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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 발생 6시간 뒤에야 대통령이 말했다, “큰일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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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2014년 4월16일 청와대


김기춘·윤전추, 국회·헌재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행적 조작

14일 재판에서 유죄 판결 받아

재판기록 통해 재구성한 시간대별 상황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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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권희) 법정 밖 복도에는 10여명의 세월호 유가족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방청권을 배부받지 못해 법정 입장을 거부당했기 때문이었다. 재판 도중 판결 내용이 전달됐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김장수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무죄,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무죄.’

유족들은 오열하기 시작했다. 법정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유족들도 있었다. “304명이 죽었어. 살아 있는 생명은 제대로 살고 있는 줄 알아요?” “집행유예라니, 법리 다 좁게 해석해서”….

이날 재판에서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횟수와 시각 등을 조작한 문서를 국회에 제출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실장 등에 대한 1심 선고가 이뤄졌다. 법원은 김기춘 전 실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서 위증한 혐의로 기소된 윤전추 전 행정관에게도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세월호 사고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을 조작해 국회와 헌법재판소에서 거짓으로 진술한 것을 법원이 불법으로 인정한 것이다. 다만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이 사고 최초 보고 시간을 오전 10시22분이 아니라 10시15분이라고 발표한 것은 실수일 가능성이 있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국가위기관리 컨트롤타워를 청와대로 규정한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을 무단 변경한 혐의로 기소된 후임 김관진 안보실장도 역시 공용서류를 손상한다는 인식이 없었다며 무죄로 판결했다.

검찰은 지난해 3월 김기춘 비서실장 등 4명을 허위공문서 작성, 위증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기소와 함께 박 대통령의 참사 당일 행적을 정리해 발표했다. 그때까지 소문과 추측만 난무했던 박 대통령의 참사 당일 행적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그가 세월호 구조의 ‘골든타임’ 마지노선인 10시17분까지 세월호 사고 사실을 몰랐다는 것, 계속 관저 침실에 머물렀다는 것,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참사 당일 오후 관저를 방문해 ‘문고리 3인방’과 대책회의를 했다는 사실 등이 검찰 발표를 통해 알려졌다.

<한겨레>는 ‘세월호 보고 조작’ 사건의 수사기록, 재판기록 등을 입수해 이를 바탕으로 ‘박근혜의 7시간’을 재구성했다. 박 대통령은 왜 세월호 참사에 빨리 대처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 모습을 지켜보는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2014년 4월16일 하루 동안 도대체 청와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오전 9시19분~10시
청와대 직원들 TV로 사고 인지
대통령은 관저 침실에 머물러
김장수 전화했지만 받지 않아

오전 10시~10시20분
상황병 관저로 뛰어가 보고서 전달

직원이 침실 앞 탁자에 놓아둬
대통령 읽었는지는 확인 안돼

박 대통령은 임기 2년차이던 세월호 사고 발생 무렵에는 평일이든, 휴일이든 관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국무회의, 외부 행사 등 공식적인 일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주일에 나흘 정도를 대통령 관저에 머물렀다. 관저 안에서도 주로 침실에 있었다. “피곤이 쌓여 몸이 좋지 않아 특별한 일정이 잡힌 것이 없으면 관저에서 편하게 일”했다.(2017년 박 대통령 제1회 피의자 신문조서) 이러한 사실은 청와대 직원들에게 대부분 알려져 있었다.

2014년 4월16일 그날도 박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 집무실로 출근하지 않았다. 오전 9시19분 와이티엔(YTN)의 세월호 사고 보도로 청와대 본관은 발칵 뒤집혔지만, 박 대통령이 있는 관저는 고요했다.

이른바 청와대 ‘지하 벙커’로 불리는 위기관리센터의 실무자는 해양경찰청 상황실과 연결된 ‘핫라인’으로 “배가 지금 기울어서 침수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9시24분 재난발생 문자메시지를 청와대 내부 보고망에 보냈다. 그리고 상황보고서 1보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해경이 작성한 첫 상황보고서를 참고해 기본적인 내용만 담아 9시30분에 박 대통령에게 보고할 참이었다. 하지만 김주영 상황팀장이 “대통령에게 이렇게 보고할 수 없다”고 반려했다. 조난신고 시간, 배의 명칭과 톤수, 탑승인원, 구조지원 세력, 출항시간 및 도착예정 시간 등을 추가로 확인하라는 지시였다.

그때부터 청와대는 해경 상황실에 구조를 지원하는 상선의 톤수가 얼마인지, 사고 현장과 구조된 사람을 옮기는 섬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등 시시콜콜한 사항들을 묻고 또 물었다. ‘골든타임’에 구조세력을 지휘할 해경 본청 상황실을 다그쳐 확인한 사실로 위기관리센터는 오전 10시께 상황보고서 1보 초안을 완성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참석했던 신인호 위기관리센터장이 사고 문자메시지를 보고 위기관리센터로 들어왔지만 김장수 실장은 여전히 위민3관 2층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 있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탓이었다. 상황보고서 1보 초안이 김장수 실장의 집무실로 전달됐고, 초안을 읽은 김 실장은 그제야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는 바로 박 대통령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대통령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급해진 그는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에게 연락해 “대통령이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지금 상황보고서 1보가 올라갈 예정이니 보고될 수 있게 조처해달라”고 부탁했다.

오전 10시12~13분께 위기관리센터 상황병은 상황보고서 1보를 들고 7분 만에 관저 입구까지 뛰어가 경호관에게 전달했다. 이 문서는 관저 내실 근무자 김막업씨에게 전달됐고, 그는 평소처럼 아무 말 없이 침실 앞 탁자 위에 올려뒀다. 김씨는 관저에서 식사를 차리고 방 청소와 세탁, 서류 전달 등의 일을 했다.

보고서가 탁자 위에 오른 시각은 10시19~20분. 8시49분 사고가 발생해 세월호가 좌현으로 45도 이상 기울어진 지 1시간30분, 8시54분 단원고 최덕하 학생이 첫 사고 신고를 한 지 1시간25분 만이었다. 세월호는 10시17분 이미 좌현으로 108도 기울어지며 뒤집어져 더는 구조가 불가능한 상태(‘전복’)가 됐다. “지금 더 기울어”라는 단원고 학생의 마지막 카카오톡이 도착했다. 13분 뒤인 10시30분 세월호는 뱃머리 바닥만 남기고 나머지는 바닷속으로 들어간 ‘침몰’ 상태가 된다.



오전 10시20분~10시30분
안봉근 관저로 가 대통령-김장수 통화
“인명피해 없도록…특공대 투입” 지시
“타이밍 맞지 않고 구체성도 없었다”

오전 10시47분~11시23분
“실종·선체 안 잔류 가능성 많다”
김장수 다시 전화해 심각성 보고
“브리핑 준비했는데 안 내려오더라”



김장수 실장의 전화를 받은 안봉근 비서관은 자동차를 타고 관저로 이동했다. 그는 대통령 침실 앞에서 “대통령님, 대통령님” 하고 두세 차례 불렀다. 침실에 있던 박 대통령이 나왔다. “김장수 실장이 긴급 보고 때문에 통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박 대통령은 사고 사실을 모르는 듯 되묻고는 침실로 들어갔다. 10시22분, 위기관리센터에 내려와 있던 김 실장이 박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다. 사고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하자 박 대통령은 “단 한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는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김 실장은 “지금 와이티엔(YTN)에서 (세월호 사고) 중계가 되고 있으니 같이 보시면서 상황 판단하시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답했다.

10시25분 국가안보실이 해경에 ‘대통령 지시사항’을 전달했지만, 세월호는 5분 뒤 완전히 침몰했다. 그 시각 박 대통령은 안 비서관의 도움을 받아 김석균 해경청장에게 전화했다. 김 청장은 세월호 사고 현장인 진도 팽목항으로 막 출발한 길이었다.

“청장님, 지금 구조상황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박 대통령)

“상황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김 청장)

“전국의 특공대를 모두 투입하시고 철저히 수색해서 한명의 인명피해도 없게 해주세요.”(박 대통령)

김 청장은 전화를 끊은 뒤 대통령이 상황의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통령과 통화한 시간에는 이미 배가 완전히 뒤집힌 상태이고 특공대도 투입된 상황인데, 뒤늦게 특공대를 투입해 선내를 철저히 수색하라는 지시가 타이밍에도 맞지 않고 구체성도 없다고 생각했다.”(2017년 11월21일 김석균 검찰 진술조서)

10시40분과 11시10분 상황보고서 2보, 3보가 위기관리센터를 출발했다. 전달 방식은 1보와 똑같았다. 상황병이 경호관에게, 경호관이 김막업씨에게 전달해 관저 침실 앞 탁자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그사이 엠비엔(MBN)을 시작(오전 11시1분)으로 방송사들이 잇따라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냈다. 하지만 위기관리센터는 배 안에 수백명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해경에서 직접 보고받았기에 언론보도가 잘못됐다는 걸 금방 알아차렸다. 10시47분 승선원 476명 중 세월호가 전복된 시점에 구조된 인원이 109명이며, 주변 해상에 표류 중인 사람이 없다고 해경이 알려줬다. 10시51분에도 해경 상황실에서 승객이 거의 다 선실에서 나오지 못한 것 같다는 보고가 있었다.

김 실장은 오전 11시23분 다시 박 대통령에게 전화했다. “미구조된 인원들이 실종되거나 또는 선체에 잔류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옆에서 통화를 들은 신인호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장은 이제는 대통령이 뭔가 ‘행동’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장수 실장이 박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희생자들이 배 안에 많이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통령이 위기관리센터에 내려올 가능성에 대비해 브리핑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려오지 않았다.”(2018년 2월9일 검찰 진술조서)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와 별도로 대통령 비서실에서는 오전 10시36분부터 밤 10시9분까지 11차례에 걸쳐 상황보고서를 만들었다. 이 보고서는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에게 이메일로 전달됐는데, 박 대통령은 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렇다. 관저에 주로 머무는 박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 등과 직접 만나 국정을 논의하거나 보고를 받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그래서 서면보고가 주로 이뤄졌는데, 그 방식은 비서실에서 정호성 비서관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었다. 이 이메일들을 인쇄한 뒤 정 비서관이 오후 6시30분께 모아서 관저에 가져가거나 이영선 행정관을 시켜 대통령 침실 입구 탁자에 올려놓도록 했다. 야간에 들어온 보고서는 모아서 밤 11시~새벽 2시에 대통령 침실 입구에 설치된 팩스로 한꺼번에 보냈다. ‘실시간’으로 보고서를 볼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세월호 사고 당일에도 정 비서관은 이메일로 보고서를 받았지만 평소대로 처리했다. 정 비서관은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비서실 보고서가) 언론에 보도된 상황보다도 뒤늦은 소위 뒷북 보고여서, 시급하게 보고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생각해 즉각적으로 전달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실시간으로 보지도 않을 보고서들을 작성하기 위해 청와대는 이날 하루 동안 해경 상황실로 100차례가 넘게 전화했다. 세월호가 침몰한 10시30분까지 청와대-해경 핫라인은 평균 3분 간격으로 울려댔다. 특히 청와대는 끊임없이 사진과 영상을 요구했다. 현장을 확실히 봐야 대통령 보고를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청와대의 요구는 해경 지휘 계통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사고 현장에 있는 구조세력인 123정까지 전해졌다. 침몰하는 여객선에서 승객을 구해야 할 123정 대원들은 사진을 찍고 사람 수를 세느라 바빠졌다. 승객 구조가 한창일 시각에도 인터넷에 접속했다. 국가안보실 1차장 김규현은 국회에서 영상을 요구한 이유를 밝혔다. “저희들이 현지 상황을 보는 것은 다 대통령께 보고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니고.”(2014년 7월10일 국회 국정조사 특위)



오후 2시10분~오후 3시
최순실 예고 없이 관저 방문
박근혜·문고리 3인방과 대책 회의
정확한 사고인원 듣고 “큰일 났네”

오후 3시22분~오후 5시15분
미용사 불러 ‘올림머리’ 뒤 중대본
“구명조끼 입었는데 발견 힘드나?”
김기춘은 첫 회의 오후 4시에 열어



조용하던 대통령 관저가 분주해진 것은 최순실씨의 등장 때문이었다. 신분 확인 없이 관저 앞마당까지 들어갈 수 있는 에이(A)급 ‘보안손님’인 최씨는 평소에는 주로 주말에 청와대를 찾았다. 하지만 이날 오후에 갑자기 들어온다고 연락을 했다. 그 소식을 이영선 행정관에게서 전달받은 정호성 비서관, 안봉근 비서관, 이재만 비서관 등 소위 ‘문고리 3인방’은 오후 1시30~50분께 관저 창고(옛 이발관)에 모였다. 이들은 최씨가 관저를 방문할 때마다 회의를 하곤 했다. 최씨가 2시10분께 도착해 물었다.

“배가 침몰했다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정 비서관이 사고 상황을 설명하며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방문할 필요가 있다는 비서실 의견을 전하자 최씨가 “들어가요”라며 관저 침실 옆에 있는 ‘회의실’(응접실) 안으로 이끌었다. 그러면서 최씨는 박 대통령이 있는 침실에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최씨는 평소에도 자유롭게 침실을 드나들었다. 5분 정도 뒤 박 대통령이 나왔다.

“언론보도와 현장 구조인원이 맞지 않는다.”(안 비서관)

“김장수 안보실장에게 정확하게 상황을 확인해보셔야 할 것 같다.”(정 비서관)

박 대통령은 “알겠다, 확인해보겠다”며 침실로 들어가 김장수 실장에 전화해 구조 진행상황을 다시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2시11분께였다. 앞서 김 실장은 “190명을 추가 구조해 총 370명을 구조했다”고 보고(오후 1시13분)한 상태였다. 하지만 1시19분 해경은 청와대에 전화를 걸어 “현장에 확인해보니까 인원수가 차이가 나는 것 같다”고 정정했다. “일부 중복이 있어 370명이 정확한 게 아니”며(1시30분) “370명은 잘못된 보고”(2시6분)이고 “구조인원은 166명”(2시24분)이라고 확인했다. 위기관리센터는 해경의 “370명 구조” 보고가 잘못됐다는 것을 15분 만에 알았지만 대통령에게 이를 바로 수정보고하지 않았다.

오후 2시50분에야 김 실장은 “190명 추가 구조는 오류”라고 박 대통령에게 뒤늦게 보고했다. 이를 확인한 박 대통령은 침실에서 나오며 “큰일 났다. 사고가 난 것 같다”고 했다.(2018년 1월30일 정호성 검찰 진술조서) 정 비서관이 “중대본으로 가야 할 것 같다”고 제안했고, 최씨도 “가는 게 맞지 않겠냐”고 동조했다. 결국 대통령은 중대본 방문을 지시했다. 정 비서관은 “최서원(최순실)이 관저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비서관들의 직접 보고가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 아니었나”라는 검찰 질문에 “그런 면은 있다. 대통령께서 쉬시는 날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찾아가서 뵙기가 좀 부담스러웠다. … 만약 최서원이 오지 않았다면 전화로 보고를 드렸을 것”이라고 말했다.(2018년 1월30일 진술조서)

윤전추 행정관은 2시53분 정송주·정매주 자매에게 ‘출발하시면 전화 부탁드립니다. 많이 급하십니다’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박 대통령이 관저 외부로 나갈 때는, 본관 집무실에 갈 때도 반드시 정씨 자매를 불러서 화장을 하고 머리를 올렸다. 올림머리를 하지 않으면 외부 사람을 만나거나 외부활동을 하지 않는다.” 관저 내실 근무자였던 김막업씨의 말이다. 3시22분에 도착한 정씨 자매는 대통령의 화장과 머리손질(올림머리)을 했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3시30분에야 중대본 방문 소식을 듣고 수석비서관 회의를 소집했다. 이날 청와대의 첫 공식 회의였다. 시각은 오후 4시10분이었다. 이 회의에도 박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처음 국민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5시15분 중대본에 방문했을 때다. 상황보고를 받은 뒤 박 대통령이 물었다.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지금은.”(박 대통령)

“갇혀 있기 때문에 구명조끼가 의미가 크게 없는 것 같습니다.”(안전행정부 2차관)

“아, 갇혀 있어서요.”(박 대통령)

박 대통령은 오후 6시께 청와대 관저로 복귀해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침실로 들어갔다.

2014년 7월10일 국회 국조특위에 참석한 김기춘 비서실장은 세월호 참사 당일 국가안보실과 비서실이 박 대통령에게 유선 7차례, 서면 14차례 등 21차례에 걸쳐 ‘실시간으로’ 보고했다고 거짓 증언했다. “비서실에서 20, 30분 단위로 유·무선으로 보고했기에 박 대통령은 직접 대면보고 받는 것 이상으로 상황을 파악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2014년 6~7월 국회 운영위와 국조특위를 대비해 김 비서실장이 수석비서관, 비서관, 행정관 등을 소집해 ‘예상 질의응답 회의’를 한 결과 정리한 내용이었다. 당시 청와대 일부 실무자들은 국가안보실 등에서 보낸 서면보고서를 대통령이 읽어본 시간을 대통령에게 물어 그 시간을 ‘실제 보고시간’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제기했다. 하지만 회의 참석자 중 한명이 “그걸 어떻게 대통령에게 물어보느냐”고 반문하는 바람에 더 이상 논의 없이 그대로 묻혀버렸다.

‘세월호 보고 조작’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는 지난 14일 판결문에서 “대통령(의 중대본에서) 언동을 살펴보면, 대통령이 사고 상황을 제대로 보고받지도, 사고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지, 최초 보고를 받은 때로부터 약 7시간에 이르도록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선내에 갇혀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것은 아닌지 상당히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세월호에는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해 총 476명이 승선했고, 그 가운데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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