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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족[이은화의 미술시간]〈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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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노먼 록웰,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1943년.


노먼 록웰의 그림은 미국 중산층 가정의 행복한 명절 일상을 잘 포착해 보여준다. 추수감사절을 맞은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할머니가 준비한 칠면조 요리를 기다리고 있다. 정성스럽게 세팅된 식탁 위로 내민 얼굴들엔 웃음꽃이 만발한다. 재미난 이야기라도 나누는 건지 이들의 표정이 이 가족의 행복지수를 대변한다.

록웰은 가장 미국적인 화가이자 인기 있는 삽화가였다. 18세 때부터 전업 화가로 활동했던 그는 22세 때 당시 미국 최대 판매부수를 자랑하던 주간지 ‘세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의 표지 그림을 그리며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무려 47년간 이 잡지의 표지 그림을 그리며 수많은 팬을 거느린 국민화가가 됐다.

1943년 3월, 같은 잡지에 실려 큰 반향을 일으킨 이 그림은 전쟁 시기 발표된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주제로 삼고 있다. 1941년 의회 연설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자유로 언론과 의사 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천명했다. 화가는 각각의 자유를 차례로 담은 4점의 연작을 그렸는데, 그중 중산층 가정의 이상적인 모습을 표현한 이 세 번째 그림이 가장 유명하다. 그림은 전국 순회 전시를 통해 1억3000만 달러의 전쟁 후원금을 모았을 정도로 전쟁 시기 미국인들의 애국심 고취와 미국의 승전에 공헌했다.

화가는 이 그림을 위해 자신의 가족과 친구, 이웃들을 모델로 동원했는데, 개별적으로 사진을 찍은 뒤 한 화면 안에 재구성해 넣었다. 실제 인물과 화가의 이상이 결합된 이상적인 가족화인 것이다.

“나는 내가 바라는 삶을 그린다”는 록웰의 말처럼 그는 현실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삶을 화폭에 담았다. 경제적 풍요와 나라의 평화, 가정의 화목 속에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중산층의 삶이 어찌 이 미국 화가만의 이상일까. 지구촌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꿈꾸는 삶도 바로 그런 것일 터.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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