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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이슈 양승태와 '사법농단'

기피신청에 3개월 재판 정지, 임종헌 또 불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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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핵심 인물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60)이 재판부를 바꿔달라며 낸 기피신청을 법원이 두 차례 기각했다. 문제는 임 전 차장이 또 불복해 대법원에 재항고를 할지 여부다. 재판장의 소송지휘에 대한 단순한 불만은 기피사유가 될 수 없고, 재판을 지연시킬 목적으로 기피신청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피신청 때문에 임 전 차장 재판은 3개월간 정지된 상태다.

기피신청 기각 결정에 대한 임 전 차장 항고를 또 다시 기각한 지난 2일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배준현 부장판사)의 결정문을 보면, 재판부는 임 전 차장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임 전 차장이 주장한 기피사유를 ‘개별적’으로는 물론 ‘전체적·종합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윤종섭 재판장에게 불공평한 재판을 할 것이라는 의혹을 갖는 게 합리적이라고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없다”는 게 재판부 말이다. 앞서 임 전 차장 기피신청을 처음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손동환 부장판사) 판단도 같았다. 임 전 차장은 자신의 사건을 심리하던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의 윤 재판장이 유죄의 심증을 드러내며 불공정한 진행을 했다며 지난 6월2일 기피신청을 냈다.

특히 임 전 차장이 댄 기피사유의 상당 부분이 소송지휘권을 가진 재판장의 재량에 속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기피신청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라고 서울고법 재판부는 판단했다. 윤 재판장이 검사 의견에 변호인이 재반박하지 못하게 했다거나, 피고인이 반대하는 증인을 채택했다는 등의 기피사유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기피제도는 원래 당사자와 법관이 특수한 관계에 있다거나 법관이 소송절차 외의 경로로 사건에 대해 일정한 판단을 갖고 있어 공정성을 기하기 어려운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며 “소송지휘에 대한 불만만으로는 곧바로 기피사유가 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재판부는 “검사·피고인 또는 변호인은 재판장의 처분에 대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 304조 1항을 언급했다. 재판장의 소송지휘에 대해서는 이 조항과 같이 별도의 불복 수단을 마련하고 있고, 기피신청이 아니라 그러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해 10월15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을 답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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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과연 임 전 차장이 대법원에 재항고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형사소송법 415조는 재항고에 대해 “항고법원 또는 고등법원의 결정에 대하여는 재판에 영향을 미친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이 있음을 이유로 하는 때에 한해 대법원에 즉시항고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법원의 결정에 불복한 때 곧바로 제기할 수 있게 한 항고와 달리 재항고는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이 있음을 이유로 한 때’라는 조건을 달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1987년 재판장의 재량에 속하는 사항은 재항고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적이 있다. 구속기간을 연장한 재판부 결정에 불복해 피고인이 대법원에 재항고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형사소송법 415조를 인용하면서 “(피고인 주장이) 법령 위반이 있다는 취지가 아니고 구속기간 갱신 결정이 타당하다고 본 원심 결정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써 이는 원심의 재량범위에 속하는 사실의 판단을 공격하는데 지나지 않아 적법한 재항고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1월 대법원이 임우재 전 삼성전기 상임고문이 이혼소송을 심리하던 서울고법 강민구 부장판사에 대해 낸 기피신청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결정했을 때도 재판장의 소송지휘가 아니라, 강 부장판사가 장충기 삼성 사장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등 일방 당사자와의 ‘특수한 관계’가 문제된 경우였다.

민사소송이기는 하지만 1994년 서울고법은 증거채택을 안해줬다는 이유로 당사자가 법관에 대해 기피신청한 사건에서 재판장의 소송지휘에 관한 단순한 불만을 기피사유로 한다면 법관의 독립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판결을 하기도 했다. 당시 재판부는 “증거 채택이나 소송지휘 등의 조치가 당사자 일방에 불리하게 될 수 있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며 “법관의 조치가 자기에게 불리하다는 불만을 내용으로 하는 기피사유를 허용한다면 법관의 독립을 저해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 재판부에는 현재 사법농단 피고인인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이 포함돼있다. 형사소송법은 소송 지연을 목적으로 하는 기피신청은 기각하라고 규정한다.

만약 임 전 차장이 재항고한다 하더라도 어느 대법관이 심리할지가 문제다. 기피신청은 재판 절차에 대한 사안이기는 하지만, 사법농단이 대법원 내부에서 발생한데다가 대법관들 중 일부는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어 ‘공정성’ 확보를 우려하는 시선이 있다. 대법원이 사법농단 피고인의 사건을 심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권순일 대법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차장으로 근무했고, 이동원·노정희 대법관은 임 전 차장 공소장에 재판 개입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안철상 대법관은 지난해 법원행정처장으로 있으면서 사법농단에 대한 대법원 자체 조사를 실시했고, 박상옥 대법관 임명을 반대한 글을 올린 법관들에 불이익을 주려고 시도한 행위가 임 전 차장 혐의에 포함돼있다. 그외에 다수 대법관들이 지난해 1월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지자 유감을 표명하는 공동성명을 내는 데 참여했다.

임 전 차장과 같은 시기, 같은 곳에서 근무한 경우도 있다. 김상환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재판장으로 있을 때 임 전 차장이 형사수석부장판사였고, 안철상 대법관과 임 전 차장은 2004~2005년 사법연수원 교수로 재직했다. 배당·심리에서 배제하는 제척사유는 ‘법관이 피해자인 때’ 등으로 제한돼있고, 사건을 회피할지 여부는 대법관 스스로가 결정한다.

임 전 차장 재판은 현재까지 3개월간 정지된 상태다. 임 전 차장이 재항고를 해 대법원으로 넘어갈 경우 얼마나 더 시간이 소요될지 가늠할 수 없다. 오는 11월14일이면 임 전 차장이 기소된 지 1년이 된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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