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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미국 “지소미아 종료는 미군에 위협”…사실일까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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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관계가 심상치 않다. 지난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 종료 결정 이후 미국의 반발이 거세지면서부터다.

미 국무부 모건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25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깊이 실망하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 방어를 더 복잡하게 하고 미군 병력에 대한 위협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은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 갱신을 보류한 것에 대해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현한다”고 밝힌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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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장관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28일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를 불러 자제를 요청하는 등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이 “(한일) 양측이 관여된 것에 매우 실망했고 여전히 실망하고 있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도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다른 방법들을 갖고 있지만, 매우 강력한 (한일) 양국 간 정보공유 합의와 같이 효과적인 것은 없다”고 거들었다. 랜들 슈라이버 미 국방부 차관보도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이 지소미아를 연장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미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지소미아는 정말 효용이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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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독도방어훈련에 참가한 이지스구축함 세종대왕함이 독도 앞을 지나고 있다. 해군 제공


정부는 지소미아를 유지할 명분도, 효용성도 없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28일 브리핑에서 “안보와 수출규제를 연계한 장본인은 일본”이라며 지소미아를 유지할 명분은 없다고 강조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도 26일 “지소미아는 한일 군사정보 교류에 있어서 효용 가치가 높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소미아가 군사적 측면에서 효용성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지소미아는 한국에게 일본의 북한 핵, 미사일 관련 전자정보(ELINT)에 접근할 길을 열어준다. 일본 정보능력의 핵심은 전자정보다. 1983년 9월 대한항공 007편이 사할린 상공에서 구소련에 격추됐을 때, 일본은 구소련 전투기 조종사가 지상기지와 교신한 내용을 홋카이도 최북단 와카나이 감청기지를 통해 녹음, 국제사회에 폭로해 주목을 받았다.

현재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에 이르는 일본 열도 전역에는 20개 안팎의 감청 시설이 있다. 이 시설들의 감청범위는 5000㎞에 달한다. 타이완을 비롯한 서태평양 전역과 남중국해 북부, 한반도와 사할린 등이 감시 범위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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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위대 소속 EP-3 전자정찰기가 동중국해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해상자위대 제공


YS-11EB와 EP-3 등 전자전기들은 수시간 동안 비행하며 전자정보를 수집한다. 일본이 새로 개발한 전자전기는 C-2 수송기를 개조한 것으로 먼 거리에서도 전자파를 수집할 수 있으며 다수의 표적으로부터 정보를 동시에 수신하는 능력을 갖췄다. 자체적인 분석기능도 있어 지상에서의 정보처리 시간을 단축하는 등 첨단 기능을 갖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나 탄도미사일을 사용하려 할 때, 어떤 형태로든 무선 신호를 보낼 수밖에 없다. 이때 사용하는 전자장비의 전자파 특성과 교신내용을 파악한다면 도발 징후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 일본이 수집한 대북 전자정보가 유용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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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발사차량에서 가상 표적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추적할 때도 일본의 정보가 도움이 된다. 지난달 25일 북한이 쏜 미사일은 발사 후 고도 50㎞까지 상승하며 200㎞ 정도를 비행하다 급상승과 수평비행을 반복하는 풀업(Pull-Up) 기동을 한 뒤 우리 군의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그린파인 레이더를 비롯한 우리 군의 탐지자산은 북한이 남쪽으로 미사일을 쐈을 때 100% 탐지할 수 있다. 하지만 동북쪽으로 발사하면 지구 곡률 때문에 낙하단계 탐지가 쉽지 않다. 이를 보완하는 것이 일본의 정보다. 일본은 낙하단계에서의 추적과 탐지가 가능하다. 군이 지난달 25일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 비행거리를 430㎞, 690㎞로 발표했다가 이튿날 약 600㎞로 수정한 것도 지소미아에 의한 정보공유 결과라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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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위대 소속 패트리엇(PAC-3) 요격미사일포대가 이와쿠니 기지에서 경계작전을 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일본은 우리나라가 휴전선 일대에서 수집한 북한 관련 전자정보에 주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과 인접한 우리나라는 휴전선에서 북한군의 교신내용을 감청하는데 용이하다. 북한과 같은 언어를 사용해 정보에 대한 이해도도 일본보다 높다. 북한 미사일 발사 초기단계 정보도 일본이 주목하는 부분이다.

다만 전자정보는 기밀등급이 높은 고급정보로, 높은 수준의 신뢰관계가 없다면 공유가 쉽지 않다. 한일 군 당국이 협력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미일, 한미 수준의 신뢰 구축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에서 지소미아를 연장했어도 정보공유는 제한적인 수준에 그쳤을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미국이 지소미아 종료에 반발하는 진짜 이유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미국이 “미군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며 반발하는 것은 한국과 일본을 한데 묶어 동일한 전구(戰區, 작전지역)로 보는 미국의 세계 전략에 기인한다.

북한이 서부 내륙에서 일본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한국군과 미군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초기단계 정보를 공유한다. 미군과 자위대는 낙하단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요격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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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잠수함. 연합뉴스


일본으로 날아오는 북한 미사일을 요격하는 과정에서 미군이 한국군에서 얻은 발사 초기단계 정보를 미일 연합 요격작전에 활용한다면, 주일미군과 일본을 지키기 수월해진다. 반대로 북한이 우리나라에 미사일을 발사하려 하거나 북한 잠수함이 동해로 진출하려는 정황을 자위대가 포착했을 때, 미군이 자위대에서 얻은 정보를 한미 연합방위태세에 활용하면 북한 도발 대응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문제는 미국이 한국에서 얻은 정보를 임의로 일본에 제공하거나, 일본에서 받은 정보를 한국에 비공식적으로 넘긴다면 중대한 외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일간 정보격차를 해소하지 못하면 북한 미사일 요격을 위한 한미일 안보협력의 수준을 높일 수 없다. 하지만 부적절한 정보공유는 상호 신뢰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외교적 손실을 초래한다.

이 문제를 해소하는 최적의 방법은 미국과 일본, 한국과 미국이 지소미아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것처럼 한일 간에도 지소미아를 체결, 양국이 신속하게 정보공유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일 양국이 서로 공유한 정보에 미국의 정보가 더해지면 한일 군 당국은 북한 핵과 미사일 공격을 저지하는 능력이 크게 높아진다. 이를 통해 미국은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안전을 확보하게 된다. 동맹국간 협력을 강조하는 미국의 해외전략과도 맞아떨어진다. 정보공유를 매개로 한미일 3국을 한데 묶는다면 북한, 중국, 러시아에 맞서는 동아시아 연합 전구 구축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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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미사일이 성능시험을 위해 발사되고 있다. 미 육군 제공


그런데 정부가 지소미아를 종료하면서 미국의 전략에 중대한 차질이 생겼다. 미사일 대응은 시간이 생명이다. 그만큼 미국과 동맹국들 간에는 정보의 흐름이 빠르고 원활해야 한다. 하지만 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정보의 동맥경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TISA)이 있으나 TISA는 한국과 일본의 동의가 없으면 정보교환이 불가능하고, 실시간 대응도 어렵다. 미국이 2016년 한일 지소미아 체결을 원했던 이유,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미국이 반발하는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미국 내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계속 지적하고 있다. 빈센트 브룩스 전 한미연합사령관은 28일(현지시간)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지소미아에 대해 “미국과 한국, 미국과 일본 간 정보공유는 원활했기 때문에 한일정보공유 매커니즘이 잘 실행되는지 여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미국 민주주의수호재단의 데이비드 맥스웰 선임연구원도 “지소미아는 미국이 추진하는 통합 미사일 방어체계의 핵심”이라며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정보 공유 속도를 늦추고 집단방위를 약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하면서 이같은 부분까지 검토를 했을까. 진실은 청와대의 높은 담장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군사적 측면만 보지 말고, 대한민국 외교라는 큰 측면에서 봐달라. 미국은 한일 갈등에 대해 그동안 뒷짐만 지고 있었으나, (지소미아 종료로) 불편함을 느낀다면 개입할 것이다”라는 정부 소식통의 설명은 곱씹어볼 대목이다.

지소미아 종료로 자국의 이익이 침해됐다고 생각하는 미국과 일본, 지소미아를 대일 관계의 돌파구로 활용하려는 한국 사이에서 3개월 시한부인 지소미아의 운명은 뒤바뀔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 일본의 수출규제 대응에 전념해야 할 시기에 미국과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할 여유는 없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싸워야 할 적을 계속 늘렸다가 패망에 이른 나치 독일의 전례를 정부가 기억해야 할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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