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오승환의 질책, 배제성을 깨우다 "창피했고 가당치도 않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스포츠서울

KT 배제성. 수원|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수원=스포츠서울 배우근 기자] 투수 배제성(23)은 등판 후 경기가 끝나면 코치, 포수, 전력분석원에게 일일이 인사를 한다. 한두번은 누구나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배제성은 그게 몸에 배인듯 매번 그렇게 한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고마움의 표시’라고 했다. 특별한게 아니라 자신이 마운드에서 잘 던질 수 있게 도와준 이들에 대한 당연한 행동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생활방식이자 루틴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

전력분석팀은 KT투수 중에 가장 데이터를 잘 활용하는 투수로 배제성을 첫 손에 꼽는다. 가장 빈번하게 찾아오는 투수도 배제성이다. 전력분석팀에 별도의 자료를 부탁하는 투수 역시 배제성이다. 타자별 잘치는 코스와 구종을 받아 머릿속에 입력하고 마운드에 오른다는 그는 “상대타자의 약점을 알고 들어가면 생각을 하게 된다”라고 했다.

장성우와의 봉투사건도 유명하다. 배제성은 지난달 20일 키움전에 선발등판해 5.2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수훈선수로 선정되며 작은 상금이 든 봉투를 받았다. 그는 그 봉투를 포수 장성우에게 내밀며 “좋은 투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선배님 덕분”이라고 했다. 장성우는 “마, 됐다”라며 진심이 느껴지는 그의 마음 씀씀이만 받았다.

배제성은 2015년 프로데뷔한 이래 4년간 매미 유충처럼 땅속에 있었다. 그러나 올시즌 팀의 주축투수로 성장했다. 발탁 기회와 성장의 계기를 놓치지 않았다. 지난시즌 마무리캠프 때였다. 이강철 감독의 눈에 배제성이 들어왔다. 큰 키에서 내리꽂는 직구가 인상적이었다. 한 눈에 선발자원임을 간파했다. 2018시즌엔 4이닝 투구가 전부일만큼 묻혀 있었기에 감독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는 프로의 문턱도 간신히 통과했다. 신인드래프트 2차 9라운드 전체 88순위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성남고 시절에 팔꿈치 통증으로 거의 등판하지 않았다. 롯데는 그의 가능성만 보고 선택했다. 배제성은 롯데에선 꽃을 피우지 못하고 2017년 KT로 트레이드 되며 마침내 빛을 보게 됐다.

스포츠서울

kt 선발투수 배제성이 역투하고 있다. 2019. 7. 9. 수원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KT 이강철 감독은 올시즌 그를 선발로 내세웠다. 그러나 제구에 약점을 드러내며 승리의 단맛이 아닌 패배의 쓴맛을 거듭 봤다. 다시 불펜으로 보직이 바뀌었다. 그러나 반전의 계기는 찾아왔다. 5월 5일 어린이날이었다. 선발 금민철이 일찍 무너졌고 배제성이 긴급 투입됐다. 그는 그 경기에서 5이닝 무실점의 쾌투를 보였다. 이후 다시 선발진의 한 축을 맡게 됐다. 8월 들어선 4연속 경기 승리를 챙기며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4경기의 방어율은 0.39(23.1이닝 1실점)에 불과하다.

그는 자신이 달라진 이유로 멘털의 변화를 들었다. 어린이날 경기를 기점으로 마운드에서 싸움 상대가 바뀌었다. 그 전에는 상대가 아닌 자신과 싸웠다. 잘 던질 수 있을까. 맞진 않을까. 그런 걱정들과 싸웠다. 그러나 그날 이후, 정확하게는 그날 경기부터 상대타자와 싸우게 됐다. 배제성은 그 순간에 대해 “나를 감싸던 뭔가가 깨졌다”라고 표현했다. 이강철 감독도 “그때부터 (배)제성이가 맞더라도 초구부터 들어가더라. 볼질을 하지 않고 초구 승부를 하면 맞더라고 계속 던질 수 있다. 자신감이 붙은 모습이었다”라고 기억했다.

굴곡을 거친 배제성은 KT의 주전으로 자리매김 했다. 그렇다고 위기가 얌전하게 비껴갈리 없다. 후반기에 들어가며 슬럼프가 찾아왔다. 마운드에서 투구하는데 자꾸만 공이 빠지는 느낌이 찾아왔다. 자신감이 떨어졌다. 그래서 배제성은 공을 꽉 움켜쥐고 던졌다. 그러자 이번엔 제구가 안됐다. 이때 오승환이 그의 마음을 잡아주었다. 함께 한 식사자리였다.

배제성은 오승환 앞에서 힘들다고 투정을 했다. 주변에서 다들 그에게 ‘체력적으로 힘이 빠진거 아니냐’는 위로를 하던 때였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오승환은 위로가 아닌 질책을 했다. 1년차 투수가 “힘들다”라고 말하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배제성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대선배가 보기에 얼마나 가당치도 않을까 싶어 창피함도 들었다. 오승환의 질책은 그의 마음을 다잡는데 큰 도움이 됐다.

이강철 감독 역시 후반기 그의 호투를 바라보며 “배제성 덕분에 5위 싸움을 하고 있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배제성은 ‘프리미어12’와 ‘2020도쿄올림픽’을 겨냥한 한국 야구대표팀 60명의 명단에도 포함됐다.
kenny@sportsseoul.com

[기사제보 news@sportsseoul.com]
Copyright ⓒ 스포츠서울&sportsseoul.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