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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사물극장] [115] T S 엘리엇과 '프랑스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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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스무 살 무렵 T S 엘리엇(1888~1965)의 '프루프록의 연가'를 정말 좋아했다. 혼자 영어를 익히던 시절 이 장시(長詩)를 통째로 외웠다. 청년 엘리엇은 미국에서 옥스퍼드대학으로 유학 가서 베르그송과 버트런드 러셀의 철학 강의를 듣고, 대영박물관 독서실을 드나들며 책을 읽었다. 이 무렵 시인 에즈라 파운드를 만나 친해졌다.

그는 12세 때 키플링의 시구를 암송하고, 학교 수업에서 밀턴과 브라우닝을 접했다. 14세 때 번역 시집 '루바이야트'를 읽고 압도되었다. 세계가 일순 '찬란하고 향기로운, 그러나 고통스러운 빛깔'로 채색되는 듯한 느낌에 빠졌다. 이것이 그를 시로 이끄는 '악마적 홀림'이었다.

그는 아무 일탈 경험도 없이 '훈육과 공부, 독서와 글쓰기'로 채워진 청소년기를 보냈다. 하버드대학 시절엔 '한량'이고 공붓벌레, 박학다식으로 유명했다. 파리와 런던에 머물 때 그는 프랑스 담배에 빠졌다. 프랑스 담배만을 고집하는 애연 습관은 1965년 1월 4일 런던 자택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이어졌다.

엘리엇은 교사와 자유 기고가를 거쳐 29세 때 로이드은행에 입사했다. 로이드은행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황무지' 같은 문제작을 잇달아 냈다. 시에서 제 목소리를 감추고, 페르소나를 내세워 목소리를 내게 했다. 감정을 노출하는 낭만주의를 멀리하며 "시는 정서로부터의 도피이고 개성으로부터의 도피"라며 고전주의로 기울었다.

1927년 엘리엇은 문학은 고전주의자, 정치는 왕당파, 종교는 앵글로 가톨릭 교도임을 천명하고 영국 귀화를 선택했다. 1948년 10월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엘리엇은 "노벨상은 작가가 무덤으로 가는 길일 뿐이야. 노벨상을 받고 나서 변변한 작품을 발표한 작가를 한 명도 본 적이 없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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