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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균 칼럼] 내 권력 내 마음대로, 문재인의 9·9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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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 많거나 수사받을 공직자 물리치는 게 民心 대하는 예의

그 관행 무시한 건 권력 사유화… '온 국민 대통령' 취임사도 헛말

평등·공정·정의 가면 벗은 정권, 편 가르기 暴走 시동 걸까 걱정

조선일보

김창균 논설주간

조국 법무장관은 딸 진학 과정에서 스펙과 장학금을 부탁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특혜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는 것이다. 스펙 조작 의혹이 나오자 "의학 논문은 수준이 낮았고, 대학 표창장은 흔해 빠졌다"고 평가절하했다. 혜택은 다 누려놓고 침을 뱉은 것이다. 딸의 제1 저자 논문을 자신의 PC에서 손본 기록이 나오자 "대학에서 쓰던 PC를 집에 가져와서 딸이 함께 썼다"고 둘러댔다. 사무실 PC를 반출한다는 것도, 가족이 PC를 공동 사용한다는 것도 처음 들어본 얘기다. 자신의 답변과 배치되는 공문서가 나오면 "오기(誤記)가 분명하다" "행정 착오"라고 우겼다. 자신의 위증 혐의를 벗기 위해 행정기관과 대학의 신뢰성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조 장관 답변 중 상당수가 거짓말 같은데 그걸 반박할 증거를 제시하기도 어려웠다. 조 장관 머릿속에는 그런 계산이 다 서 있었을 것이다. '법도 잘 알고, 머리 회전도 빠르구나'라고 감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위법성이 입증 안 됐는데 의혹만으로 사퇴시키면 나쁜 선례를 남긴다"고 했다. 수사권이 없는 야당이 어떻게 위법성을 입증하겠나. 20년간 청문회에서 낙마한 수십명 후보자 중 위법성이 확인된 사례는 거의 없다. 문 대통령은 조 장관처럼 의혹투성이인 공직 후보자를 임명 강행하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조 장관 아내는 기소됐고 조 장관 자신도 검찰 수사를 피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을 법무장관에 앉히면서 검찰 개혁을 주문했다. "검찰은 검찰의 일을 하고, 장관은 장관의 일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조국 법무부 장관의 위법 사실을 밝혀내 처벌해야 한다. 조 장관은 전 정권 사냥을 마친 윤석열 검찰의 이빨을 뽑아서 문 정권을 물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두 사람의 임무는 동반 완수가 불가능한 모순 관계다. 문 대통령 마음이 조 장관, 윤 총장 중 어느 쪽 편에 가 있을지는 물어보나마나다.

2015년 4월 이완구 총리는 취임 62일 만에 물러났다. '이완구 3000만원'이라는 성완종 유언 메모 때문에 검찰 수사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총리가 혐의를 부인하며 버티려 했을 때 문재인 야당 대표는 해임 건의안 카드를 흔들었다. 이 전 총리는 사퇴 2년8개월 만에 대법원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문 대통령의 조 장관 임명을 보면서 머리에 피가 솟구치는 심정일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국민이 납득하기 힘든 의혹이 있거나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할 공직자를 물러나게 했다. 그것이 대통령에게 인사권을 위임한 국민에 대한 예의로 간주됐다. 문 대통령이 존경한다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문 대통령은 그 관행을 깼다. 내 권력은 나의 것이니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그 권력으로 자신의 분신을 나락에서 건져냈다. 조국에 분노했던 민심은 이제 문 대통령 자신을 향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꿈꾼다고 했었다. 국민은 지난 한 달 동안 '기회는 불평등, 과정은 불공정, 결론은 조국(曺國)'인 나라를 목격했다. 문 대통령은 2년4개월 전 취임사에서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라고 했었다. 또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예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다짐들은 헛말이 돼 버렸다. 처음부터 마음에 없었을 것이다.

대신 2019년 9월 9일은 대통령이 국가권력의 사유화를 선언한 날로 정치사에 기록될 것이다. 네티즌들은 "준법이라는 단어의 개념이 문통과 그 하수인들에 의해 새로 쓰인 날"이라고 했다. "이날부터 국어사전에 '공정' '평등' '정의'의 단어 뜻을 고쳐 써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매년 9월 9일 태극기 조기를 달고 국치일로 기념하자'는 댓글도 있었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는 "문 대통령에게 속았다"며 조기를 게양한 사진을 공개했다.

청문회 기간 "조국 힘내세요"를 외쳤던 문 대통령 핵심 지지층들은 승전가를 부르고 있다. 청와대 비서진은 국무회의장에 처음 등정하는 조 법무장관을 향해 응원 구호를 외쳤다. 그래서 진짜 걱정은 지금부터다. '평등·공정·정의'의 가면을 벗어버린 정권이 '네 편' '내 편' 가르기 폭주에 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김창균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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