눈다. 윤선태 동국대 교수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몰랐던 팔두령 용도를 머나먼 이국 변방에서 알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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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하루 전 북만주를 가로지르는 다싱안링 산맥 기슭의 유목민 공원 전시장에서 20세기 초 오루춘족의 유목민들이 썼다는 금속제 관 사진을 보았다. 금선을 엇갈리게 이어 간략한 관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사슴뿔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이틀 전 선양(심양) 랴오닝성박물관에서 선비족 유물이라고 설명이 달려 전시되고 있던, 이파리 달린 금동관(보요관)과 쏙 닮았다. 요서지방의 풍소불 묘에서 나온 유물인데, 경주와 경상도 일대에서 나온 고대 금관의 기본 모양새와도 바로 연결되는 특징을 보여준다. 시베리아 만주 한반도로 이어지는 북방의 문화이니 막연하게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현장에서 체험한 북방유적, 유물과의 만남은 전율이 일 만큼 예사롭지 않았다.

11일 아침 인천공항을 출발해 선양에 도착한 답사단 27명은 시작부터 눈복을 누렸다. 첫 목적지로 잡은 선양시내 외곽의 랴오닝성 박물관에서 3~4세기 삼연(전연 후연 북연)으로 불리는 북방유목민 모용선비계의 귀족들이 남긴 진귀한 금속공예 무덤 부장품들을 감상했다. 말갖춤, 금속공예, 장신구 등은 고대 한반도는 물론 일본까지 큰 영향을 미쳐 학계에서 주목받아왔다. 고조선 등 겨레 특유의 고대 칼로 인식되어온 비파형 동검류와 고구려 전시실의 날개형 관모장식과 벽화무덤 모형 등도 실견했다. 랴오닝성 라마동 무덤, 선비왕조 북연의 유력자 풍소불 묘에서 나온 금속공예품은 고구려, 백제는 물론 신라 황남대총, 김해 대성동 가야고분의 출토품들과 거의 일치해 인연을 놓고 숱한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다.

북만주 서북 변경 아리하진 삼림속
탁발선비족의 고향 ‘알선동 동굴’은
동북아 유목족의 성소와 같은 곳

■ ‘탁발선비’족 고향 가센동

하얼빈에서 11일 저녁 침대열차를 타고 12시간 가까이 걸려 북만주의 서북쪽 변경이자, 네이멍구 자치구 북쪽 끝 가는 길목인 아리하진 역에 다음날 새벽 도착했다. 곧장 버스 타고 다싱안링 산맥 기슭의 깊은 삼림 속으로 다가갔다. 답사의 가장 중요한 목적지이자, 최고 눈대목이라 할 동북아 유목민족의 고향 가센동(알선동) 동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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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선동은 높이 15m에 달하고 깊이 100m 넘는 동굴안에 천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너비 20여m의 평평한 대와 제단이 이어지는 공간이다. 사서기록에는 3~6세기 중국의 대분열기 화북을 통일하면서 강남 동진과 더불어 남북조시대를 열었고, 그뒤 북제 북주, 수당의 대제국의 주역으로 연결되면서 유목문화와 정주농민문화를 융합시킨 탁발선비인들의 고향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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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를 보면, 북위 태무제 때인 태평진군 4년(443년) 당대 이 지역에 살던 부족(오락후국)이 사자를 보내와 이 땅이 원래 탁발선비족 터전이었음을 알리면서 잊혀졌던 성소를 되찾고 조정의 신하를 보내 제사를 지내고 동굴벽에 기념 명문을 새겼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른바 알선동 각석이다. 북위의 탁발선비인들이 알선동에서 제사지내고 각석을 만든 사실은 <위서>에 남은 정사다. 그러나 각자를 한 실제 장소는 전해지지 않아 많은 역사학자들이 위치를 찾으려고 만주 일대를 수백년간 수소문했으나 찾지 못했다. 그러다 네이멍구의 지역 기자 출신이던 향토사가 메이원핑의 노력으로 1980년 마침내 알선동 동굴과 각석문을 찾게 된다.

<위서>를 고증해 분명히 다싱안링 산맥 기슭에 각자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메이원핑이 험지를 직접 네차례나 뒤진 끝에 마침내 동굴의 이끼를 걷어낸 석벽에서 각석의 연호인 태평진군 4년의 ‘사(四)’ 자를 처음 확인하면서 기적적으로 사서 내용을 유적으로 고증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날 유적 안내를 담당한 왕얀메이 오르춘 민족박물관장은 “동굴은 수백만년 전 빙하기 때 조성된 것으로 신석기시대부터 수많은 사람이 살았던 삶의 터전이었다가 신성한 제례의 공간이 됐고 지금도 많은 지역민들이 소망을 기원한다”고 했다. 1600년전 탁발선비인들이 새긴 각자는 발견 뒤 덮개를 씌워 폐쇄된 상태였으나, 일행은 다음날 오후 하이라얼 민속박물원의 배려로 보관된 발견 직후 탁본한 생생한 각자 글씨를 보면서 아쉬움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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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알선동은 탁발선비족의 발상지로서뿐 아니라 동아시아 민족이 공유한 고대 동굴문화의 시원적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짚었다. 북방의 고대 동굴은 많은 이들이 거처하고 피난하고, 제사지내고 축제, 집회를 여는 따위의 제천, 생활, 성소 등이 융합된 총체적인 기층 문화 공간 구실을 한다는 말이었다. 압록강변 집안현의 고구려 천제 장소인 국동대혈, 신라 화랑과 귀족들의 수많은 명문이 새겨진 울산 성류굴 등에서 보듯 산중 동굴은 동아시아 고대 정신문화의 원형질이자 씨앗 구실을 한다는 그의 설명은 설득력이 있었다.

남쪽으로 이동해 보금자리 꾸린
후룬호 인근 하이라얼 박물관서
알선동 동굴에 새긴 글 탁본 확인
“광개토왕 비석의 금석문과 닮아
정신적 원형 잇닿은 부분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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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발선비’가 거쳐온 길을 되밟다

이날 오전 알선동에서 탁발선비의 원초적 터전을 봤다면, 이젠 탁발선비가 중원으로 간 이동로를 현대의 교통수단인 버스와 비행기로 되밟는 차례가 남았다. 버스는 선비족이 남천하면서 처음 이동한 터전이 됐던 후룬베이얼 초원으로 나가기 위해 드넓은 산맥의 기슭을 헤쳐나가게 된다. 그 초원으로 가는 길은 망망대해 같은 삼림에 둘러싸여 있다. 다싱안링 산맥의 이 삼림길과 근하를 거쳐 후룬베이얼 초원으로 나가는 기점 어얼구나에 도착했다. 13일부터 후룬베이얼 초원의 기점인 만저우리와 후룬호를 향해 초원 길의 항해를 시작했다. 어얼구나 강이 흐르는 초원길 초입은 바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곳. 낮은 구릉과 풀 자라는 중국 러시아의 초원지대와 마을들이 강을 경계로 좌우안에 펼쳐진다. 선비족 일파가 수천년전 이동했을 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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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룬베이얼은 세계적으로 풍광이 뛰어나고 풀도 가장 무성한 초원지대라고 한다. 네이멍구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초원의 노래를 가이드한테서 들으면서 한나절 달려 선비족 옛무덤군과 맘모스 유체들이 무수히 발굴된 자이눠르 지역을 지나 남단의 거대한 호수 호룬호 기슭에 닿았다. 서기 1세기 탁발선비족 일파는 삼림 지역에서 여기로 이동해 터전을 꾸렸다고 전해진다. 버스로 두어시간 걸리는 하이라얼로 가서 민족박물원에서 특별히 실견 기회를 제공한 알선동 석각의 초기 탁본을 실견했다. 원로 서예가인 김양동 계명대 명예교수는 “알선동 각석 서체가 고구려 광개토왕비석의 금석문 서체와 닮았고, 구조도 밀접하게 연관된다면서 어떤 정신적 원형이 서로 잇닿은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는 말을 꺼냈다. 13일 하루 내내 녹색 초원과 푸른 하늘이 맞닿는 풍광을 즐기고, 한반도의 고대 문화와 연결되는 유물들까지 눈에 넣은 답사단은 이날 저녁 하이라얼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탁발선비를 비롯한 유목민이 중원에 진출하는 기점이 된 남서쪽 인산(음산)산맥 기슭 네이멍구의 중심 후얼하오터를 향해 이제 발걸음을 옮겨간다.

중국 네이멍구/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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