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54944820 0362019091154944820 02 0201001 6.0.11-RELEASE 36 한국일보 40749942 related

[이런 2막!] 한때 배불뚝이 수학쌤, 64세 헬스강사 된 사연은?

글자크기
‘35년 수학쌤’에서 헬스트레이너로 변신한 강철진씨

‘가슴’ ‘팔’ 쓰인 조끼 입고 시범… “5060 맞춤 운동 따라해 보세요”

※ 은퇴 이후 하루하루 시간을 그냥 허비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삶에서 재미를 찾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은퇴 후 삶은 어때야 하는 걸까요. <한국일보>는 우아하고 품격 있게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고등학교 수학교사로 정년퇴직 뒤 헬스트레이너의 삶을 사는 강철진씨가 서울 은평구의 한 헬스클럽에서 ‘팔’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초보자의 팔 운동을 지도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22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한 헬스클럽. 평일 오후 시간대라 그런지 헬스클럽엔 자녀를 학교에 맡긴 중년 가정주부, 그리고 머리칼이 희끗거리는 60대 은퇴족뿐이었다. 뭔가 운동은 하고 싶지만 느슨한 이들. 대개 TV를 보며 러닝머신을 걷거나, 벨트 마사지기로 뱃살이나 허벅지를 출렁대는 정도. 벤치프레스, 스쿼트, 데드리프트 같은 소위 ‘3대 근육 운동’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젊은이들이 많은 아침 출근 시간 전, 저녁 퇴근 시간 뒤와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었다.

이 느슨한 분위기를 뒤집어 놓은 이가 등장했다. 60대 헬스 트레이너이자 초보 헬스 유튜버인 강철진(64)씨. 강씨는 스스럼 없이 다가가 트레이닝 요령을 일러줬다. 수업시간엔 각 헬스 기구가 몸의 어느 부위에 어떻게 자극을 주는 것인지 알려주기 위해 숫제 '가슴' '허리' '등' '하체' ‘팔’이 쓰여 있는 조끼를 갈아입으면서 시범을 보여줬다. 관절이 약한 노인들에게 적당한 근육운동법을 일러주자 쭈뼛쭈뼛하던 회원들의 말문이 하나 둘 트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는 건 무리 없나요.”

강씨가 조끼까지 돌려입어가며 운동법을 일러주는 이유는 하나다. “헬스클럽에서 젊은이들 눈치 살피고 머뭇거리는 노인들을 보면 속상해서요.” 100세 인생, 인생 2막의 밑바탕은 ‘건강’이지만 그 건강을 찾으러 온 헬스클럽에서 정작 그들은 찬밥 신세여서다. 강씨가 유튜브에까지 뛰어든 이유다.

◇배 나온 수학선생님, 굴욕에 운동장 뛰었다

강씨는 원래 수학교사였다. 2015년까지 무려 35년간 중ㆍ고등학교에서 일했다. 40대까지만 해도 보통 아저씨로 살았다. 학교 일이 끝나면 동료 선생님들과 삼겹살을 즐기거나, 집으로 갈 때는 치킨 한 마리 사들고 퇴근하는 가장이었다. 운동과 담을 쌓고 지내던 강씨는 키 170㎝, 몸무게 88㎏, 허리 사이즈 40인치였다. 잘 맞는 바지가 없어서 고생 좀 했을 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고약한 장난을 당했다. 강씨가 지나갈 수 없도록 책상과 교탁 사이를 딱 붙여놓은 것이다. 그 사건으로 계기로 다이어트 결심을 굳혔다. 강씨는 “창피한 것도 창피한 거지만, 건강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아이들 지도하는데도 부담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 뒤 퇴근하면 혼자 학교 운동장을 뛰었다. 처음엔 5분만 달려도 숨이 턱 끝까지 찼지만, 이내 20분, 40분으로 시간이 늘었다.

어느 정도 기초 체력을 키웠다 싶었을 때 동네 헬스클럽을 찾았다. 아예 보디빌딩 대회 출전을 목표로 삼았다. 그렇게 10년 동안 매일 2시간 운동을 했다. 땀은 배신하지 않았다. 2014년, 그는 서울시장배 마스터즈(50~59세)급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학교생활도 신났다. 운동을 시작한 뒤 매년 신학기마다 반 대표로 선발된 아이와 100m 달리기를 했다. 농담 삼아 ‘내가 지면 은퇴하겠다’고도 했다. 환갑까지 강씨는 단 한번도 지지 않았다. 그 다음해, 달리기를 하다 근육파열을 겪었다. 첫 패배였다. 미련 없이 퇴직을 신청하고 학교를 나왔다.
한국일보

2014년 9월 열린 제25회 서울특별시장배 보디빌딩대회 마스터즈(50~59세)급에서 우승을 차지한 강철진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철진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잘하던 것에 새로운 길이 있었다

강씨는 귀향을 결심했다.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어릴 적 기억 속 시골과 은퇴 뒤 찾아간 시골은 전혀 달랐다. 그는 "보리와 검은 콩을 유기농으로 지으려 했는데, 주변을 보니 농약을 안치고 짓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인생 2막이었다.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고심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관심 있었지만 못했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답은 간단했다. 건강관리와 헬스였다.

생활스포츠 지도사 자격증에 도전했다. 사실 교직에 있을 때도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다. 연수만 90시간을 받아야 하고 수업을 20일이나 빠져야 해서 못했을 뿐이다. 1차 서류, 2차 면접, 3차 연수까지 통과한 그는 2015년 11월, 63세라는 최고령의 나이로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은 일자리로 연결됐다. 자기가 꾸준히 다니던 헬스클럽에서 ‘월급 사장’ 자리를 제의했다. 뜻밖의 제안이었지만, 10년 넘게 열정적으로 운동해온 그의 성실함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강씨는 다음날부터 헬스장으로 출근했다. .

쉽진 않았다. 다른 곳에 가면 근육이 우락부락한 젊은 강사들이 넘쳐났다. ‘할아버지 트레이너가 뭘 가르치겠냐’는 비아냥도 들려왔다. 하지만 강씨에겐 그만의 장점이 있었다. 아이들이 제일 싫어한다는 수학을, 그것도 30년 넘게 가르쳐온 지도 노하우가 있었다. 거기다 운동을 전혀 하지 않다가 10년이 넘게 운동한 경험, ‘늙은 몸’에 대해 더 잘 알 수 밖에 없는 점 등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이건 엄청난 하드 트레이닝으로 근육을 잔뜩 키운 젊은 트레이너들이 따라올 수 없는 부분이었다.

차츰 회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시작은 역시 동네 아주머니들이었다. 강씨는 “격한 운동을 부담스러워하는 분들께 딱 맞는 운동법을 알려드렸더니 자연스럽게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며 “그 뒤론 내게 교육받기 위해 줄을 설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 덕에 ‘월급 사장’치곤 수입도 짭짤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묘한 회의감이 밀려들었다. ‘내가 헬스클럽 관장을 해서 돈 벌려고 은퇴한 건 아니지 않나’ 싶었다.

매일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도달한 결론은 은퇴 세대 전반을 위한 코칭이었다. 10년 이상 학교에서 진학지도부장을 한 경험을 살려 진로상담사와 직업훈련사 자격증까지 땄다.

◇60대 헬스트레이너의 유튜버 도전

이런 강씨를 찾는 곳은 많아졌다. 이런저런 강연을 다니면서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고 고민 상담도 해줬다. 역시나 5060들이 최대 고민은 건강이었다. 뭔가를 해보고는 싶은데 뭘 해야 할 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강씨는 “50대 이후 체형관리를 이렇게 하라, 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강연이 끝나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질문을 쏟아냈다"며 "사람마다 체형이 제각각이니 개개인들에게 모두 따로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유튜브 채널이었다. 채널 개설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도와줬다. 인색 2막 설계를 도와주는 서울시 산하 재단으로, ‘유튜버 스쿨’을 모집하던 참이었다. 그는 ‘50대 이상 중장년층을 위한 헬스와 건강관리’라는 주제로 7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선정됐다. 3개월 간 유튜브의 개념부터 콘텐츠 촬영, 편집, 업로드까지 배웠다.
한국일보

강철진씨의 유튜브 채널 '강철헬스전략'. 유튜버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 개설 이후 강씨는 생활은 또 한번 바뀌었다. 매일 아침은 구독자 숫자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그 뒤 아내와 함께 기획 회의를 한다. 주제가 정해지면 동영상을 촬영, 편집한다. 촬영과 편집은 아들이 도와준다. 5분짜리 동영상이라 해서 우습게 볼 수 없다. 그거 하나 만드는 데 30시간 넘는 공을 들일 때도 있다. 올리면 끝이 아니다. 영상에 달린 댓글에 일일이 답을 다는 등 소통도 열심히 해야 한다.

그가 만든 헬스 전문 유튜브의 가장 큰 차별점은 자세 설명이 길다는 것이다. 사실 운동 유튜브는 설명보다 운동 장면을 직접 보여주는 경우가 더 많다. 설명이 길다는 건 영상시대에 단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을 고집하는 건 중장년층들의 연약한 관절을 배려해서다. “아무래도 헬스 동영상은 젊은 사람들 중심이기 때문에 나이 든 사람이 급히 따라 하다가는 부상을 입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좀 더디더라도 자세를 꼼꼼하게 배우고 정확히 잡은 상태에서 해야 부상을 방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요즘 최고의 행복도 동영상을 보고 도움을 받았다는 반응이 올 때다. 유튜브 덕에 학창시절 제자들과 다시 연락이 이어지기도 했다. 동영상을 만들면서 매일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가족들과의 관계도 더 좋아졌다. 그는 “구독자들을 늘리기 위해 과거였으면 절대 못할 랩을 하거나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는 등 은퇴 전보다 더 활기찬 삶을 살게 됐다”고 말했다.

헬스는 시작점에 불과하다. 명상, 습관 개조, 요리 등으로 계속 확장해나갈 예정이다. 직업과 진로에 대한 설계, 컨설팅도 생각 중이다. 그렇기에 강씨의 하루는 너무나 바쁘다. 인생 2막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하고픈 말은 이것이다. “은퇴했다고 집에만 있지 말고 무조건 운동을 하고, 그 외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찾아야 해요. 그러면 너무도 즐거운 인생 2막이 열리거든요. 너무 재미있어서 늙을 시간이 없어요.”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한국일보

함께 볼만한 영상 - TV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