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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대가 쇠톱으로 ‘스마트 가로등’ 잘라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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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지난달 24일 홍콩 시내에서 우산으로 몸을 가린 시위대 한 무리가 길가에 설치된 스마트 가로등을 쇠톱으로 자르고 있다. 홍콩=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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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반정부 시위대는 지난달 24일 정부가 시내에 설치한 ‘스마트 가로등’ 20여개를 쇠톱으로 잘라 쓰러트렸다. 과거 민주화 시위대가 독재자의 동상을 철거하던 모습을 연상시켰지만 원한에서 비롯된 행동은 아니었다. 최첨단 카메라와 센서로 무장한 이 가로등이 가까운 미래 자신들을 감시하는 ‘빅브라더’로 활용될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느끼고 선제적 파괴에 나선 것이다.

미국 CNN 방송은 11일(현지시간) 홍콩 시위대들이 스마트기술의 디스토피아적 악용 가능성에 맞서 분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단순히 마스크나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는 차원은 넘어선 지 오래다. 스마트 가로등에 대한 공격이 대표적으로, 정부는 날씨나 교통정보 수집 등 공공의 편익을 위한 시설일 뿐이라고 해명했으나 홍콩 시민들은 안면인식 기능과 통신 감지 기술이 내장돼있어 시위대 추적에 활용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대중교통 이용 시 교통카드가 아닌 현금 사용을 선호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평소 홍콩 시민들의 99%는 교통카드인 ‘옥토퍼스 카드’를 사용하지만 대규모 시위가 열리는 날이면 일회용 티켓 판매기계 앞에 길게 줄을 선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정부가 위치 정보를 추적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 각 옥토퍼스 카드에 내장된 칩에는 거래기록이 저장돼 경찰이 카드 주인과 사용 장소, 시기를 추적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중국 정부가 스파이를 고용해 시위대의 사진 등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데이터베이스화 한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홍콩 시민들의 경계심은 극에 달한 상황이다. 지난달 28일 시위에서도 현장 사진을 촬영하던 한 중년 남성이 중국 스파이로 몰려 사진을 전부 지울 때까지 시위대에 억류됐다고 CNN은 전했다. 공공장소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검정색 우산으로 가리는 등 사생활을 지키기 위한 갖가지 노력에도 불구, 이미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 상에서 시위대의 사진 등 개인정보가 대거 수집ㆍ공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위대는 홍콩이 제2의 신장(新疆)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얼굴인식기술을 보유한 중국 정부는 위구르족 비율이 높은 신장지역을 통제하는 데 이미 이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미명 하에 설치된 2억대의 감시 카메라가 24시간 주민들을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반정부 시위를 이끌어온 조슈아 웡(黃之鋒) 데모시스토당 비서장은 “홍콩이 신장과 같은 감시 하에 놓이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라며 “시위대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시민들의 행동 점수를 매기는 ‘사회적 신용제도’가 홍콩에 확대 도입될 가능성도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