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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인터뷰]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으로 ‘강제 소환’된 가수 유열 “13년 추억할 수 있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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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가수 유열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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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은 서로에게 ‘미래를 사는 소중한 빛’이 될 겁니다.”

가수 유열(58)은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07년 4월15일 KBS FM라디오 <유열의 음악앨범> 클로징 멘트를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1994년 10월1일 첫방송 이래 13년 동안 DJ로서 엮어온 기나긴 ‘음악앨범’을 끝맺는 마지막 멘트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끝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의 말이 예언이 됐다. 뜨겁게 살았던 과거의 잔불이 오늘을 비추는 따뜻한 빛이 된 것이다. 잊고 살던 라디오 프로그램이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으로 되살아나더니 개봉 11일 만에 관객 100만명을 돌파하며 잔잔한 인기를 끌고 있다. “13년의 시간을 소중하게 추억할 수 있도록 선물을 받은 느낌이에요.” 영화가 개봉한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그의 단골 빵집에서 유열을 만나 ‘선물’처럼 돌아온 어제, 그리고 오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좋았던 원고와 편지들을 두 박스 정도 모아서 여태 간직하고 있거든요. 아내가 이제는 정리해야되지 않겠냐며 채근하곤 했는데 제가 고집을 부렸어요. 그런데 이게 쓸 일이 있더라고요.” 지난 6월 앓았던 페렴 때문에 종종 가뿐 숨을 몰아쉬던 그였지만 표정과 목소리엔 활기가 넘쳤다. 그가 <유열의 음악앨범>을 소재로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지난해 늦봄이었다. 건강 문제로 모든 활동을 접고 2년간 공백기를 보내던 그에게 정지우 감독과 프로듀서가 찾아왔다. 라디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유열은 편지, 원고와 함께 소중히 간직했던 지난 날에 대한 애정과 추억을 몇 시간이고 털어놨다. “방송, 사랑, 비행기의 공통점은 시작할 때 엄청난 에너지가 든다는 겁니다.” 첫 작가였던 송정연 작가에게 연락해 어렵사리 기억해낸 첫 방송, 첫 멘트는 극중 미수(김고은)와 현우(정해인)의 첫 만남을 장식하는 중요한 장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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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유열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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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많고 많은 라디오 프로그램 중 왜 하필 <유열의 음악앨범>이었을까. 유열은 “시간, 공간, 사람, 자연 등 모든 게 다 연결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모호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6년 정도 같이 일한 작가가 있어요. 수줍어보이지만 마음 속은 따뜻한 사람이었죠. 글이 참 좋고 여운이 있었고 음악도 많이 알았어요. 그 작가가 이후 시나리오 작가가 돼서 영화 <봄날은 간다>로 데뷔를 했고 드라마 <공항가는 길>의 각본도 맡았죠. 그분이 바로 이번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신 이숙연 작가님이에요. 우리가 함께 열심히 일했던 젊은 날에 바치는 헌사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유열에게 라디오 DJ로서 보낸 과거는 그저 흘러가 버린 옛 이야기가 아니다. 젊은 날을 뜨겁게 보낸 사람들이 일궈낸 성장의 시간 그 자체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유열씨는 그때 그 라디오 감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네.’ 그런데 그게 기분 나쁘게 들리지는 않아요. 라디오는 그 시절 우리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던 메신저였잖아요.” 영화 속에서 25년 전의 자신을 연기하는 유열의 모습에서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빠르게 변모하는 세상 속에서도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쪽을 택해온 그의 가치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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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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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개봉과 함께 13년 만에 발표한 신곡 ‘내 하나뿐인 그대’에도 옛것을 사랑하는 유열의 감성이 진득히 묻어있다. 이제는 가요계에서 거의 자취를 감춘 풍성한 현악기 오케스트라 선율 위로, 오래도록 같은 길을 걸어온 동반자에게 영원한 사랑을 고백하는 메시지가 느리게 흘러간다.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3년여 동안 고정 코너를 함께하며 인연을 맺은 그룹 다섯손가락의 이두헌이 작곡과 작사를 맡았다. 자극적인 멜로디나 가사는 없다. 착하고 진중한 메시지가 마음을 울릴 뿐이다.

이번 신곡은 그가 ‘디지털 음원’으로만 발표한 첫 곡이기도 하다. 음악의 존재감을 느낄 새도 없이 금세 차트에 올랐다가 또 사라지는 최근의 음원 유통 시장에 적응이 어렵지는 않을까. “아쉬움은 있어요. 글도 화면이 아닌 책으로 만지고 읽는 맛이 있는 것처럼 음악도 CD를 기다리고 또 선물하고, 어딘가 올려서 듣는 맛이 있는 건데 말이에요.” 그는 앞으로 이두헌과 함께 차근차근 신곡을 만들며 앨범을 완성할 예정이다. “사랑도 기다림이란 시간으로 발효되듯이, 음악도 그렇다”는 그의 지론이 실현되려면 아무래도 CD라는 물질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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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유열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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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은 옛것을 새롭게 소환하는 뉴트로 열풍의 한 가운데 있다. 사람들이 자꾸 어제를 돌아보는 이유가 뭘까. 라디오에 대한 그의 애정 어린 이야기에서 단서를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마삼트리오’의 이수만 형님(SM 총괄 프로듀서)의 해주신 말씀이 있어요. ‘라디오 DJ는 여러분이 아니라,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요. 진심을 속일 수 없던 매체로 주로 소통하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있죠.”

유열이 1986년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대상을 타며 데뷔했던 ‘대학가요제’가 7년 만에 다시 부활해 다음달 개최를 앞두고 있다. 첨단을 달린다는 유튜브에서는 20세기 말 가수들의 무대를 보려는 누리꾼들로 뜨겁게 북적거린다. ‘선물’처럼 돌아온 어제의 시간은 그렇게 오늘을 사는 빛이 되고 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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