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54579480 0352019082554579480 07 0704001 6.0.18-RELEASE 35 한겨레 0 false true true false 1566707610000 1566730511000

2000년대생이 온다, 충무로에

글자크기


올해 스크린에는 유난히 10대 배우들의 활약이 뜨겁다. 독립영화에 한 획을 그을 작품으로 꼽히는 <우리집>과 <벌새> 역시 모두 10대가 주연을 맡았다. 이들은 스스로를 “애매한 나이”라고 했다. 혼자 우뚝 설 수 있는 성인 배우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마 치맛자락에 매달릴 나이도 아니니까. 하지만 2000년대에 태어난 이 ‘신예’들은 치열하고 솔직하게 연기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며 충무로의 새 시대를 예고한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벌새’ 주연 박지후

성수대교 사건 유튜브로 공부
“삐삐치는 거 처음 해봤어요.“

“식상하지만 길거리 캐스팅이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길을 가다 ‘연기 좀 배워볼래?’라는 제안을 받았죠. 원래 아나운서가 꿈이었는데, 연기도 도움이 될 것 같아 한 번 해보자 싶었어요.”

난생처음 하는 인터뷰라면서도 머뭇거리거나 주눅 들지 않았다. 22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 카페에서 마주한 <벌새>(김보라 감독·29일 개봉)의 주연배우 박지후(16)는 영화 속 조용한 ‘은희’와 달리 경쾌하고 명랑했다.

“중1 때 첫 단편 <나만 없는 집>을 찍는데 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이후 오디션 사이트를 뒤지다 <벌새>를 알게 됐는데, 너무 간절하게 욕심이 나는 거예요. 오디션 때 문을 나서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감독님, 저는 볼매(볼수록 매력)예요’라고 한마디를 던졌죠. 나중에 감독님이 그러셨어요. ‘당돌하고 순수하게 욕심을 드러내는 면이 좋았다’고.”

그렇게 잡은 기회를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았다. <벌새>를 세계 유수의 영화제 25관왕에 올렸으며, 제18회 트라이베카 필름 페스티벌에서는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었다.

<벌새>는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건을 ‘은희’라는 한 소녀의 개인적 서사에 시적인 감성으로 엮어낸 작품이다. “제가 2003년생이라(웃음) 그 시대를 잘 알진 못하죠. 하지만 사춘기를 겪는 혼란스러운 10대의 감정은 비슷할 거라 생각했어요. 은희가 말이 많은 캐릭터는 아니기 때문에 눈빛과 감정선에 집중했어요.”

유튜브로 성수대교 관련 뉴스를 찾아보고, 그 시대를 겪은 부모님에게 물어보며 준비했지만, 어리둥절한 점이 없지는 않았다. “삐삐 치는 거랑 카세트테이프 녹음하는 건 처음 해봤어요. 극 중 담임이 ‘노래방 대신 서울대 가자’는 구호를 외치게 하는 장면, 날라리 이름 적어 내라고 하는 장면 등에선 빵 터지기도 했죠. 요즘 중고생은 스트레스 풀러 코인 노래방 가는 게 일상인데. 푸하하.”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은희가 어떤 인물인가에 대해 천천히 오래 고민했다고 했다. “처음엔 마냥 불쌍했죠. 오빠한테 맞고 남자친구와 절친한테 배신당하고, 마음을 나눴던 선생님과도 헤어지고. 조금 지나자 은희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자기를 쳐다보지 않는 엄마를 목 놓아 부르는 장면, 엄마가 해준 감자전을 허겁지겁 먹는 장면…. 사랑에 굶주려 쓸쓸한 아이구나 싶어 애잔했어요.” 가장 마음에 와닿는 대사로 ‘제 삶도 언젠간 빛이 날까요?’라는 대목을 꼽은 박지후는 “은희의 허기진 마음이 가장 잘 녹아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은희를 연기하며 제일 힘들었던 점은 뭘까? “예상외로 뽀뽀 신은 어렵지 않았어요. 제가 모태솔로니까 어색함을 표현하는 데 되레 도움이 됐어요. 후반부에 음악을 크게 틀고 춤추며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이 제일 어려웠어요. 은희의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내야 했거든요.”

영화 홍보와 학교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도 거침없다. “연기도 공부도 놓치지 않으려고요. 저 공부도 곧잘 하거든요.” 관객을 위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호흡이 느린 작품이니 천천히 즐기시길 바라요. 삶에 닥쳐올 어려움을 이겨낼 단단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아, 엔(N)차 관람 잊지 마시고요.(웃음)”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집’ 주연 김나연

감독님과 끊임없이 묻고 답해
“요리챗 소품도 직접 만들었죠.”

6살, 엄마 손에 이끌려 연기학원에 등록한 건 순전히 “낯가림이 심한 성격 때문”이었다. 식당에서 누가 “예쁘네~”라는 칭찬만 건네도 수저를 들 수 없었다. 연기학원 선생님에게 인사를 먼저 하기까지 딱 6개월이 걸렸다.

“근데 이상하죠? 친구들이 광고 모델도 하고 영화 오디션도 보니까 막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엄마는 ‘네 성격에 무슨 연기냐’고 말렸거든요. 재미있더라고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는 것도,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것도.”

올해 독립영화 최고 기대작 중 한 편인 <우리집>(윤가은 감독)에서 주인공 ‘하나’ 역을 맡은 14살 김나연은 수줍어하면서도 조곤조곤 자기 이야기를 해나갔다. 지난 20일 <한겨레>에서 만난 김나연은 엄마와 멀찌감치 떨어져 앉으며 “영화를 찍을 땐 6학년이었지만 이젠 중학생이 됐으니 더는 아이가 아니니까”라고 했다.

<우리집>은 부모님의 불화로 전전긍긍하는 초등학교 5학년 하나와 잦은 이사가 지긋지긋한 유미(김시아)와 동생 유진(주예림)이 우연히 만나 여름방학 동안 ‘우리집’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다.

“드라마나 단편영화에서 작은 배역을 맡은 적은 있지만, 주인공 역을 맡은 건 <우리집>이 처음이에요. 오디션 과정이 3개월이나 걸렸는데, 보통 오디션과 달랐어요. 상황극과 즉흥극 위주였거든요. 감독님께서 제가 집중력이 좋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줘서 좋았대요. 음, 6학년치곤 키(162㎝)가 좀 커서 살짝 고민했다고는 하시던데. 히히.”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촬영 기간 내내 윤가은 감독은 ‘통대본’을 주지 않았다. “전체적인 줄거리만 일러주고, 촬영 때 장면마다 구체적인 상황과 대사를 설명하셨어요.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며 입에 착 붙게 대사를 다듬었죠. ‘다음엔 어떤 장면일까’ 내내 궁금증이 일었어요.” 윤 감독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하나’가 어떤 캐릭터인지 나연이 스스로 분석하도록 이끌었다. “하나는 겉으론 밝고 쾌활해 보이지만, 상처도 많고 생각도 깊어요. 저랑 비슷한 부분도 있어요. 저도 하나처럼 요리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작품 속 소품도 배우들이 직접 만들었다. “감독님이 숙제를 내주셨어요. 저는 하나의 요리책을 직접 만들었어요. 계란토스트, 샌드위치 등 6~7개 요리를 직접 하면서 요리책을 완성했죠. 만들면서 하나의 마음을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국 영화 속 ‘하나’는 어떻게 됐을까? “꼭 엄마 아빠가 함께 살아야 온전한 가정이 아니란 걸, 완벽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았겠죠. 저도 영화를 보며 그걸 깨달았거든요.”

나연이는 <우리집>을 찍으면서 연기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고 했다. “3년 전쯤 영화 오디션에 응시해서 캐스팅됐어요. 그런데 촬영 직전에 주인공이 바뀐 거예요. 3일 동안 펑펑 울었어요. 그때 어렴풋이 내가 연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거든요. <우리집>을 찍으면서 더 욕심이 생기고 확신이 들었어요.”

자신의 얼굴이 크게 나온 포스터가 극장에 걸리고 무대 인사와 인터뷰까지 하는 게 아직은 신기하기만 하다. “친구들한테 자랑을 거의 안 했어요. 자만하면 안 되거든요. 성인이 돼서도 계속할 일인데, 벌써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거나 과대평가하는 걸 조심해야죠. 히히.”

”우리도 있어요” 스크린에 반짝이는 원석들

‘보희와 녹양’의 안지호·김주아
‘봉오동 전투’ 성유빈 등 눈도장
어린배우 배려 ‘촬영수칙’도 등장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박지후와 김나연만이 아니다. 독립·상업영화를 막론하고 2000년생 배우들이 영화계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먼저 독립영화 <보희와 녹양>의 두 주인공 안지호(15)와 김주아(16)가 있다. ‘로드무비’ 형식의 성장영화인 이 작품에서 두 배우는 소년다움과 소녀다움이라는 성 역할이 전복된 두 주인공을 섬세하게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독립영화에서 시작해 상업영화로 활동 반경을 넓혀 가는 10대 배우도 눈에 띈다. 지난해 독립영화 <영주>로 주목받은 탕준상(16)은 올해 <나랏말싸미>에서 신스틸러로 활약했고, <살아남은 아이>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성유빈(19)도 <생일>과 <봉오동 전투>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충무로에 안착했다. <그녀의 속도> <아워 바디>로 독립영화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재인(15)은 단숨에 오컬트 영화 <사바하>의 주연을 맡아 1인2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화제를 모았다.

10대 배우가 늘면서 촬영 현장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우리집> 윤가은 감독이 9개 항목의 ‘촬영수칙’을 배포한 것이 대표적이다. 윤 감독은 “이 수칙은 어린 배우들과의 신체접촉, 외모에 대한 부정적 평가 등 주의사항은 물론 대기시간과 휴식시간 준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어린 배우들은 현장에서 자신의 요구사항을 일일이 다 표현하지 못하는 약자이기에 우선적인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동영상 뉴스 ‘영상+’]
[▶한겨레 정기구독] [▶[생방송] 한겨레 라이브]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