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54516533 1102019082254516533 08 0801001 6.0.12-HOTFIX 110 조선비즈 0

'太헤란로' 뒷골목 '小헤란 밸리'가 뜨겁다

글자크기

출근 시간인 지난 8일 오전 8시 30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있는 역삼역 2번 출구에서 인파가 쏟아졌다. 청바지에 면 티를 입은 남성, 민소매에 샌들을 신은 여성 등 편한 복장이 눈에 띄었다. 금융기관이 위치한 길 건너 1번 출구에는 정장 차림의 직장인이 대다수인 것과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2번 출입구에서 나온 이들은 걷거나 전동 킥보드를 타고 논현로를 따라 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구(舊) 역삼세무서 사거리로 향했다. 한 창업보육기관으로 출근 중이라는 오모(24)씨는 "구 역삼세무서 사거리 인근은 스타트업이 많다 보니 출근 복장부터 다르다"고 말했다.

2003년 세무서 이전으로 상권이 침체됐던 구 역삼세무서 사거리가 국내 '제1 스타트업 메카'로 자리 잡았다. 이 '소(小)헤란 밸리'는 'G밸리'로 불리는 '가디'(가산디지털단지)와 '구디'(구로디지털단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판교 테크노밸리보다 빠르게 성장 중이다.

◇G밸리보다 큰 '소(小)헤란 밸리'

고층 빌딩이 즐비한 테헤란로와 달리 구 역삼세무서 사거리 근처는 5~6층 규모의 중층 사무실 건물이 들어서 있다. 사거리 반경 500m에는 창업지원기관인 팁스타운(설립 기관 중소벤처기업부), 마루 180(아산나눔재단)이, 반경 약 1.5㎞ 내에는 드림플러스 강남(한화생명), 네이버 D2 스타트업 팩토리(네이버), 디캠프(은행연합회)가 있다. 이 창업지원기관 5곳에 입주해 있는 스타트업만 약 240개, 인근 공유사무실 약 20곳에 입주한 초기 창업 기업도 300여개가 넘는다. 하반기에는 강남구청도 사거리 인근에 창업지원기관 '강남스타트업센터'를 짓고, 내년에는 아산나눔재단이 '제2마루(가칭)'를 연다.



조선비즈

서울 강남구 구(舊) 역삼세무서 사거리에 있는 창업지원센터 ‘팁스타운’ 전경. 테헤란로에서 약 500m 떨어진 이 주변 지역에 스타트업이 몰리면서 ‘소(小)헤란 밸리’를 이루고 있다. /주완중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소에 따르면 2016~2017년 서울의 창업 법인(6만2693개) 중 역삼동에 있는 곳이 전체의 8.4%(5232개)를 차지했다. 가산동·구로3동에 위치한 G밸리(4318개·6.9%)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판교(경기 성남)에 입주한 스타트업 수의 약 1.5배인 것으로 추정된다.

◇'세무 골목'에 스타트업 모여

'소헤란밸리'의 매력은 편리한 통근, 투자자와의 왕래, 강남이라는 이미지를 '가성비' 있게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역삼세무서가 이곳에 있을 때만 해도 이 사거리는 세무사 사무실과 식당 등으로 붐비는 '세무 골목'이었다. 근처 부동산 중개소 관계자는 "2003년 세무서 이전으로 세무사 사무실이 비고, 임차료도 떨어졌다"며 "세무사들이 쓰던 사무실이라 규모가 10~30평 정도로 아담하고 테헤란로 오피스보다 평당 임차료도 30%가량 저렴하다 보니, 창업하는 사람들 필요에 맞는 것 같다"고 했다. 1990년대 말 테헤란로 오피스 공급 과잉으로 임차료가 떨어지자, 벤처 기업이 몰리면서 '테헤란 밸리'가 만들어진 때와 유사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조선비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내 벤처캐피털(VC) 10곳 중 6곳 이상이 강남에 몰려 있다는 점도 스타트업을 이곳으로 빨아들이는 요소다. 전동킥보드 공유 서비스 '씽씽'의 권영인 최고전략책임자(CSO)는 "국내에서 가장 모빌리티 수요가 많은 곳도 강남인 데다, 다른 창업자와 벤처캐피털 등이 밀집해 있어 업무 미팅, 네트워킹이 수월하다"고 말했다.

강남권의 촘촘한 대중교통망은 직원 ‘복지’로 꼽힌다. 형편이 빠듯한 스타트업 특성상 직원에게 통근버스·교통비 등을 지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팁스타운에 입주한 음성 AI 스타트업 ‘오르비스AI’의 최우용 대표는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은 직원 개개인 역량이 회사에 크게 영향을 미치다 보니 좋은 인재를 유치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곳은 교통이 편하다 보니 경기권 직원까지 편하게 출퇴근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정권 넘어 이어진 투자도 마중물 역할

2013년 디캠프를 시작으로 줄줄이 창업보육기관이 들어선 점도 창업 마중물 역할을 했다. 2014년 마루 180이 들어섰고, 2015년 팁스타운이 조성됐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시장에서 형성된 창업 열풍을 더 살리기 위해 팁스타운을 기존 민간 보육기관이 자리 잡은 구 역삼세무서 사거리에 조성했다”며 “관이 주도하는 형태가 아니라, 이미 민간에서 조성된 생태계에 정부가 지원을 더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전 정부에서 시작한 창업 지원 정책이 계승되고 있다는 점도 이 지역 창업 열기가 꺼지지 않는 이유라고 본다. 팁스타운은 해당 지역 건물을 10년 장기 임차 계약을 맺고 평당 11만원 정도에 입주 기업에 빌려준다. 시세보다 3만~4만원 정도 저렴하다. 김홍일 디캠프 센터장은 “정부의 창업 지원 정책에 대해 업계에서는 잘한다는 평과 부족하다는 의견이 반반”이라며 “하지만 정권이 바뀌어도 꾸준한 창업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대목은 높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양모듬 기자(modyssey@chosun.com);이가람 인턴기자(연세대 신학과 졸업);이관용 인턴기자(한양대 사학과 졸업)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