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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모르는 조상' 위한 차례상 차리기, 난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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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다음날 아버님 제사... 차례와 제사를 둘러싼 나의 투쟁기

"나는 명절 연휴에 해외여행은 물론 국내 여행도 바라지 않아요. 왜, 티브이에 보면 명절날 고궁이나 한옥마을 같은 곳에 놀러 가는 사람들 많잖아. 영화 봤다는 사람들도 많고. 나도 제발,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그처럼 여유 있는 명절 좀 보낼 수 있다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

명절 무렵이면 명절 스트레스를 하소연하는 친구가 꼭 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흘려버린다. 그런데 지난날 한동안, 명절 때마다 되풀이되곤 했던 바람이었기 때문일까? 재작년 추석 무렵 친구의 이와 같은 하소연은 쉽게 흘려지지 않고 한동안 유쾌하지 못한 기억들을 헤집곤 했다.

시어머니(아래 어머니)는 주변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뜻 인정할 정도로 '손이 큰 편'이다. 명절 음식은 당연히 많았다. 한 되로도 충분할 송편을 몇 곱절인 한 말까지 빚은 적도 있다. 전 부칠 것들은 또 왜 그렇게 많이 준비하실까. "다음엔 좀 적게 해야겠다" 하면서도 막상 다음 명절이 되면 이전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많은 양을 준비해놓곤 했다.

모든 음식이 그랬다. 한 단이면 충분할 시금치를 두 단 세 단 사는 식이었다. 기제사보다 명절 음식이 더 거창했는데, 명절 때면 게장처럼 차례상에 올리지 않을 음식까지 하게 했다. 이 정도만으로도 얼마나 대책 없이 큰 손인지, 그래서 가뜩이나 할 일 많은 명절에 며느리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대책 없이 큰 '시어머니의 손'... 명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차례나 제사가 지금보다 훨씬 당연시되었던 70~80년대에 자라다 보니 힘들어도 지내야 하는 거라고 자연스럽게 인식된 것 같다. 그렇다 보니 힘들게 명절을 십 년 넘게 지나면서도 명절에서 벗어날 어떤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려니 생각했다. 누구나 다들 힘들겠지 체념하거나, 내 친구처럼 '차례 빨리 지내고 고궁 나들이라도 갔으면 좋겠다'라고 바라는 정도로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었다. 그냥 명절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내게 '차례를 꼭 지내야 하나?' 돌아보게 하고, 그 결과 '지내지 말자' 결심하게 한 것은 어머니, 그리고 결코 바뀌지 못하는 어머니의 대책 없이 큰 손이었다.

다행히 수년 전 어머니는 더는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제사를 지낼 만큼 지냈으니 이젠 차례로 대신하자"고 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서였다. 사실 어머니는 2001년엔가도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 했다. 그래서 겨우 3년에 불과했지만, 차례가 없어 몸도 마음도 편안한 명절을 보냈었다. 다시 지냈던 차례를 정말 그만 지내겠다 하신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며느리로서 반갑기만 했다. 몇 년 전부터 손아랫동서들이 오지 않아 그 많은 음식을 나 혼자 어머니와 준비하거나, 하필 명절 때마다 크고 작은 잡음이 되풀이되곤 했기 때문인지 남편도 무척 반겼다. 걸핏하면 "너는 큰며느리가 되어서…"며 부당한 의무를 지우고 하던 시부모님이라 더욱 반가웠다. 솔직히 횡재한 기분이었다.

친정에도 가고 영화도 보는 등 다시 차례가 없어 평화로운 명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 무렵 아버님이 사고로 돌아가셨다. 2015년 추석 이틀 후였다. 어머니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작정이라도 하셨던 듯 아버님이 돌아가시자마자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제사를 떠넘겼다. 그렇게 2016년부터 추석 다음 날 아버님 제사를 모시고 있다.

제사 떠넘기고, 이젠 차례까지 지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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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분이 쉽지 않을 만큼 사진이 어두워 아쉽다. 지난해 아버님 제사상 일부를 딸이 찍은 것이다. 아직 밥과 국을 올리기 전이다. 장만한 음식을 다른 접시에 보기좋게 다시 담던 예전과 달리 제사를 위해 장만한 모든 음식을 그대로 올려봤다. 즐거운 준비였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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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약 남편이 나보다 먼저 삶을 마무리한다면 최소한 몇 년만이라도 내가 제사를 지내겠다', 설령 '내가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해도 자식들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리고 '자식이 지내야 한다면 그 배우자인 며느리나 사위에게 의견과 동의를 구한 후'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따라 다른 만큼 정답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런지라 어머니의 일방적인 처사가 못마땅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제사를 순순히 받아들이자, 지내지 않기로 한 차례까지 다시 지내길 바라셨다. 그것도 '추석에 차례를 지낸 후 다시 음식을 준비해 그 다음 날 제사를 지내야 한다'라고 말이다.

어머니와 두 시동생은 차례와 제사 둘 다 각각 지내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며, 아버님 첫 제사를 한 달쯤 앞둔 무렵부터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결국 아버님 제사만 지내기로 했다. 피차 얼굴 붉히며 설왕설래, 우여곡절 후였다.
"말하자면 아버지가 선영에서 제일 막낸데, 차례를 지내지 않으면서 막내인 아버지 제사만 따로 지내는 것은 예의와 범절에 어긋나는 것이다. 조상들이 쫄쫄 굶고 있는데 아버지가 어디 맘 편히 잡수실 수 있겠니? 넌 큰며느리잖니. 운명으로 받아들여야지 어쩌겠니. 네가 힘들긴 하겠지만 그러지 말고 둘 다 지내자. 그게 안 된다면 차례상에 아버지 수저 하나 더 얹어 아버지 제사 지내면 되고. 조상들 소홀히 해 잘되는 자손들 하나도 못 봤다!"

하지만 어머니는 차례에 대한 미련을 끝내 버리지 못했다. 첫 제사를 지낸 그 이듬해 설날 떡국 상 앞에서 위의 말처럼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우리 부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니 요구였다. 사실 어머니가 먼저 지내지 않기로 한 차례 아니던가. 그렇다면 꼭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닌가. 게다가 차례상에 수저 하나 더 얹어 아버님 제사를 지내자는 말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차례를 거부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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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분이 쉽지 않을만큼 사진이 어두워 아쉽다. 지난해 아버님 제사에 쓰려고 딸과 만들어 본 송편이다. 딸이 송편 빚는 것을 알고 싶어했다. 빚는 동안 즐거웠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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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버님 제사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뭣보다 큰아들, 큰형이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버리고 그러길 기대하는 어머니와 두 시동생의 일방적이며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기분 나빴다. 무시당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간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힘들었던 것들이 떠오르며 오기 같은 것도 일었다. 그런데도 선뜻 받아들인 것은 남편의 아래와 같은 회한 때문이었다.
"악재를 되풀이해서 겪다 보니 뭐 하나 제대로 해드린 것 없이 걱정만 끼쳐드려 너무나 죄송하기만 해. 그래서 몇 가지만 올리더라도 제사라도 정성 들여 지내드리고 싶은데…."

남편과 같은 심정이다. 그래서 막상 시댁 식구 누구도 먼저 와서 음식 장만을 도와주지 않은 제사를 3년 지냈고, 다시 앞두고 있음에도 힘들거나 귀찮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추석 다음 날 제사를 지내야 하므로 지난날 명절 음식 장만에 허덕일 때면 부러워하고 바라는 것으로 위안 삼았던 친정에서의 추석이나 여행을 이제는 바라지도 못하게 됐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차례를 거부했을까.
"기제사는 원래 한번 지내는 것이니 설이나 추석 중 하나에 차례로 기제사를 지내고, 나머지 명절에는 여행을 가든, 친정에 가든 지들끼리 알아서 보내라고 전혀 참견하지 않아. 차례를 지내지 않아도 명절에 모여 밥 한 끼는 꼭 먹어야 한다고 오니 가니 따지는 사람도 있던데, 명절을 저희끼리 보내는 것도 필요하겠다 싶어서야. 자기들끼리 알아서 보내라고 놔뒀더니 애들 송편도 사 먹이고 동태전도 부쳐 먹고 그러는 것 같던데?"

기제사를 없애고 명절 차례에 합해 지내는 집이 점점 늘고 있는 것 같다. 합리적이다. 그래서 사실 차례상에 수저 하나 더 얹어 아버님 제사를 대신하자는 어머니의 논리가 전혀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래 볼까? 고민하긴 했다. 그럼에도 결국 지내지 말자 결정하게 한 것은 차례나 제사를 발복(發福)으로 여기는 어머니의 그릇된 인식 때문이다.

혼자 장만했음에 수고했다는 말을 하면서도 어머니는 첫 제사상을 탐탁지 않아 하는 눈치였다. 소박하지만 나름대로 정성 들였는데, 어머니가 시할아버지 제사 때 올린 것들을 모두 올린 제사상이었는데도 말이다.

차례나 제사를 당연한 일로 보고 자랐기 때문일까. 차례를 지내지 않아 편하긴 하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우리의 전통 풍속 하나가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와 같은 아쉬움과 섭섭함이 명절 때마다 들곤 한다. 그래도 아직은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차례상이다. 어머니가 원하는 차례상은 얼굴도 모르는 조상들을 위해 고통을 참고 차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현자 기자(ananh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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