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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짐을 지고 끌고 가는 독일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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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나는 많이 다닌다. 아직도 어딘가로 달려가서 배울 게 많기 때문이다. 독일은 더더욱 많이 다니는데 수십 년을 다니지만 기차역이나 기차 안에서 번번이 새롭게, 보기 좋은 게 있다. 자기 짐을 야무지게 끌고 혹은 지고 다니는 어린이들이다. 아주 어린아이들도 여행 중에 자기가 먹을 것, 자기가 가지고 놀 것, 자기 소지품은 꼭 챙겨 가지고 다닌다. 정말이지 다 그렇다. 가까스로 걷는 아이도 앙증맞은 배낭을 메고, 조금만 크면, 유치원이라도 갈 즈음이면 자기 물건이 든 제법 큰 자기 트렁크를 자랑스럽게 끌고 다닌다. 때로는 부모는 빈손이어도 아이는 짐이 있다. 그럴 때조차도 부모가 아이 대신 아이 짐을 들어주거나 끌어주는 법이 없다.

차에 타면 그 짐에서 읽을 동화책이나 가지고 놀거리를 꺼내어, 어른도 지루한 여행을 대체로 조용히 잘들 해낸다. 부모와 뭔가 같이 풀거나 놀고,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답게 질문이 많을 수는 있으나 칭얼거리거나 어른들에게 치대는 아이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른들과 조금도 다름없이 자기 짐은 자기가 책임지고 지고, 끌고, 챙기는 아이들을 바라보노라면 그 얼굴에서는 자랑이 묻어나고 있다. 그게 아름다워 한참씩 바라보곤 한다. 그런 생각 끝에 늘 드는 물음은, 왜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저런 기회를 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저렇게 자기 짐을 챙기고, 또 혼자서 나름으로 여행을 즐기는 아이들을 우리나라에서 한 번밖에 못 보았기 때문이다. 수원에 있는 한 대안학교의 참 좋으신 선생님이 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내가 운영하는 서원에 온 적이 있었는데, 1학년 아이도 어른들이 할 일을 하는 동안에는 혼자 읽고, 혼자 놀 채비가 야무져서 놀랐다. 이틀을 머물렀는데 앉을 만한 구석부터 눈여겨보더니 적절한 시점에 거기에 자리 잡고 앉아서, 가지고 온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하면서, 바쁜 어른들을 상관하지 않고 낯선 곳에서 잘도 지내다가 떠날 때는 있던 자리를 청소까지 해놓고 갔다. 제대로 된 대안학교란 이런 좋은 것을 가르치는 데로구나 싶어 얼마나 고맙던지.

칭얼거림이 끝없는 건 감히 말하건대 아이들만이 아니다. 비행기에 앉아 있노라면 비행 시간을 못 견뎌 그야말로 몸을 비트는 어른들을 수도 없이 보게 된다. 유독 한국인 여행객들이 그런 표를 많이 낸다. 어려서부터 자기 주변을 스스로 챙기는 연습이 부족하니, 어른이 되어서도 챙겨줄 사람, 놀아줄 사람이 없으면 어쩔 줄 모르지 않나 싶다.

저런 어쩔 줄 모름이, 여행 중 태도에 그치겠는가. 가까운 주변 사람들을 본의 아니게 힘들게 할 테고, 갈등이 있을 테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불편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제 짐 하나 들리기는커녕, 공공장소에서 안하무인으로 뛰어도 기 살린다며 내버려두는 부모들을 보는 게 오히려 일상이니 말이다.

어른들부터 조금만 더 의젓해졌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제 앞가림할 줄 알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회 구성원이 되게끔 하는 데 중점을 두어 키웠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는 우선 제 몸과 주변을 챙기는 일부터 좀 시키자. 짐도 들리거나 지우고, 집안일도 작은 일부터 조금씩 나누어 맡기면서 지구력과 책임감을 길러주고 무엇보다 혼자 살아갈 힘을 키워주어야 할 것 같다. 그러면서 운동 중 최고 운동, 노동이 어려서부터 몸에 익으면 자신도 주변도 두루 편하다. 이런 국민 기초가 이제부터라도 차근히 해나가야 할, 실은 무엇보다 다급한 사회적 과제로 보인다.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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