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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ESC] 콩돌해변에 누우니 내가 점박이물범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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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백령도·대청도

수억년 무늬 간직한 두무진 기암괴석 사이를 걷다

앞바다 암초에 드러누운 점박이물범들과 눈 맞추고

콩 같은 자갈, 밀가루 같은 모래 해변에 멈춰

천연기념물의 보고이자 지질 명소 서해 백령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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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미약을 먹었는데도 옅은 멀미가 밀려왔다. 배는 출발 전부터 윙윙거렸다. 자리에 앉아도 몸이 덜덜 떨렸다. 지난 20일 아침 7시50분, 여객선 하모니플라워호(2100톤급)는 예정대로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을 출발했다. 바람을 쐬러 2층 갑판으로 나갔다. 거센 바람에 눈 뜨기조차 어려웠다. 그 와중에도 바다를 오래도록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주위는 온통 바다였다. 주변 섬조차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배가 바다에 그리는 흰 꼬리만 선명했다. 출항 4시간 만에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도 용기포 신항에 도착했다. 인천항에서 228㎞ 거리, 북한 황해도 장산곶과는 불과 10여㎞ 거리 서해 서북단이다. 항구에 내리자 맨살을 드러낸 작은 바위산들이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절벽 같은 산들을 돌아 백령도 북서쪽으로 차를 몰았다. ‘신이 만든 마지막 작품’이라 불리는 두무진(백령면 연화리)으로 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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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두무진 포구는 을씨년스러웠다. 듬성듬성 솟은 날카로운 ‘용치’(용의 이빨)부터 눈에 띄었다. 적의 상륙을 막으려고 해안 얕은 물에 철심처럼 세워놓은 철근·콘크리트 시설물이다. 어느 해병대원은 면회 온 친구들과 해변을 거닐었고, 한 중년 남성은 홀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사연을 알 도리는 없다. 물고기 가득 담은 어망을 식당으로 옮기는 외국인 노동자와 출항을 앞둔 유람선 한 척만이 관광지로 이름난 포구 두무진에 왔다는 걸 실감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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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무진은 백령도 북서쪽 해안 4㎞를 따라 이어지는 거대한 ‘선대암’(우뚝 선 큰 바위) 지대다. 수억년 전 형성된 높이 50m 안팎 규암 절벽들이 유서 깊은 건축물인 양 줄지어 있다. 이름도 바위 생김새에서 왔다. ‘뾰족한 바위가 많아 마치 머리털(두모) 같다’, ‘기암들이 마치 장군의 머리(두무) 같다’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환경부는 지난 6월28일 두무진의 역사와 생태 가치를 인정해 국가 지질공원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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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그대로의 바위가 유적처럼 보인다면 무늬 때문일 것이다. 두무진 선대암을 가까이서 보며 걷는 산책길이 있다. 포구에서 왕복 1시간가량 코스다. 가끔 경사가 급한 길도 만나지만, 대부분 나무 계단으로 이어진다. 포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지나 촛대바위와 형제바위라 불리는 두쌍의 바위가 내다보이는 길 위에 섰다. 이름난 먼 바위보단 이름 없는 가까운 바위를 오래 바라봤다. 수억년 섬세한 무늬를 간직한 바위는 견결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웅장한 기암괴석들이 파도와 바람에 닳고 깨져 절벽(해식애)과 동굴(해식동)이 생기는 동안, 뼛속까지 박힌 무늬는 결을 잃지 않았다. 수억년을 견딘 바위는 할머니의 손을 닮았다. 주름지고 갈라져 우둘투둘하지만, 메마른 감촉이 따듯했다. 산책길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해안으로 내려가 선대암들을 볼 수 있다. 그 바위 앞에 서면 안다. 왜 인간들이 예로부터 ‘신’이란 존재를 종종 바위에서 찾았는지를. 거대한 바위는 그 자체로 압도적인 풍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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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선 유적지 같던 풍경이 유람선 위에선 회화 작품처럼 보인다. 오후 2시30분, 유람선 ‘백령 1호’에 올랐다. 창가에 자리 잡고 선대암들을 흘려 봤다. 그 앞바다에 솟은 암초 위에 가마우지와 갈매기들이 떼 지어 쉬고 있었다. 그때 유람선 선장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들 오늘 참 운이 좋네요. 물때랑 날씨랑 여러 조건이 딱 맞아야 볼 수 있는데 오늘이 딱 그날이네요.” 선장이 가리킨 곳은 또 다른 암초. 샌드백처럼 생긴 기이한 생명체들이 떼 지어 올라와 있었다. 점박이물범이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자 천연기념물(제331호)인 점박이물범은 회갈색에 점무늬가 박힌 피부, 짧은 앞발, 안쪽에 들어가 있는 귀가 특징이다. 몸 크기는 사람과 비슷하다. 키 160~170㎝, 몸무게 80~120㎏ 정도다. 최대 10분 동안 수심 100m 이상 잠수하며, 쥐노래미, 조피볼락(우럭) 등을 잡아먹는데, 워낙 먹성이 좋아 어민들에겐 ‘애물단지’라고 한다. 봄에 중국에서 건너왔다가 겨울에 돌아간다. 백령도 앞바다에 200~400마리가 서식하는데 두무진 앞바다엔 최대 15마리가량 산다고 한다. 이날 본 점박이물범은 총 아홉 마리였다. 물범들은 드러누워 있거나 엎드려 있거나 암초에 매달려 있었다. 망원렌즈를 당겨 보니 표정이 살아 있다. 한 마리는 졸고, 다른 한 마리는 먼 산을 바라본다. 유람선 소리에 놀랐는지 이쪽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물범도 있다. 한참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다가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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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는 천연기념물의 보고다. 오후 4시, 백령도 남부에 있는 용트림바위는 암석이 겹겹이 쌓여 위태롭게 서 있었다. 용이 몸을 비틀며 하늘로 올라가는 생김새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용트림바위 주변에 두 개의 천연기념물이 있다. 남포리 습곡구조(제507호)와 콩돌해변(제392호)이다. 용트림바위 전망대에서 숲길로 접어들면, 15분 만에 바다로 내려가는 깊은 골짜기가 보인다. 오솔길도 아닌 언덕 비탈길을 5분가량 내려갔다. 해변엔 높이 50m 바위가 있다.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습곡구조다. 땅속 깊은 곳 양쪽에서 강한 압력을 받아 깊은 굴곡을 그리며 휘어지다 끊어진 지층이 80m가량 이어진다. 수억년 전 형성된 지층이 마치 방금 부서진 쿠키의 단면처럼 결이 촘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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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돌해변은 용트림바위 전망대에서 차로 10분 거리다. 해변 자갈들이 콩알처럼 작고 둥글어 붙은 이름이다. 주변 기암에서 떨어진 돌들이 오랜 시간 파도와 폭풍, 다른 돌멩이에 닳고 닳아 콩처럼 변했다고 한다. 길이 1㎞가량 해변에선 백색, 갈색, 적갈색, 회색, 청회색 둥근 자갈들을 볼 수 있다. 오후 5시, 해변을 걷다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강낭콩이나 바둑알처럼 생긴 돌멩이들을 찾고 있었다. 급기야 맨발로 콩돌을 밟으며 거닐다 마른 해변에 누워버렸다. ‘촤르르촤르르’. 파도 소리마저 생콩을 그릇에 쏟을 때 나는 소리 같다. 콩돌 위에 누워 눈 감고 파도 소리 들으면 물질하다 암초에 드러누운 점박이물범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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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전 11시, 섬을 떠나기 전 사곶해변(천연기념물 제391호)에 들렀다. 여객선 선착장 용기포 신항에서 차로 5분 거리다. 사곶해변은 과거 군 비행장으로 쓰였던 천연비행장이다. 해안선 길이 3㎞가량인 해변은 모래 알갱이가 작고 균질해 바닥이 단단하다. 해변 모래는 밀가루처럼 곱고 깨끗하다. 오전부터 여행객들은 해변으로 나와 거닐고 있었다. 해무와 모래, 바닷물밖에 보이지 않는 풍경에서도 자세를 뽐내며 사진 찍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바위도, 생명체도, 돌멩이도, 모래도 생경한 이 섬에 오면 누구라도 그 낯선 순간마다 들뜰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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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여행 수첩

가는 길 안개가 많은 날, 인천항에서 배가 뜨지 못해 헛걸음하는 여행객들이 있다고 한다. 미리 안개주의보 등을 확인해야 한다.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백령도 용기포 신항까지는 배로 3시간30분~4시간이 걸린다. 인천항에서 아침 7시50분(하모니플라워호), 8시30분(코리아킹호), 오후 1시(웅진훼미리호) 하루 총 3차례 출항한다. 가는 길에 소청도와 대청도에 잠시 정박한다. 백령도에서 인천까지도 아침 7시(웅진훼미리호), 오후 12시50분(하모니플라워호), 오후 1시30분(코리아킹호) 하루 3차례 출항한다. 배편은 여객선 예약 누리집 ‘가보고 싶은 섬’(island.haewoon.co.kr)에서 예매할 수 있다. 편도 6만6500원(하모니플라워호 기준). 차량은 하모니플라워호만 적재할 수 있다. 연말까지는 할인가로 편도 7만원(소나타 기준)에 실을 수 있다. 두무진 유람선은 미리 배 시간을 문의해야 한다.(032-836-8088) 성인 1만9천원.

렌터카 백령도 여행은 대중교통보다 승용차를 이용하길 권한다. 진촌리 해송여행사(032-836-1100)에서 하루 7만원(자차보험 포함·주유비 별도)에 빌릴 수 있다.

숙소 진촌리 주변 숙소들이 많다. 트윈스모텔(032-836-1100)은 가족 단위로 방문해도 될 만큼 깔끔하다. 온돌방 기준 5만원.

식당 백령도는 평양냉면이 맛 좋기로 유명하다.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가을리 ‘시골냉면’(032-836-1270)도 별미다. 메밀냉면 7천원. 수육 8천원. 저녁 늦게까지 문 여는 식당은 ‘청풍감자탕’(032-836-5455)이 있다. 감자탕(3만5천원~), 삼겹살(1만2천원~), 해물아귀찜(4만원~) 등 한식 메뉴가 여럿이다.

더 둘러볼 만한 곳 점박이물범들은 보통 백령도 북동쪽 해안에서 바다로 800m 지점 ‘물범바위’에 출몰한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11월 물범바위 인근 하늬해변 앞바다에 자연석을 쌓아 새 물범 쉼터를 만들었다. 하늬해변 옆에 감람암 포획 현무암 분포지(천연기념물 393호)가 있다. 이곳 또한 두무진, 사곶해변, 콩돌해변, 용트림바위와 함께 지난 6월 국가 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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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인천)/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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