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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90년대생이 반할 맛”··· 포도밭 거닐며 와인에 취하는, 충북 영동 와이너리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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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충북 영동엔 43곳의 와이너리가 있다. 포도 수확철인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포도밭을 구경하고 와인도 맛보는 이색 여행을 할 수 있다. 사진은 영동 여포와인농장의 포도밭을 둘러보는 요리연구가 홍신애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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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너리 투어는 포도밭 구경부터 와인과 음식 맛보기까지 눈·코·입이 한꺼번에 즐거워지는 여행이다. 국내에도 200개 가까운 와이너리가 있다.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포도 수확철이 여행 적기다. 이번엔 ‘한국의 보르도’로 불리는 포도·와인 산지 충북 영동으로 향했다. 40곳이 넘는 영동 와이너리 중 ‘도란원’과 ‘여포와인농장’을 딱 집어 골랐다. 두 곳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역의 우수 양조장을 골라 관광·체험시설 확충을 돕고 국내관광 거점으로 활성화하는 ‘찾아가는 양조장’ 사업에 올해 새로 선정됐다. 술도 맛있고 여행하기도 좋은 곳으로 검증받았다는 뜻이다. 찾아가는 양조장 홍보대사인 요리연구가 홍신애씨와 최정욱 광명동굴 와인연구소장, 정하봉 JW메리어트호텔 소믈리에가 한국와인 탐험에 동참했다.

■ 한잔 술에 터진 웃음

영동군 매곡면에 약 6000㎡ 규모로 조성된 도란원 포도밭에는 잘 익은 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청수·청포랑 같은 청포도가 먼저 눈에 띄었다. 청수는 농촌진흥청에서, 청포랑은 충북농업기술원에서 각각 개발한 품종이다. 특히 청수는 화이트와인을 만들었을 때 품질이 좋아 요즘 농가에서 묘목을 구하기 힘들 정도로 인기다. 몇 알 따서 씹어보니 향긋하고 새콤한 맛이 금세 입안을 적셨다. 맞은편 밭엔 산머루를 개량한 머루포도와 국내에서 가장 흔한 포도인 캠벨얼리 등 적포도가 한창 익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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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와이너리들은 주로 캠벨얼리나 머루포도 등 생과용 포도를 재배해 술을 담지만 다양한 실험을 위해 외국의 유명한 양조용 포도 품종도 소량 재배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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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음장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와인을 맛봤다. 도란원의 와인 브랜드는 ‘샤토 미소’다. 정성껏 만든 술을 나누며 서로 미소 짓기를 바란 뜻 아니었을까. 대표 와인은 캠벨얼리로 만든 로제 스위트. 미끈한 병 속의 선명한 다홍빛 색이 눈길을 확 끌었다. 체리·딸기·복숭아 등 과일향이 풍부했고 과하지 않은 단맛도 깔끔했다.

최정욱 소장은 “색도 예쁘고 산뜻한 단맛이 좋아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와인”이라며 “딸기생크림케이크 같은 디저트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평했다. 산머루와 캠벨얼리를 섞어 만든 레드와인 ‘프리미엄 드라이’, 청수와 네오머스캣으로 만든 화이트와인 ‘샤토 미소랑’에 이어 아직 시험 제조 중인 3년 숙성된 스파클링 와인까지 새 잔이 돌 때마다 일행의 수다와 웃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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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원의 샤토 미소 브랜드 와인 제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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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락 도란원 대표(59)는 2000년 고향에 귀농해 모친의 포도농사를 도우며 처음 와인에 관심을 가졌다. 2005년 영동이 포도와인산업특구로 지정된 뒤 군청에서 연 아카데미에 다니며 본격적으로 와인양조를 배웠다. 2009년부터 면허를 받아 술을 만들었으니 이제 10년째인데, 레드·화이트·아이스·스파클링 등 모든 와인 종류에 증류주인 브랜디까지 섭렵하며 매년 새 제품을 낼 정도로 열정적이다. 와인 숙성에 국산 참나무와 대나무를 사용하는 등 국내 실정에 맞는 제조법 개발에도 열심이다.

정하봉 소믈리에는 “선입견 없이 오직 맛으로만 한국 와인을 평가한다면 결과는 우리 예상과 많이 다를 것”이라며 “서구 와인을 기준으로 한 편견이 상대적으로 적은 1990년대생들에게 도란원을 비롯한 한국 와이너리들을 소개시켜주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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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락 도란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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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원에선 포도 2㎏을 직접 으깨 즙을 내고 효모를 넣어 와인을 만들어보는 체험프로그램(1인 2만원)을 진행한다. 용기에 담은 술은 집에 가져가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쳐 마실 수 있도록 자세히 방법을 안내해준다. 와인잔 공예나 과일청 만들기 같은 더 쉬운 체험도 있다. 간단한 와인 강의와 시음이 포함된 견학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병당 1만~4만원대의 와인도 현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

■ 늦여름 포도밭의 향기

여포와인농장은 ‘이방카 와인’으로 유명세를 탄 와이너리다. 지난해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의 방한 때 청와대에서 열린 만찬 테이블에 여포농장의 대표 제품인 화이트와인 ‘여포의 꿈’이 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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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카 와인’으로 유명세를 탄 여포와인농장의 제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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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의 꿈은 300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진 고대 품종 ‘머스캣 오브 알렉산드리아’로 만든다. 이탈리아 시칠리아나 칠레, 호주 등 일부 지역에서 더러 와인을 빚지만 국내에선 생소한 이름이다.

여인성 여포농장 대표(52)는 “10년 전쯤 영동의 젊은 포도 재배자들이 유기농으로 키우기 시작했는데, 다른 양조용 포도보다 수확량이 많고 화이트와인을 만들었을 때 특유의 향이 좋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머스캣 오브 알렉산드리아는 청포도 중에선 늦은 편인 9월 초순에 수확한다. 여름내 포도 익는 걸 구경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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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성 여포와인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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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와인에 복숭아·자두·포도·레몬·사과 등 영동산 과일을 한 입 크기로 잘게 잘라 탄산수와 함께 담은 ‘화이트 상그리아’를 한 잔씩 들고 포도밭으로 나갔다. 와이너리에 바로 붙은 포도밭에는 뮐러 투르가우, 모스카토 다스티, 세네카 등 실험용으로 조금씩 키우는 청포도 품종이 다양했다. 한 알씩 따먹기도 하며 설명을 듣는데 평소 마시던 각 품종 와인 맛의 원형을 희미하게 느낄 수 있었다.

포도밭을 구경한 뒤에는 시음장에서 포도피자 만들기 체험을 했다. 반죽한 도를 얇게 편 뒤 베이컨·피망·고추·치즈·올리브 등 토핑을 하고 마지막으로 반으로 썬 포도를 올려 모양과 색을 냈다. 오전부터 미리 달궈놨다는 화덕에 피자를 집어넣고 살살 돌려주니 5분 만에 노릇하게 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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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와인농장에서는 포도피자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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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을 올린 하와이안 피자 말고는 과일이 올라간 피자는 처음이었다. 짭짤한 치즈와 상큼한 포도가 나름 잘 어울렸다. 홍신애 요리연구가는 “화덕에서 고온으로 빨리 익혔기 때문에 포도의 당도는 올리고 수분을 날리며 재료의 장점을 살릴 수 있었다”면서 “아주 신선하고 재미있는 시도”라고 평했다.

여포농장은 피자 말고도 아이스크림·과자·김밥 만들기 등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포도를 활용한 체험프로그램을 다수 운영한다. 모든 체험은 10인 이상 가능하고 비용은 1인 5000~2만원 정도다. 병당 2만~5만원 하는 와인도 물론 시음하고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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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와인에 다양한 영동산 과일과 탄산수를 섞은 상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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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굴에서 보내는 휴가

영동에는 기업형 와인코리아를 비롯해 월류원, 산막와이너리, 에덴농장, 컨츄리농원, 비가원, 불휘농장, 영동블루와인 등 농가형까지 총 43곳의 와이너리가 있다. 매년 100종이 넘는 와인을 생산하는 명실상부한 국내 와인 중심지다. 영동 와이너리를 여행할 때 함께 들러볼 만한 곳이 있다. 영동군이 지난해 10월 135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완공·개장한 영동와인동굴(입장료 성인 3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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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읍 매천리에 자리 잡은 동굴은 폭 4~12m에 길이는 420m다. 입구의 보도블록 하나까지 와인병 모양으로 꾸몄다. 동굴 내부 온도는 섭씨 18~22도로 유지된다. 늦여름까지 피서지로 제격이다. 와인 문화관, 영동 와인관, 영화 속 와인, 환상터널, 이벤트홀, 시음·판매장 등 10개 테마존으로 꾸며진 동굴은 와인과 관련된 각종 정보 습득부터 와인 시음까지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메르켈 독일 총리,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등 유명 인사와 함께 와인잔을 건배하는 사진을 찍어 휴대전화로 바로 전송해주는 포토존엔 항상 줄이 늘어선다. 터치스크린으로 자신의 별자리를 선택하면 어울리는 포도 품종과 그 포도로 만든 추천와인을 보여주는 코너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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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병자리와 어울리는 포도로는 그르나슈 블랑이 떴다. 생명력이 강하고 맛이 약간 진하며 입안에 꽉 차는 느낌이 오래도록 지속된다는 그 와인을 당연히 찾아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굴 한쪽엔 일제강점기 탄약저장고 용도로 우리 국민을 강제동원해 만든 토굴이 있는데 현재는 와인과 간장, 새우젓 등을 보관하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었다.

포도와 와인 주산지인 영동군은 2010년부터 매년 10월 ‘대한민국 와인축제’를 열고 있다. 올해는 다음달 3일부터 6일까지 나흘 동안 영동체육관 일원에서 열 번째 축제를 연다. 영동 와인과 농산물 시식은 물론 와인 족욕, 나만의 와인 만들기 등 각종 이벤트가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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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 글·사진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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