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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추 잘못 끼운 국립중앙의료원 이전 바로잡자[이진한의 메디컬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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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의료원 지하 1층에 본보 이진한 기자가 서있다. 낮은 천장 아래로 굵은 배관이 지나가면서 머리가 닿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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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11일 서울 중구 을지로 국립중앙의료원 본원 지하 1층. 1.8m 정도의 낮은 천장에 수많은 배관이 빽빽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배관 곳곳엔 수시로 터져 급하게 공사한 흔적이 보인다. 또 지하 인공신장실 근처엔 복도의 3분의 1가량을 막아 만든 가건물도 보인다. 의료 소모품 창고였다. 좁은 복도에 답답했다. 건물이 더 이상 병원으로서 역할을 하기엔 한계에 다다른 모습이다.

1958년에 건립된 국립중앙의료원은 최근 서울 서초구 원지동 이전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내부 ‘신축 이전 전담팀’(5명)을 해체했다. 이전 검토만 16년째였다. 현 정기현 의료원장이 보다 못해 현실적으로 이전 불가능한 데 역량을 집중하는 대신 이곳에서 경영혁신 계획을 수립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을 원지동에 새로 건립하는 방안은 2003년에 처음 나왔다. 당시 서울시가 원지동 일대를 서울추모공원 부지로 확정하자 주민들이 반대했다. 서울시가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반대급부로 현재 의료원 이전을 추진한 것이다. 이후 사업 타당성 검토를 거쳐 2014년 말 사업계획이 최종 승인됐지만 그 이후로 답보상태로 있다가 이런 사달이 났다.

2014년 이후 의료원이 곧 이전할 것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병원 신축이나 리모델링 등에 투자를 전혀 하지 못한 채 현재까지 버텼다. 이번에 의료원장이 이전 불가를 선언한 결정적인 이유는 원지동 이전 부지가 경부고속도로와 인접한 탓에 소음 등으로 인한 환경영향평가에서 소음환경 기준이 부적합으로 판정 나서다. 그동안 이전의 주체인 서울시나 보건복지부에서 2014년 최종 승인된 시점에 소음환경 측정조차 안한 것도 의문이다.

소음환경 문제를 최소화하려면 기존 부지에서 훨씬 안쪽으로 들어가 건물을 지어야 할 판이다. 이렇게 될 경우 병원 부지의 90% 이상 축소 또는 2층 이상 건물을 짓는 게 불가하다. 원래 국립중앙의료원은 18층, 700병상 이상의 대형병원과 국가중앙외상센터 설립, 100병상 규모의 국내 최대 중앙감염병병원 설치, 국내 의료기관 최초의 최첨단 BL4(생물안전 4등급 밀폐 병실) 설치 등 공공의료의 랜드마크가 되기 위한 구상을 진행했다. 이전 및 신축에 드는 비용만 4000억∼5000억 원이다. 이런 규모가 90% 이상 축소될 지경이니 안 가느니 만도 못한 상황이 된 것이다.

방음공사 작업을 통해 소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병원 관계자는 “12차로 경부고속도로의 방음터널 천장 공사가 대안일 수 있는데 이 경우 총사업비의 절반 가까이 비용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한국도로공사와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6월에 도로공사 측으로부터 경부고속도로 위 방음터널 설치는 불가하다는 의견을 받은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전 문제를 최종 결정할 복지부는 이전 불가가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또 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도 서울시와 협의를 계속해 최적의 해결방안을 찾아 이전을 추진할 계획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 놓았다. 서울시는 소음환경 자료가 제대로 됐는지 다시 한번 검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립중앙의료원 측은 한계에 봉착한 나머지 이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전 문제를 빨리 결정해 달라고 복지부, 서울시, 한국도로공사 등에 관련 공문도 보내고 이전과 관련해 사람들을 만나 여러 문제점을 충분히 전달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서울 서초구에서는 안달을 냈다. 서초구는 서울 원지동에 오기로 약속된 상황인 만큼 하루빨리 서울시와 복지부가 협의를 해서 약속을 이행해야 된다는 입장이다. 하루에도 몇 통씩 주민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이름 그대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공 의료기관이다. 또 200여 개 지방의료원과 국공립의료기관을 통솔하는 컨트롤타워라는 막강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더구나 전국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총괄하는 중앙응급의료센터를 두고 있다.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닥터헬기 사업과 응급의료체계 개편을 위해 애를 썼던 피와 땀의 흔적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막상 현장을 찾아가면 그러한 위상을 찾을 수가 없다. 국립중앙의료원은 노후 건물로 인해 국내 전체 외상센터를 총괄하면서도 응급헬기조차 내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헬기가 다가갈 수도 없다. 메르스 사태 이후 급하게 만든 중증외상센터만 눈에 띈다. 이전과 관련해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면 억지로 끼워 넣지 말고 새로 고쳐 끼우는 게 ‘최선’이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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