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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험 파생상품 왜 대거 팔았나 ‘보수적 경영’ 은행권의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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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DLSㆍDLF 판매 현황 그래픽=박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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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손실 우려로 논란이 되고 있는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은 증권회사가 설계한 상품이지만 판매는 주로 시중은행을 통해 이뤄졌다. 국내 금융회사 판매분 8,224억원(7일 잔액 기준) 중 8,150억원(99.1%)어치가 은행에서 판매됐고, 나머지 1%도 안 되는 분량(74억원, 0.9%)만 증권사에서 팔렸다. 보수적 경영 태도로 유명한 은행권에서 왜 복잡한 구조에 원금 전액 손실 위험까지 있는 투자상품이 집중적으로 취급된 걸까.

우선 은행이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채널로서 증권사보다 훨씬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에 문제가 된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와 영ㆍ미 이자율스와프(CMS) 금리에 연계된 파생상품은 증권사에서 발행하는 파생결합증권(DLS)과 DLS를 편입해 만든 파생결합펀드(DLF) 형태로 판매됐다. 모두 기초자산인 금리가 어떻게 변동하느냐에 따라 미리 정한 수익률을 지급하는 구조는 동일하지만, 증권인 DLS는 증권사에서만 판매할 수 있는 반면 DLF는 은행에서도 취급 가능하다. 은행에 비해 영업점이나 방문 고객이 적은 증권사 입장에선 DLS 자체보다는 DLF 형태로 은행을 통해 판매하는 걸 선호할 수밖에 없다. 해당 상품의 99% 이상이 DLF로 팔린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판매 실적에 상품의 성패가 달린 상황이라 여러 증권사가 대형 은행 위주로 상품을 제안하고 은행은 ‘갑’의 위치에서 가장 괜찮은 상품을 선택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DLF가 주로 사모펀드로 설계된다는 점도 은행이 주력 판매창구 역할을 한 이유로 꼽힌다. 온ㆍ오프라인을 통해 누구나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는 공모펀드와 달리 사모펀드는 최소 투자금 1억원 이상 등 일정한 조건을 갖춘 소수(49명 이하) 투자자를 비공식적으로 모아야 한다. 이 때문에 고객 풀이 넓어 사모펀드 투자 조건을 충족시키는 고액 자산가나 은퇴자 등을 모집하기에 은행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DLF에 투자할 만큼의 여윳돈을 보유한 고액 자산가들은 30, 40대보다는 50대 이상이 많다”며 “이들은 인터넷ㆍ모바일 뱅킹 등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된 상황에서도 상대적으로 영업점과 투자 상담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저금리 기조 장기화로 은행들이 예대마진보다 판매수수료 등 비이자이익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고객도 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좇으면서 파생상품 수요가 높아진 최근 트렌드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이 1,255억원가량 판매한 독일 국채 연계 DLF는 6개월 만기 시점에서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가 -0.25% 이상일 경우 고객은 연 4%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은행권의 1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 금리 1.79%(6월 기준)보다 2배 이상 높다. 은행은 DLF 판매액의 1% 안팎을 수수료로 얻는데, DLF는 투자 계약금이 최소 1억원 이상이라 수수료 수입이 상대적으로 높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최근 1~2년 간 워낙 금리가 낮다 보니까 개인 고객을 상대로 한 DLF 판매량이 많이 늘었고 실제로 수익을 내다보니 계속 투자하는 고객도 있었다”며 “DLF 수요가 많아지면서 올해도 판매를 독려하는 분위기였지만, 결과적으로 대외 변동성 확대로 금리가 급락해 큰 손실 우려에 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은행들이 판매수수료 수입에 매몰돼 무리한 영업에 나선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해당 은행들이 직원의 핵심성과지표(KPIㆍKey Performance Indicator) 평가 시 DLF 같은 투자상품 판매에 가중치를 두는 방식 등으로 압박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그렇다면 직원 입장에선 VIP 고객인 고액 자산가들을 상대로 무리하게 상품 판매에 나섰다가 문제를 키웠을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투자자들은 “은행 직원이 ‘독일이 망하지 않는 이상 손실 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불완전판매를 주장하고 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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