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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노트북을 열며] 도가 연극촌, 그리고 거창과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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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강혜란 대중문화팀 차장


지금 일본 도야마현 난토시 도가 마을은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연극인·관객으로 북적인다. 동·서양 연극 교류인 제9회 연극올림픽이 한달 여정으로 열리고 있어서다. 오는 23일까지 해발 800m 벽지에서 16개국 27개 팀의 연극 30편이 상연된다. 주민 400명의 촌락이 ‘세계 연극의 성지’가 된 것은 연출가 스즈키 다다시(鈴木忠志·80)의 힘이다. 1976년 도가 상주극단 ‘스즈키 컴퍼니 오브 도가’(SCOT)를 설립한 그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배우 훈련법 ‘스즈키 메소드’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도가 마을엔 연중 열리는 연극·예술제 외에도 스즈키 메소드를 배우고 SCOT와 교류하려는 이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6~8일 극단 자유의 ‘이름없는 꽃은 바람에 지고’ 공연에 동행해 도가를 방문했다. 연 7000만엔(약 7억원)을 연극촌에 지원한다는 난토 시의 다나카 미키오 시장은 “이곳 출신으로서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 지역 공헌이 커서 전폭적으로 돕고 있다”고 말했다. 스즈키 연출가는 “관(官)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이곳 운영은 예술가가 책임진다”고 했다. 43년간 상호 신뢰와 검증이 뒷받침되지 않고선 불가능한 ‘윈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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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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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거점의 공연예술 활성화 시도가 국내서도 없던 게 아니다. 대표적으로 경남 거창과 밀양이 있다. 그러나 최근 두 곳 다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30년 역사의 거창국제연극제는 올해 끝내 열리지 못했다. ‘상표권’을 두고 거창국제연극제진흥회와 거창군(운영위원회)이 법정 다툼까지 벌이고 있어서다. 예산 집행 투명성을 둘러싼 갈등으로 2016년부터 파행이 되풀이된 터라 내년 재개도 쉽지 않다.

2001년부터 열린 밀양 여름 공연예술축제는 지난해 이름을 바꿔 축소 개최됐다. 밀양연극촌을 17년간 운영한 이윤택 전 예술감독을 겨냥한 ‘미투 고발’이 터지면서다. 올해 재개했지만 이미 삭감된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을 전액 되살리진 못했다. 각각 연극인의 초심으로 시작한 축제가 국고 지원 덕에 활성화됐지만 그에 걸맞은 책임의식과 검증·견제가 부실했기에 빚어진 사태다.

도가 마을과 거창·밀양을 단순 비교할 순 없다. 그럼에도 각각 30년, 20년 안팎 운영돼온 지역연극제가 운영 주체 문제로 브랜드 가치에 타격을 입은 것은 ‘공공재’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스즈키 연출가는 “여기(도가 마을)에 수백억 지원이 들어갔는데 그게 연극을 위해서였겠느냐”고 되물었다. 연극을 계기로 한 ‘지역 살리기’에 민·관이 합심하고 공동운명체로서 책임을 졌다는 얘기다. 거창과 밀양이 환골탈태하길 기대해본다.

강혜란 대중문화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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