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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탈북모자 고립·사망 때까지 ‘아동보호 체계’ 작동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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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빅데이터 e아동행복지원시스템

검진 미실시·건보료 체납 위기신호 외면

서울시, 양육수당 받는 가정 방문조사

주민센터 집 찾아갔으나 모자 못 만나

“최후안전망·복지자원 확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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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지 두달여 만에 서울 봉천동 임대아파트 집에서 발견된 북한이탈주민 한아무개(42)씨와 여섯살배기 아들(2013년 출생) 사망 사건은 취약층에게 유독 높은 ‘복지의 벽’뿐 아니라 부실한 아동보호체계의 민낯도 드러냈다. 아직 부검 결과가 나오지 않아 명확한 사인은 알 수 없지만, 모자는 굶주림 때문에 숨졌을 가능성이 높다. 아동복지법에 따라 사회·경제·정서적 지원이 절실했던 빈곤 아동을 방치한 결과다. 특히 한씨 아들은 뇌전증(간질)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한겨레> 취재 결과, 한씨 아들은 보건복지부가 위기 아동을 조기 발굴해 지원하겠다며 지난해 3월부터 운영 중인 ‘이(e)아동행복지원시스템’에서 위험 징후가 감지됐지만 도움이 필요한 아동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이아동행복지원시스템은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과는 별도로 운영되는데, 사회보장정보시스템(각 부처 복지 대상자 및 수급 이력 정보 관리) 정보와 영유아 건강검진 및 예방접종 실시 여부, 출결 상황 등 아동 관련 정보를 활용해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으로 추정되는 아동 명단을 추려 분기별로 전국 읍면동 주민센터에 넘긴다. 이후 읍면동 공무원은 해당 아동 가정에 직접 방문해 양육환경을 조사한 뒤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올해 3차 조사(7~9월)를 앞두고, 한씨 아들이 영유아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으며 건강보험료 장기 체납 가정에서 살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당시 한씨 아들을 비롯해 41종 정보에서 이상 징후가 감지된 만 18살 미만 아동은 70만명이었다. 요소별로 위험 가중치를 달리해 이 중에서 2만명을 다시 선별했는데, 한씨 아들의 위험도는 지자체에 통보한 2만명에 포함될 정도로 높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아동행복지원시스템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정보도 활용하므로, 아동수당 신청 당시 한씨네 가구 소득인정액(소득 및 재산 합산) 0원·한부모 가족 등의 지표까지 포함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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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 모자 거주지역인 서울시는 복지부 시스템과 별개로 아동 보호를 위해 양육수당(소득과 관계없이 가정에서 영유아를 돌보는 가구에 지원)을 받는 가정에 대한 동주민센터 방문조사를 진행해왔다. 지난해 10월 한씨는 주민센터를 찾아 양육수당을 신청해 숨지기 전까지 지급받고 있었다. 올해 4월 주민센터 공무원이 한씨 집을 찾아갔으나, 집 안에 아무도 없어 현관문에 안내문만 붙이고 돌아왔다. 아동 상황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후속 조처는 없었다. 익명을 요청한 사회복지 공무원은 “지역에 따라 (아동 보호를 위한 가정 방문이 불발될 경우) 후속 대응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제도를 좀 더 세심하게 운영해야 한다”며 “가정 방문은 당사자들이 응해야 진행이 가능한데 ‘어떻게 내 정보를 알았으냐’며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상담을 한 뒤, 막상 해드릴 게 없어 난감할 때도 있다”고 전했다.

복지부는 2014년 ‘송파 세모녀 사망’ 사건 이후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된 채 숨지는 취약층이 발견될 때마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발굴시스템 강화를 주요 대책 중 하나로 내놓았다. 하지만 이런 방향은 과도한 정보 수집이란 우려를 낳는 것은 물론, 취약 가구나 아동을 지원하는 데도 본질적인 한계를 지닌다. 예컨대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 주거지가 일정하지 않은 가구, 다양한 정보가 생성되지 않은 영아 등은 분석 대상이 되기 어렵다.

물론 아동의 경우, 스스로 자신의 어려움을 말하기 어렵고 대다수의 학대 피해가 가정 안에서 은밀히 이루어지므로 정보 연계와 활용이 필요한 면도 있다. 그러나 빅데이터 분석·활용은 문제 해결의 ‘보조적 수단’이며, 위기 아동이 잘 성장하도록 살피는 인력이나 복지 자원이 지금 수준보다 대폭 확충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새로 태어나는 아기가 대폭 줄어드는 추세지만, 대다수 아동 복지서비스는 ‘가난을 증명할 수 있는’ 경우에만 소극적·선별적으로 제공되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 기준 아동·청소년 예산 59조4600억원 가운데 53조7200억원(90.3%)은 유아 및 초중등 교육에 투입됐다. 나머지 5조7400억원 대부분은 보육에 쓰였고, 아동·청소년 복지, 소년사법, 아동폭력예방 사업 등에 할애된 예산은 약 2400억원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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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아동 복지체계)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이는 아동 수를 정해놓고 지자체에 명단을 통보하는 것”이라며 “위기 아동을 찾더라도 (가족 지원 등) 사례를 관리할 사람이 없으면 안된다”고 짚었다. 또 “현재는 아동 보호를 위한 가정 방문이나 사례 관리에 강제성이 없는데 아동수당이나 양육수당, 보육료 지원시 미리 가정 방문 등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위기 아동 문제는, 빈곤·가정폭력·가족 해체 등 여러 어려움을 맞닥뜨린 가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인 한씨처럼 사회적 자본이 미약하고, 빈곤·소외 등 어려움에 처한 보호자가 아동을 제대로 양육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정책이 강화돼야 한다. 이러한 취약층이 ‘최후의 안전망’에 수월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기초생활보장 대상 확대와 인간다운 삶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조처가 시급한 까닭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참고 자료: <사회보장제도 ‘아동의 안전한 성장을 위한 제도·전달체계 심층분석’ 핵심평가>(한국보건사회연구원·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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