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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수십배 무거운 짐도 척척…현실로 다가온 `아이언맨 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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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Iron Man(나는 아이언맨이다)."

지구를 구한 영웅, 토니 스타크는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이 말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 그는 '아이언맨1'에서 테러리스트에게 잡혀 생사의 기로에 있을 때 '마크1'이라는 외골격 로봇을 제작해 탈출에 성공했다. 이후 '마크2'라 불리는 제대로 된 '아이언맨 슈트'를 만들었고 위기에서 지구를 수차례 구했다. 공상과학(SF)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던 아이언맨 슈트. 아이언맨과 어벤져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슈트를 입는다고 하늘을 날거나 자유자재로 미사일을 쏘는 것은 현실에서는 아직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이언맨 슈트는 과학기술 발전과 함께 '외골격 로봇'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세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무거운 물건을 쉽게 들어 올리거나 하체를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이나 노인들을 돕는 외골격 로봇은 이미 활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외골격 로봇을 누가 가장 먼저 개발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1890년 11월 18일 니콜라스 야긴이라는 러시아 기계공학자가 미국 특허청에 특허를 출원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특허에 따르면 야긴이 개발한 외골격 로봇은 스프링이 포함된 기다란 막대를 다리와 몸통, 팔 등에 붙이는 형태로 돼 있다. 특허를 받은 뒤 실제로 이 외골격 로봇을 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야긴은 특허에서 "이 발명품을 입으면 걷기, 뛰기, 점프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이후 1917년 미국 발명가 레슬리 켈리가 '피도모터(Pedomotor)'로 명명한 외골격 로봇 개념을 제안한 뒤 1919년 미국 특허를 등록했다. 야긴의 특허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증기를 이용해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장치를 책가방처럼 멘 뒤 여기에 연결된 줄을 다리에 걸면 달릴 때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제작에 어려움을 겪거나 실제로 제작해 실물을 내놓더라도 특허에서 주장한 대로 작동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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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개념으로만 남아 있던 외골격 로봇이 실제 작동 가능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들어서면서다. 작동 가능한 최초의 외골격 로봇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 미 해군 지원을 받아 만든 '하디맨(Hardiman)'이다. 1965년 공개된 하디맨 모습은 영화 '매트릭스'와 '에일리언'에 등장한 거대한 외골격 로봇을 연상시킨다. 사람이 외골격 로봇 안에 들어가 로봇 팔을 사용하면 600㎏에 달하는 무게도 들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당시 GE가 남긴 보고서에 따르면 하디맨도 기대했던 것만큼 제대로 작동하지는 않았다. 정교하지 않다 보니 로봇 팔이 멋대로 움직이면 들어 올리려는 물체를 파괴할 가능성이 높았고, 사람이 로봇을 통제하는 기술도 불안정했다.

과학자들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경제성에서 다소 자유로운 군대에 외골격 로봇은 매력적인 존재였다. 슈트를 입기만 하면 전투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미국과 유럽 등 많은 나라에서 군용 외골격 로봇 개발이 이어졌다. 1994년 UC버클리가 개발한 군사용 외골격 로봇 '블릭스'가 당시 가장 앞선 슈트로 평가받았다. 블릭스를 착용하고 80㎏에 달하는 짐을 들면 불과 2㎏ 무게밖에 느끼지 못한다. 2000년대 들어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개발되면서 로봇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고 외골격 로봇도 정교해졌다.

2001년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여러 대학과 기관에 돈을 주고 외골격 로봇 개발을 시작했다. 방위산업체 레이시언은 DARPA 연구비로 개발한 'XOS2'를 2008년 공개했다. 레이시언에 따르면 유압으로 움직이는 XOS2 착용 시 평소 들 수 있는 무게의 20배에 달하는 물건도 들 수 있고 축구공을 찰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다.

이에 질세라 록히드마틴 또한 '헐크'라 불리는 외골격 로봇을 개발해 공개했다. 헐크를 착용하면 무거운 짐도 가볍게 들 수 있고, 산과 같은 비탈진 곳도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다. 문제는 동력이었다. XOS2는 외부에서 전원을 공급해야 해 기다란 전선이 필요했다. XOS2와 헐크 모두 자체 배터리를 갖고 있었지만 수 시간에서 길어야 1~2일 정도 사용하고 나면 충전해야 했다. 긴박하게 움직여야 하는 전투 상황에서 사용하기에는 무게가 많이 나가고 입고 벗는 데 시간이 걸리는 문제도 있었다. 2013년 미국항공우주국(NASA)도 무중력상태에서 우주인들이 장착하고 활동할 수 있는 외골격 로봇 'X1'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한층 진화한 외골격 로봇이 개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와 이기욱 중앙대 기계공학과 교수 등 공동연구진은 걷기와 달리기를 모두 보조할 수 있는 바지 형태의 '엑소슈트'를 개발해 지난 16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무게가 약 5㎏ 수준인 이 로봇을 착용하고 걷기와 달리기를 하면 착용하지 않았을 때와 비교해 신진대사 양이 각각 9.3%, 4%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엑소슈트에 달린 와이어 길이가 다리 움직임에 따라 조절돼 다리에 힘이 덜 들어가게 해줄 뿐 아니라 조끼 부분에 '관성측정센서(IMU)'가 달려 있어 몸의 무게중심 변화를 파악한 뒤 동작을 보조하는 힘을 지원해준다.

이처럼 외골격 로봇 개발이 활발하지만 여전히 상용화까지 다소 거리가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외골격 로봇 '하이퍼'를 개발한 장재호 FRT 대표는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2000년대 이후 외골격 로봇 상당수는 기술 개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성능에 중점을 뒀다"며 "상용화하려면 착용감을 좋게 만들어야 하고 무게와 가격을 낮추는 작업이 필요했다"고 주문했다. 소방서에 보급할 계획으로 제작된 하이퍼를 장착하면 20㎏에 달하는 산소통을 등에 메도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 개발 당시에는 하이퍼 자체 무게가 30~40㎏이었는데 현재는 경량화 설계와 부품 수를 줄이면서 15㎏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 향후 500만~800만원 수준인 생산단가를 100만~200만원 수준으로 낮출 계획이다.

군용으로 활발히 개발되던 외골격 로봇은 의료 분야뿐 아니라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미국 기업 롬은 스키를 탈 때 무릎에 가해지는 힘을 줄여주는 SKI XO를 개발해 대여 사업을 하고 있다. 현재 외골격 로봇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은 미국 '리워크'다. 리워크가 2016년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만든 재활용 로봇 판매 대수는 100대를 넘어섰다. 가격은 6만9000달러(약 8300만원)에서 8만5000달러(약 1억300만원)로 고가지만 1년에 30~40대씩 팔려나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부분마비 환자 또는 거동이 불편한 일반인을 위한 외골격 로봇이 개발되고 있다. 삼성종합기술원이 개발 중인 웨어러블 로봇 '젬스(GEMS)'가 대표적이다. GEMS는 '보행 향상 및 이동 시스템(Gait Enhancing&Motivating System)'의 약자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제품 박람회 'CES 2019'에서 처음 공개됐다. 슬림한 형태인 젬스는 겉보기에 로봇이라기보다는 착용구에 가깝다. 엉덩이, 무릎, 발목용으로 총 세 가지다. 근력 저하, 질환, 상해 등으로 보행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재활뿐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헬스케어 로봇이다. 현대자동차는 제조공장 근로자용 웨어러블 로봇 보급을 시작했다. 지난해 현대·기아차 북미 공장에 작업 도중 허리를 숙이지 않아도 되는 '의자형 착용 로봇(H-CEX)'을 도입했고, 장시간 위쪽을 올려다봐야 할 때 목과 어깨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해 주는 '위 보기 작업용 착용 로봇(H-VEX)'도 시범 적용했다.

공경철 KAIST 기계공학과 교수가 설립한 스타트업 엔젤로보틱스는 최근 부분마비 환자용 초경량 웨어러블 로봇 '엔젤수트' 판매 인증을 완료했다. 지난 3월 공개된 엔젤수트는 무게가 7㎏ 정도이며 소아부터 성인까지 개인 맞춤형으로 제작 가능하다. 공 교수는 "로봇이 땅을 지지하기 때문에 실제 착용자가 느끼는 무게는 이보다 훨씬 가볍다"고 설명했다. 공 교수는 "엔젤수트는 국내 환자 50명을 대상으로 베타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며 "환자들이 부담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올해 말 렌탈 서비스를 시작으로 상용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엔젤로보틱스는 완전마비 환자용 웨어러블 로봇인 '워크온'도 개발 중이다.

다만 수천 만원에 달하는 고가 웨어러블 재활로봇을 더 많이 보급하려면 보조금이나 건강보험 적용 등 국가 차원에서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 주문이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에는 아직까지 재활로봇에 대한 규정이 없어 건강보험을 통해 보조금을 받기 어렵다. 기존 의지·보조기에 대한 보조금도 최대 200만원으로 2005년 한 차례 인상된 이후 14년째 동결 상태다.

[원호섭 기자 /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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