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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비행기에 ‘일본해’라고 뜨는데…정부 시정명령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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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시정요구 하더라도 받아들일지 미지수"



일본항공 ‘일본해’ 표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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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항공 개인용 항공모니터. 언어를 '영어'로 변경하면 '일본해(See of Japan)'으로 표기가 바뀐다. 문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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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하네다공항을 오가는 일본 국적 항공사인 일본항공(JAL) JL092편.

이 항공기에 최근 탑승했던 K(42) 씨는 기내에서 본인 좌석의 항공용 개인모니터(Audio-Video On Demand)를 조작하다가 깜짝 놀랐다. 현지 항공기 위치를 표기하는 지도가 본인의 위치를 ‘일본해(See of Japan)’ 상공이라고 안내했기 때문이다.

그가 탑승하면서 설정해뒀던 영어 대신 독일어로 모니터 언어 설정을 바꿨더니 독어로도 ‘일본해(Japanisches Meer)’라고 표기돘다. 일어·중어로 설정해도 ‘일본해(日本海)’라는 표현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언어를 한국어로 설정했더니 항공기가 날아가는 장소의 지도상 위치가 ‘동해’로 나타난다. K씨는 “다른 언어는 ‘일본해’로 표기하면서 한국인이 주로 설정하는 한국어로만 동해라는 표기법을 사용한 모니터에 기만당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본값 ‘일본해’…별도 요청해야 ‘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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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항공(JAL) 항공용 개인모니터. 언어를 '한국어'로 설정하면 '동해'지만, 일본어나 중국어로 설정하면 '일본해'로 표기한다. 문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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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항공(JAL) 항공용 개인모니터. 언어를 '한국어'로 설정하면 '동해'지만, 일본어나 중국어로 설정하면 '일본해'로 표기한다. 문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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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김포공항 등 국내 공항을 이용하는 일부 외국계 항공사가 항공기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016년 12월 국내 86개 외국계 항공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외항사의 11.6%(10개)가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거나,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고 있었다. 반면 일본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동해로만 표기한 외항사는 한 곳도 없었다(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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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공항 오가는 86개 외항사의‘동해’표기법. 그래픽=김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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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외항사(88.4%)는 동해와 일본해를 둘 다 표기하지 않는다. 아시아계 국적기 한 곳은 “원래 항공용 개인모니터에 동해의 영문 명칭을 ‘일본해’로 표기했지만, 본사에서 한국과 일본의 민감한 관계를 고려해서 지난 2017년부터 2가지 모두 표기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6년 비공식적으로 외국계 항공사에게 현재 동해 표기 방식을 문의한 결과를 수집한 수치로, 현재 표기방식과는 다소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특별히 동해 표기법을 변경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복수의 외항사 설명이다.



국토부 “시정 강제 조심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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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독일어로 설정해도 표기는 '일본해(Japanisches Meer)'다. 문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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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항공사가 항공기 모니터 상 동해보다 일본해라는 표현을 상대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건 세계 3대 대형 기내용 엔터테인먼트 공급업체가 항공사에 납품하는 지도의 기본값(default value)을 ‘일본해’로 설정하고 있어서다.

이들은 일단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지도를 에어버스·보잉 등 항공기 제작업체에 납품한다. 통상 항공기 제작사가 인계한 항공기를 인수한 항공사는 정책에 따라 보완·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일본해처럼 잘못 표기된 명칭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방식으로 수정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 9개 국적 항공사가 이용하고 있는 항공기는 모두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일본해가 아니라 동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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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항공기 일본노선 비율. 그래픽=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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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용 엔터테인먼트 공급업체가 ‘일본해’를 기본값으로 사용하는 건 세계지도를 작성하면서 국제수로기구(IHO) 정보를 차용하기 때문이다. IHO의 1929년 ‘해양과 바다의 경계’ 책자에서 세계 해양지명 국제표준을 마련했다. 문제는 당시가 일제강점기였다는 점이다. 결국 한국을 강제로 점령하고 있던 1929년 일본이 IHO에 동해를 일본해라고 제출했던 사건이 현재 외항사가 일본해를 주로 표기하는 원인이라는 의미다.

결국 지금 상황에서는 IHO상 공식 해양지명을 동해로 바꾼다면 정부가 항공사에 ‘일본해’ 표기를 변경해달라고 요구하기 용이해진다. 국토부·해수부를 대표해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김지연 외교부 영토해양과장은 “1991년부터 IHO에 동해 수역의 국제표준 이름을 ‘동해(일본해)’로 병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며 “2017년 IHO 총회에서 한국 입장을 밝힌 뒤 전 세계를 상대로 이름을 병기하는 방안을 설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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