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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 수출시장 키워 선진 시장 줄이겠다"는 탁상 官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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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한류(韓流)를 활용한 브랜드 마케팅 강화' '화장품 등 유망 소비재에 대한 수출보험 우대와 현지 전시회 참여 지원' 'ODA(공적개발원조) 등 정부 차원의 통상 협력 추진'….

11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주재로 열린 '경제 활력 대책회의'에서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 등 관계 부처 합동으로 내놓은 '수출 시장 구조 혁신 방안'의 주요 내용이다. 정부는 미국·중국·일본·EU(유럽연합) 등 기존 '주력 시장'에 대한 수출 비중을 2022년까지 13.4%포인트 줄이는 대신 동남아·중앙아시아·중남미·아프리카 등에 대한 수출 비중을 1.5배 높여 전체 수출을 늘리겠다고 했다. 우리 기업들이 지난 50년간 피땀 흘려 성취한 선진 시장 중심의 수출 구조를 4년 만에 대대적으로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선진 시장 비중을 일부러 줄이자는 게 말이나 되느냐" "관치(官治) 시대도 아닌데 정부가 시장별 수출 비중 목표치까지 제시하는 걸 보면 황당한 느낌" 등의 비판이 나왔다. 정부는 작년 12월부터 지난달까지 수출이 9개월 연속 감소하자 '수출 시장 다변화로 제2의 수출 도약을 이루겠다'며 이 방안을 내놨다. 이를 위해 정부는 무역보험에 3조7000억원, 글로벌 연구·개발(R&D), 해외 인수·합병(M&A)에 2조7000억원 등 총 6조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1류 시장 비중 줄이고 2류 시장 공략

정부는 미국·중국·일본·EU 등 기존 '주력 시장'에 대한 수출 비중을 줄이고 개도국에 대한 수출 비중을 크게 늘리겠다고 했다. 주요 수출 시장별 수출 비중 변화 수치까지 '목표'로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 전체 수출에서 53.4%를 차지한 미·중·일·EU 등 4대 '주력 시장'에 대한 수출은 2022년에 40%로 크게 감소한다. 작년도 수출액(6048억달러)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810억달러(약 96조5000억원) 정도 감소하는 셈이다. 대신 신남방·신북방 등 '전략 시장'의 비중은 21%에서 30%로, 중남미·중동·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 비중은 9%에서 15%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신남방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에 인도를 더한 11개국을, 신북방은 러시아와 구소련에서 독립한 독립국가연합(CIS) 등 13개국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주력 시장에 대한 수출 규모를 줄이자는 게 아니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낮추자는 것"이라며 "신남방·신북방 등 전략 시장을 공략해서 주력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줄이고 전체 수출 규모를 키우려는 취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4대 주력 시장에 대한 우리나라 수출 비중이 지금도 높은 게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전 세계 GDP에서 미·중·일·EU가 차지하는 비중은 총 67%이고, 우리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3.4%였다. "주력 시장에 대한 수출을 늘릴 여지가 남아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근거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선진 시장에서 인정받은 기업은 개도국 시장에 진출하기 쉽지만, 반대로 개도국에서 성공한 기업들이 선진국 소비자들에게 인정받기는 매우 어렵다"며 "정부의 목표처럼 선진국 시장 매출 비중을 줄이고 개도국에 집중하겠다는 기업이 있다면 시장에선 '망해가는 회사'로 평가할 것"이라고 했다.

◇"정권 코드 맞춘 수출 전략" 비판도

그렇다고 신흥국 시장을 뚫기가 쉬운 것도 아니다. 신흥국 시장 확대를 지속 추진해 온 현대차는 러시아·브라질 등에서 판매량이 오히려 감소세인 데다 고성장하는 인도에서도 최근 경기 악화로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다. 현대차의 미국·중국·유럽을 제외한 신흥국 판매 비중은 지난해 48%로 2013년(46.7%) 대비 1.3%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흥국은 선진국이 어려워지면 더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는 구조인데, 이런 문제를 알고 세운 대책인지 의문스럽다"면서 "더욱이 기존 시장은 지켜내면서 신흥 시장을 신규로 개척하겠다는 것은 모르지만 기존 시장을 줄이겠다는 목표치를 제시하는 건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신흥국들은 경기 변동에 더 취약하다. 신북방의 대표 국가인 러시아는 국제 유가 하락으로 2015년부터 2년간 마이너스 성장했고, 지난해에도 1.8% 성장에 그쳤다. 4대 그룹 관계자는 "러시아나 중동은 유가(油價)에 따라 경제가 함께 출렁이는 불안한 시장"이라며 "기업들이 신흥국에서 겪는 어려움을 모르는 정부의 탁상 행정"이라고 했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신흥 시장은 소득 수준도 낮고 관세·비관세 장벽이 선진국보다 더 높아 시장 진입도 힘든 곳"이라며 "정부의 수출 목표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했다.







최현묵 기자(sean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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