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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단독] “12건은 몰라도 8건은 아냐” 표절 의혹 서울대 교수의 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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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훼손 대자보 안 떼면 하루 100만원” 피해 제보 학생에 가처분 신청
한국일보

지도교수로부터 논문 표절을 당했다며 서울대 대학원생 K씨가 작성한 대자보가 2017년 5월 서울대 인문대 광장에 붙어 있다. 정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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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대량 표절을 이유로 직위해제된 서울대 교수가 도리어 논문 표절을 제보한 학생을 상대로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며 역공에 나섰다. 6년 전 해당 교수로부터 표절 피해를 당한 뒤 홀로 1,000쪽 분량 제보책자까지 만들며 문제를 제기했던 대학원생은 자신의 글을 표절한 교수를 상대로 법적 싸움을 해야 하는 지경에 몰렸다. 수년간 피해 학생의 호소를 외면했던 서울대가 연구윤리 위반을 신속하게 처리하지 않으며 2차 피해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대 국문학과 박모 교수는 “표절이 확실한 것처럼 허위 사실을 담은 대자보를 교내에 부착해 명예훼손을 일삼고 있다”면서 자신의 제자였던 대학원생 K씨를 상대로 4월 서울중앙지법에 명예훼손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대자보를 내리지 않은 경우 하루당 100만원의 강제이행금도 요구했다

박 교수는 “나의 논문과 단행본 20건이 표절에 해당한다는 대자보를 K씨가 학내에 부착했다”면서 “이 중 12건은 연구부정 또는 연구부적절 혐의가 있다고 나왔지만, 그 중 11건은 징계시효인 3년을 지나 징계 참작사유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강조했다. 이어 “표절이 아니라고 판단된 나머지 논문 8건에 대해서는 명백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K씨는 2013년 지도교수이던 박 교수의 논문 표절 의혹을 처음 제기했다. 당시 박 교수 수업교재에 자신이 반년 전 석사논문 연구계획서로 제출한 내용이 담긴 것을 발견한 K씨는 서둘러 논문을 발표했지만, 박 교수도 두 달 후 유사 논문을 발표했다. 충격을 받은 K씨는 서울대 인권센터 등에 호소했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고,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생겼다. 학과에 표절 사실을 알렸지만 학과 측은 K씨를 위해 적극 나서지 않았다.

결국 피해자인 K씨는 스스로 박 교수 논문과 단행본 20건에 대한 대조작업을 실시해, 1,000쪽 분량 논문표절 자료집을 직접 만들어 연구진실성위원회에 보냈고, 대자보를 붙이며 문제제기에 나섰다. K씨 자료를 확인한 학과 교수회의는 만장일치로 박 교수 사직을 권고했고(본보 2017년 6월 16일자 4면), 지난해 연구진실성위원회는 20건 중 12건에 대해 “연구진실성 위반의 정도가 상당히 중한 부정행위 및 부적절 행위”라고 판정, 교원징계위원회에 중징계를 요청했다. 한국현대문학회, 한국비교문학회도 각각 논문 2건을 표절로 판정, 박 교수를 제명했다.

박 교수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학생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싶은 생각은 없고,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어 재고해달라고 주장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 법학 교수는 “논문 20건 중 60% 이상을 전문기관이 표절 판정한 이상 문제를 제기할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서 “표절 징계시효를 5년으로 늘린 개정법이 지난해 통과됐음에도 서울대가 징계시효 3년을 유지하며 징계에 관대했던 것이 모든 문제의 근본”이라고 지적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한국일보

지도교수로부터 논문 표절을 당했다며 서울대 대학원생 K씨가 직접 작성한 총 1,000여쪽 분량의 제보책자. 2017년 6월 내용을 확인한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진은 표절의혹이 제기된 박모 교수에게 만장일치로 사직권고 결정을 내렸다. 정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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