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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뒤 히키코모리 된 일본의 중장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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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조기원의 100세 시대 일본

⑨ 히키코모리 문제

40~64살 61만3000명으로 추산

퇴직, 인간관계, 병, 부적응 등 원인

‘80대 부모에 50대 의존’ 현상도 결부

“장래 고독사 다수 발생할 우려”

“가족 동거 많은 사회서 발생 쉬워”

단계적인 사회적 지원 필요 지적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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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증가로 장래 고독사가 다수 발생할 우려가 있다. 부모가 생존해 있을 때 (히키코모리 자녀의) 인생 계획을 만들 필요가 있다.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도) 생존할 수 있게 (사회가) 도움을 줘야 한다.”

사이토 다마키 일본 쓰쿠바대 교수는 지난달 29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외신기자센터에서 ‘중장년 히키코모리 현상, 과제, 전망’이라는 주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히키코모리 상태가 몇년 이상 지속되면 당사자 힘만으로 사회 복귀는 거의 불가능하다”며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신과 의사인 그는 30여년간 히키코모리와 등교 거부 문제 등에 대해 연구해온 전문가다. 그는 현재 일본 히키코모리 인구를 200만명으로 추산했으며, 향후 중장년 히키코모리 증가와 함께 1천만명까지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히키코모리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한 1980년대에만 해도 히키코모리 문제는 주로 청년 문제로 다뤄졌다. 그러나 최근 히키코모리 문제는 ‘8050 문제’(50대 자녀가 80대 부모에 의존해 생활하는 현상)와 결부돼, 중년과 노년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일본에서 히키코모리 문제는 1970년대부터 나타났다.

이 때문에 일본 내각부는 지난 3월 사상 처음으로 중장년 히키코모리 보고서를 내놨는데, 40~64살 히키코모리가 일본 전역에 61만3천명이 있다고 추산했다. 일본 전국 40~64살 사이 남녀 5천명을 무작위로 추출해서 3248명에게 설문조사를 했으며, 여기서 나온 결과를 토대로 전체 인구를 고려해 계산해보니 61만명 이상이 중장년 히키코모리로 추산된다는 것이다. ‘집 안에서만 주로 생활하며 취미 생활을 위해서 또는 근처 편의점에 들르는 목적 정도 외에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는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된 경우’를 히키코모리 상태로 봤다. 히키코모리가 된 계기(복수 응답)는 퇴직이 36.2%로 가장 많았고, 인간관계가 잘되지 않아서(21.3%), 병(21.3%), 직장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19.1%), 취업이 잘되지 않아서(6.4%)가 뒤를 이었다. 히키코모리가 된 연령은 60~64살이 17%로 가장 많았고, 25~29살(14.9%), 20~24살(12.8%), 40~44살(12.8%), 55~59살(10.6%) 등의 순이었다.

영양실조 사망, 살인사건 등 발생

사이토 교수가 우려한 중장년 히키코모리 고독사는 실제로 현실에 일어나고 있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지난 7일 57살 히키코모리 남성이 영양실조로 숨진 비극적 사례를 소개했다. 요코하마시에 살았던 남성은 고등학교 졸업 뒤 대학 입시에 성공하지 못했고, 이후 서점 영업사원 등 여러 직업을 거쳤으나 적응하지 못했다. 히키코모리 상태는 그가 지난해 겨울 숨지기 전까지 30여년 동안 계속됐다. 그의 부모는 11년 전에 숨졌고, 부모의 사망 뒤 그의 몸 상태는 더욱 악화됐다. 다른 곳에 살던 동생과 요코하마시, 지역 주민이 영양실조 상태에 빠진 그를 지원하려고 했으나 그는 “혼자서 어떻게든 해보겠다”며 지원을 거부했다.

중장년 히키코모리 문제는 지난 5월 가와사키시에서 벌어진 무차별 살인 사건 때도 다시 한번 불거졌다. 51살 남성이 스쿨버스 정류장에서 양손에 흉기를 들고 무차별적으로 휘둘러 초등학생을 포함해서 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범인인 남성이 친척 집에 살면서 오랫동안 히키코모리 상태로 지낸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범인은 사건을 저지른 뒤 자살했기 때문에, 범행 동기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됐다. 일본 경찰이 범인의 방을 압수수색해 최대한 범행 동기 단서를 찾으려 했으나 큰 소득은 없었다. 범인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갖고 있지 않아서, 검색 기록도 찾을 수 없었다. 살인 사건을 다룬 오래된 잡지 몇 권만을 방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이 사건으로 히키코모리를 ‘범죄 예비군’으로 보는 일부 사회적 편견이 강화됐다. 하지만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호소하며 집 안에 주로 머무르는 히키코모리의 특성상 실제 범죄율은 극히 낮다. 히키코모리 지원 단체와 당사자들은 히키코모리는 범죄 예비군이 아니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가와사키시 살인 사건은 또 다른 히키코모리 가정의 비극을 낳았다. 전 농림수산성 사무차관 구마자와 히데아키(76)가 지난 6월에 히키코모리인 44살 아들을 도쿄 네리마구 자택에서 흉기로 찔러서 살해했다. 사무차관은 직업 공무원이 오를 수 있는 최고위직이다. 구마자와는 아들이 집 바로 옆 초등학교 운동회 소리가 시끄럽다고 소란을 피우자 ‘주위에 폐를 끼치지 말라’며 타이르다가, 말다툼 끝에 살해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는 “가와사키 사건을 보고 내 아들도 주변에 해를 가할지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고도 진술했다.

가족 힘만으로는 해결 안돼

사이토 교수는 히키코모리가 일본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히키코모리 가족회가 만들어졌다. 한국에도 상당수의 히키코모리가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이런 상황을 봤을 때 가족주의가 강한 사회, 가족이 동거하는 경향이 강한 국가에서 히키코모리가 사회 문제가 되기 쉽다”고 말했다. 사이토 교수는 히키코모리를 노숙인처럼 사회적 배제의 한 형태로 본다. 영국과 미국처럼 자식이 부모와 동거하는 경향이 약한 나라에서는 사회적 배제가 노숙이라는 형태로 많이 나타지만, 일본처럼 부모와 성인 자녀의 동거 경향이 강한 나라에서는 히키코모리의 형태로 나타나기 쉽다는 것이다.

문제는 히키코모리 문제를 가족 안에서만 해결하려고 하면 오히려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는 점이다. 당사자는 집 안에 틀어박히면서 사회와 접점을 잃고 가족들은 사회의 비난을 두려워해서 사회와의 접점을 잃는다. “이런 상태는 일단 발생하면 그대로 유지되는 경향이 강하다. 나는 이를 ‘히키코모리 상태’라 부른다”고 말했다.

그는 히키코모리 상태를 깨기 위해서는 단계적인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우리 대학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21살 남성이 있다. 중3 때부터 등교 거부를 하면서 집에 틀어박혔다. 부모가 와서 상담을 했다. 부모는 그동안 꾸중과 격려를 반복해왔는데 일단 이를 그만두게 했다. 그러자 가족관계가 개선되고, 본인이 병원에 가는 데 동의했다. 병원에서 그룹 치료를 받으며 친구가 생겼고, 그룹 치료 2년 뒤 통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매우 전형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후생노동성은 △부모 지원 △당사자 지원 △집단 치료 △사회 참가 등 4단계로 나누어서 히키코모리를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에는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만 75곳이 있다.

그는 일본 사회 특유의 문제로는 개인이 존중되지 않는 분위기를 꼽았다.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은 가치가 없다, ‘1억 총활약 사회’(아베 정부의 슬로건)라고 하는데 활약 못하는 사람은 가치가 없다, 사회에 나오지 못한 히키코모리는 무가치한 인간이다, 이런 분위기가 히키코모리를 조장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는 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하지 않은 상태다. 2005년 청소년위원회가 한국청소년상담원과 여인중 동남신경정신과 원장에게 의뢰해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정도다. 이때 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에도 은둔형 외톨이가 30만명 이상인 것으로 추정됐지만, 중앙정부 차원에서 본격적 조사는 아직 없다. 중장년 히키코모리 문제는 실태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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