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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신율의 정치 읽기] 가짜뉴스를 놓고 격돌하는 두 가지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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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지난 8월 28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총학생회 주최로 열린 ‘제2차 조국 교수 STOP! 서울대인 촛불집회’에서 대학생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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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통일까지 된다면 2050년 국민소득 7만~8만달러 시대가 가능하다는 국내외 연구 결과도 발표되고 있다.” (2019년 광복절 대통령 경축사)

“자유한국당은 추측을 소설로 만들고 그 소설을 확증으로 부풀리면서 후보자의 가족에 대한 신상 털기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2019년 8월 20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자유한국당이 인사청문회를 열기도 전에 가짜뉴스 공장 역할을 하고 있다.” (2019년 8월 22일 이인영 원내대표)

“근거 없는 헛소문, 가짜뉴스로 청문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사법개혁을 좌초시키겠다는 정치 꼼수.” (2019년 8월 20일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일본 쪽으로부터 반응이 없다면 지소미아 종료는 불가피하다는 점을 역설했고 따라서 미국은 이번 우리 정부의 결정을 이해하고 있다.” (2019년 8월 22일 청와대 관계자)

“한일관계를 악화시킨 원인과 당사자는 고려치 않고 피해 보는 우리를 향해 비난하는 신(新)친일파 같은 행위는 그만둬야 한다. 그렇게 할수록 국민들이 ‘저 사람들은 친일파에 가깝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그 당은 친일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019년 8월 23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부는 비상한 각오로 엄중한 경제 상황에 냉정하게 대처하되 근거 없는 가짜뉴스나 허위 정보, 과장된 전망으로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13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한 말이다. 또 지난 8월 16일에는 한국기자협회 창립 55주년을 맞아 기자협회에 보낸 영상 축사에서 “가짜뉴스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진실은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현 정권은 가짜뉴스에 정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가짜뉴스는 몰아내야 한다. 일반 국민의 잘못된 판단을 유도하기 때문에,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차원에서 마땅히 없어져야 하는 존재다.

문제는 가짜뉴스를 어떻게 판별할 것인가다.

서두에 적은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보자. 통일이 되면 우리나라 GDP가 세계 6위에 도달할 것이라고 문 대통령은 밝히고 있다. 실제 골드만삭스·현대경제연구원·국회예산정책처 등은 통일 한국의 2050~2060년 1인당 GDP가 7만~8만달러에 이를 것이라 전망했다. 영국 경제경영연구센터(CBER)의 보고서 역시 “남한 생활 수준으로 통일된 한국은 2030년대 영국과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GDP를 갖게 될 것”이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남한의 생활 수준으로 통일된 한국’이라는 점이다. 즉, 이런 예측은 북한이 개혁 개방을 하고 이를 통해 경제발전을 해 우리 수준의 경제력이 됐을 때 통일이 된다면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막연히 통일만 되면 세계 6위의 GDP가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런 전제를 말하지 않고 통일된 한반도가 2050년이 되면 1인당 국민소득이 7만달러에서 8만달러가 된다는 언급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전제가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일본과 지소미아 파기 선언을 했을 때, 익명의 청와대 당국자는 한일 지소미아 파기에 대해 “미국이 이해했다”고 했다. 그런데 딱 세 시간 후 미국 국방부는 “우리는 한국과 일본이 서로의 이견을 해소하기 위해 협력할 것을 독려한다. 나는 두 나라가 신속하게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뒤이어 미 국방부는 다시금 “문재인정부가 지소미아 갱신을 보류한 것에 대해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명한다”고 했다. 여기부터 “미국이 이해했다”는 청와대 주장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은 “우리는 한국이 정보 공유 협정에 관해 내린 결정을 보고 실망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외교가에서 ‘실망’이라는 표현은 좀처럼 쓰지 않는다. 더구나 동맹관계 국가 사이에서는 더욱 그렇다. 과거 2013년 아베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을 때, 오바마 전 대통령이 ‘실망했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미국이 그만큼 강하게 일본에 대한 경고를 했다는 의미다. 이번에 우리를 향해 실망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이 우리에게 강력히 항의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종합적으로 판단하건대 ‘미국이 우리의 결정을 이해했다’는 청와대 주장은 솔직한 말은 아닌 듯싶다. 미국이 심하게 반발하자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지소미아 종료와 관련해 그동안 미국과 충분히 소통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청와대는 ‘충분한 소통’을 ‘미국이 이해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한일 간 지소미아는 일본과 관련된 문제라기보다는 미국과 관련된 문제다. 정보 교류 수준과 정보의 질에 관해 유용성 이상의 의미, 즉 동북아 안보 질서에 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지소미아 파기의 문제점을 거론하는 것이 일본과의 관계 악화만을 의미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런데 여당은 다른 주장을 한다. 앞에 나열한 언급 중 이해찬 대표의 말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를 향해 비난하는 신(新)친일파 같은 행위”라는 언급은 결국 지소미아 파기 혹은 종료를 비판하는 행위는 ‘신(新)친일’이라는 식으로 이해되기 십상이다. 과연 이런 언급이 적절한지, 이것은 외교를 볼모로 한 또 다른 프레임 만들기는 아닌지 궁금해진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미국 국무부는 ‘신(新)친일파’라 할 수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문제로 넘어가보자. 여당과 후보자 측은 연일 야당의 주장 혹은 언론 보도가 가짜뉴스라고 몰아붙인다. 물론 조국 후보자가 억울한 측면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야당 주장을 무조건 가짜뉴스로 몰아붙이는 것은 여러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상대가 주장하는 것을 가짜뉴스로 몰아붙이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사례의 적시가 필요하다. “무슨무슨 주장은 이러이러해서 가짜뉴스다”라고 말해야 하는데, 지금 여권 주장은 야당이 제기하는 의혹을 그냥 뭉뚱그려 가짜뉴스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지금 제기되는 의혹 전체, 예를 들어 조 후보자 딸이 단국대 의대 논문에서 제1저자로 등재된 사실 역시 거짓이라는 것인지, 아니면 고대 입학에 이 논문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의혹 제기 자체가 거짓이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여당 논리대로라면 가짜뉴스에 대한병리학회도 놀아나고 있고 대한의학회도 부화뇌동하고 있다는 식밖에 되지 않는다.

검찰이 조국 후보자 딸 관련 대학과 조국 후보자의 사모펀드를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했다. 여당 논리대로라면 압수수색을 한 검찰이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 법원도 가짜뉴스에 속은 모양새가 된다. 가짜뉴스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근거가 과연 무엇인지부터 밝혀야 한다. 조국 후보자 딸의 입시 의혹에 대해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어떤 부분이 가짜뉴스인지 구체적으로 소상히 밝혀야 한다. 청문회까지 굳이 기다릴 이유가 없다.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언론이 연일 조국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을 제기하는 상황인데, 청문회까지 기다렸다 진실을 밝힐 것이 무언가.

가짜뉴스 중에는 정말 황당하고 말도 안 되는 적나라한 것도 있다. 그러나 상황 혹은 특정 사안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가짜’의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다. 간단히 판단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에 가짜뉴스를 단속한다는 것은 자칫 언론과 사회의 ‘해석의 자유’를 해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힘센 자들의 자기변명 수단으로 ‘가짜뉴스’라는 용어가 사용될 수도 있다. 진실을 가짜뉴스로 몰아붙일 위험도 존재한다.

지금까지는 가짜뉴스가 돌 때 제도 언론이 나서 바로잡고는 했다. 이런 자정 기능에 의한 가짜뉴스 추방이 올바른 방법이다. 정부가 나서 가짜뉴스를 골라내거나 특정 사안과 관련된 것을 가짜뉴스라고 권력이 먼저 주장하는 것은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가짜뉴스는 추방돼야 할 존재지만, ‘가짜’에 대한 검증은 시민사회와 언론에 맡겨야 한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24호·추석합본호 (2019.09.04~2019.09.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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