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의사반대에…한발짝도 못나가는 원격의료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부가 원격의료 확산을 위한 원격의료지원 시범사업과 원격의료 실증특례사업 실시를 천명했지만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의사들의 반대와 비협조로 보건복지부(시범사업), 강원도(실증특례사업)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려는 원격의료 사업에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복지부와 전라북도 완주군이 운주·화산 지역 환자 40여 명을 대상으로 공중보건의사가 원격으로 진단하고 방문간호사를 보내 의료서비스를 수행하며 처방약을 전달하는 원격의료 시범사업 실시를 발표했지만 출발도 하기 전에 잠정 보류됐다. 시범사업 시행을 발표하자마자 전라북도의사회가 완주군보건소를 항의 방문해 시위까지 벌이며 거세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대한개원의협의회도 잇달아 의료취약지 지원사업이 의료법을 위반한다며 즉각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처럼 기득권 의사단체들이 반대하자 완주군은 힘없이 사업 시행 자체를 잠정 보류했다.

시범사업의 골자는 지역보건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먼 곳에 있는 의사와 현지에 있는 공중보건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이 협진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현재도 의사와 간호사 간 원격협진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의사단체들은 환자가 보건진료소 혹은 현지 지역보건의료기관을 방문해 진료를 받는 다른 의료취약지 지원사업과 달리 간호사가 직접 환자 가정을 방문하는 것을 트집 잡았다. 복지부는 시범사업 참여 지자체를 기존 163곳에서 286곳으로 100곳 이상 늘리는 등 사업을 대폭 확장할 계획이었지만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복지부는 "국민들의 의료 접근성 제고 및 건강권 강화를 위해 의료취약지 지원사업 확대를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게 기본적인 방침이지만 반대가 거세기 때문에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오상윤 복지부 의료정보정책과장은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의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원격의료 가능성을 확인하자는 것"이라며 "정부는 대한의사협회 및 지역의사회와 대화와 소통·합의를 통해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정부로부터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받아 원격의료 실증특례사업에 들어간 강원도도 원격진료 사업 확대에 난항을 겪고 있다. 원격진료 실증특례사업은 격오지의 고혈압·당뇨 재진 환자가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자가 측정한 혈압과 혈당 수치를 의사에게 전송하고 상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간호사가 환자 집을 방문한 경우에는 의사가 원격진단과 처방까지 내릴 수 있다. 먼 곳에 있는 의사와 현지에 있는 공중보건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이 협진하는 시범사업보다 더 진전된 원격의료사업인 셈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실증특례사업에 참여한 의료기관은 동네의원 1곳에 불과하다. 의사 사회의 반대 기류가 워낙 강한 탓에 관심 있는 병원도 쉽사리 참여 의사를 밝히기 어려운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원격의료에 대한 확실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의료법 개정 움직임도 지지부진하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6년 6월 박근혜정부가 대표 발의한 원격의료법(의료법 일부개정안)은 2017년 3월 법안심사소위에서 마지막 논의된 뒤 공식적으로 다뤄진 적이 없다. 지난해 2월 유기준 자유한국당 의원이 새로 발의한 원격의료법도 같은 해 8월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논의된 것이 전부다.

같은 달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당정협의를 거쳐 군부대·원양어선·교정시설·의료인이 없는 도서 벽지 등 4개 유형에 한해 의료인과 환자 간 원격의료를 추진하기로 하고 입법을 진행했지만 현재까지 발의된 법안은 없다. 2015년 박근혜정부가 추진하려던 원격의료법을 당론으로 반대해 무산시킨 전력이 있는 민주당이 입장을 번복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지적이다.

의사들은 환자 안전성 문제를 들어 원격의료를 반대하고 있다. 원격협진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의사들에 따르면 처방 후 증상 악화 및 합병증 포착이 어렵고 원격진료 시 혈압과 혈당 측정, 가벼운 문진 정도만 가능해 효용성이 높지 않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또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결국 의사가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대형병원 환자 쏠림 현상도 의료계가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다.

[서정원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