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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경제포커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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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 조짐, 60조원 적자 국채, 미친 집값, 對日 무역 전쟁…

기업·가계, 各自圖生 모드… 시장의 응징이 유일한 희망

조선일보

김홍수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2년 전 취임사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경제 분야만큼은 약속을 잘 이행하고 있는 것 같다. 건국 이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건(?)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8월 소비자물가가 건국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정부는 농산물 가격 하락에 따른 일시적 저물가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물가 조사 대상 품목 460개 중 3분의 1에서 가격이 떨어졌다.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근본 원인은 공급 요인이 아니라 수요 위축에서 찾아야 한다. 6~7월 두 달 연속 소비 감소, 소비심리지수 악화, 할인 마트의 가격 파괴, 유통가의 일상화된 세일, 온라인 쇼핑의 증가세 둔화 등 소비 축소를 뒷받침하는 정황은 차고 넘친다. 흔히 물가는 낮을수록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소비자들이 물가가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소비를 늦추기 시작하면 경제에 재앙이 닥친다. 소비 감소로 재고가 늘어나면 기업들이 생산·투자를 줄이고, 고용 축소, 소득 감소로 이어져 디플레이션 악순환에 빠진다. 디플레이션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일본의 20년 불황이 여실히 보여줬다.

적자 국채 60조원 발행도 초유의 사건이다. 문 정부가 계획대로 내년에 적자 국채 60조원을 찍으면 GDP(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단숨에 3.6%(올해 1.9%)로 올라간다. 이후 재정적자 비율은 더 올라가 3년 내내 3.9% 수준이 된다. 유로존 국가들이 건전 재정 마지노선으로 설정한 재정적자 비율이 GDP의 3%이다. 세계 최고 재정 건전성을 자랑해온 한국이 하루아침에 재정 부실 국가로 전락한다.

부동산 시장에선 아파트 평당 1억원 시대가 열리고 있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운운하며 8·2, 9·13 대책을 쏟아냈지만 성적은 참담하다. 급기야 분양가 상한제까지 꺼내 들었지만 서울 아파트 가격은 연일 신(新)고가를 갈아치우고 있다. 국토부 장관은 이런 상황을 초래하고도 일 잘하는 실세 장관으로 포장돼 있다.

무역 의존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이 최대 무역 파트너 중 하나인 일본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미·중 무역 전쟁 여파로 수출이 9개월 연속 뒷걸음치고 있는 와중에 정부는 일본산 소재, 부품, 장비를 배척하는 외교·산업정책을 펼쳐 기업을 곤경에 빠트리고 있다.

진보 정부 정책 실험 2년 만에 거시(물가), 미시(부동산), 재정, 대외 거래 등 경제 전선 곳곳에서 초유의 장면이 등장하고 있다. 민생 현장에선 이미 위기 징후가 뚜렷하다. 직장 휴·폐업, 정리해고 등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올 상반기 중 80만명에 이른다. 매달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이 50만명에 달하고, 생계를 위해 국민연금을 미리 당겨 쓰는 국민이 60만명을 넘어섰다.

그래도 문 정부는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법이 없다. 여전히 세금 퍼주기식 소득 주도 성장 모델에 집착한다. 앞으로 더한 현상이 나타나도 정책 기조를 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각자도생(各自圖生). 각자 살길을 모색하며 엄혹한 시기를 견디는 수밖에 없다. 이미 기업들은 현금 보유를 늘리며 채용, 투자를 줄이고 있다. 개인들이 지갑을 닫고 달러·금 투자를 늘리는 것도 각자도생의 한 단면이다. 가계, 기업 단위의 합리적 선택은 시장의 축소 재균형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타날 기업 연쇄 도산, 자영업자 줄폐업, 실업대란, 자산 가격 폭락 등은 민심 이반을 촉발해 정치 변동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 현재로선 이 같은 '시장의 응징'이 정부 실패를 교정하는 유일한 해법이다.

[김홍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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