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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우지경의 여행 한 잔] 여름의 끝, 코펜하겐에서 치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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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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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은 맥주의 도시다. 코펜하겐에선 어디서나 편안하고 여유롭게 맥주를 마실 수 있지만, 야외에서 마시기 좋은 때는 단연 여름이다. 여름날, 푸른 하늘 아래 차가운 맥주를 마시기엔 파스텔빛 건물이 즐비한 뉘하운(Nyhavn)만 한 곳도 없다. '새로운 항구'란 뜻의 뉘하운은 1673년 개통된 운하로 과거 무역의 중심지였고, 지금은 보트 투어의 구심점이다. 그 덕에 관광객들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뉘하운을 찾는 여행자들은 그 옛날 선원들처럼 노천카페나 항구에 걸터앉아 행복의 술잔을 기울인다.

여행자 손에 들린 맥주는 하나같이 칼스버그다. 덴마크 국민맥주 칼스버그의 고향이 코페하겐인 까닭이다. 칼스버그 양조장은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국철로 약 20분 거리의 '칼스버그역'에 있다. 기차역에 내려 언덕을 오르면 나이 지긋한 석조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양조장 일부를 박물관과 펍으로 개조해, 양조장 투어 후 펍에서 시음을 즐길 수 있다.

양조장을 탐방하고 나면, 칼스버그 맛이 더 진지하게 느껴진다. 가이드의 이런 설명 덕이다. "1847년 칼스버그를 창립한 J C 야콥센은 덴마크산 라거 맥주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뮌헨으로 양조 유학을 다녀왔어요. 귀국 후엔 이곳에 연구소를 세우고, 과학자를 영입해 1883년 세계 최초로 라거에서 효모를 가라앉혀서 발효시키는 하면발효 효모 분리에 성공했답니다. 그런데, 이 기술을 1크로네도 받지 않고 공유했어요. 오직 맥주 발전을 위하며."

진지한 맥주보다 유머러스한 맥주를 만나고 싶다면, 빅토리아 거리의 미켈러 본점으로 발길을 옮겨보자. 미켈러는 2006년 미켈과 크리스티안이 맛있는 맥주를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해 만든 수제 맥주다. 자신의 집과 학교 부엌에서 양조하던 미켈이 고등학교 과학 교사 자리를 박차고 나와 맥주 개발에 온 영혼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는? 2015년 맥주 덕후들이 맛을 평가하는 사이트 '레이트 비어(ratebeer.com)'에서 올해의 주목할 만한 양조장으로 선정될 만큼 성장했다.

선선한 저녁 바람이 불어올 무렵, 미켈러바 앞에는 자전거를 타고 와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 이들이 늘어난다. 글루텐을 제거한 크림 에일 라거나, 검고 진한 흑맥주 포터 라거를 천천히 음미하듯 작은 맥주잔을 기울인다. 그들 사이에서 맥주를 홀짝이다 보면 미켈러바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완성하는 건 손님들이구나 싶어진다.

미켈러는 러닝 클럽이라는 독특한 음주 문화도 전파했다. 건강하게 오래 맥주를 즐기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같은 티셔츠를 입고 달리는 모임이다. 달리고 난 후엔 함께 미켈러를 마신다. 함께 땀 흘려 뛰고 난 후, 맥주를 편안하게 홀짝인다니. 그게 바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덴마크인들의 휘게 라이프가 아닐까.

[우지경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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