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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중국어로 읽는 '님의 침묵'… 詩로 한류 도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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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중국어 교사 심형철씨

한용운 시 50편 번역 시집 만들고 고교생 제자들 그린 삽화 실어

만해 한용운의 시를 중국어로 번역한 시선집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세그루/아시아기자협회)가 출간됐다. '중국을 읽어주는 중국어 교사 모임' 대표이자 30년 넘게 중국어를 가르쳐 온 심형철(57) 오금고 교사의 기획이다. 심씨는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시를 중국인에게 자랑하고 싶었다"면서 "독립운동을 하며 쓴 글을 팔 수는 없다고 생각해 책을 시판하지는 않기로 했다"고 했다. 시집은 비매품으로 3000부를 찍었고 중국 대학의 한국어과와 만해기념관 등에 기증할 계획이다.

조선일보

심형철씨는 "'알 수 없어요'를 교과서에서 읽고 나서 한용운 시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고 했다. /심형철씨 제공


심씨가 중국어로 번역한 우리나라 시인은 한용운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엔 윤동주의 시를 중국어로 번역해 시집을 만들었다. 서울 종로구 윤동주문학관에서 한글로 된 시를 갸웃거리며 보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만나고부터였다. '중국인들에게도 윤동주의 시를 읽히고 싶다'는 결심을 알리자 전국의 중국어 교사들이 십시일반 기부금을 보내왔다. 2주일 만에 재원이 마련됐다. 시집은 윤동주문학관에 기증해 찾아오는 중국인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도록 했다.

올해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민족 시인 한용운으로 눈을 돌렸다. 오금고 국어 교사의 도움을 받아 50수를 골랐다.

그는 "교과서에서 한용운의 시를 처음 읽고 가슴을 울리는 묵직한 무엇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면서 "학창 시절 무작정 혼자 암송했던 시를 중국어로 다시 마주하게 됐다"고 했다. "문화적으로 우월감을 가진 중국인들이 많은데 이렇게 훌륭한 한국 시인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심씨가 가르치는 오금고 학생들도 시집에 참여했다. 시 한 편에 하나씩 학생들이 그린 삽화가 실렸다. 한용운의 시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책이나 인터넷으로 조사해보고 너희만의 해석을 해보라"고 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던 아이들이 나름대로 공부를 하더니 멋지게 그림을 완성해 왔더라고요."

번역은 심씨의 오랜 친구인 허동식 시인이 맡았다. 허 시인은 지린성 허룽시에서 태어나 중국 벽촌을 떠돌며 시를 쓰고 있다. 중국 대학에서 소수민족과 실크로드를 공부한 심씨는 매년 전국의 30~50명의 선생님을 이끌고 실크로드 현장 답사를 간다. 2005년 현지 가이드였던 허 시인을 만나 인연이 됐다. 그는 "허 시인에게 번역을 제안했더니 한용운을 존경해서 이미 많은 시를 번역해 놓았더라"면서 "덕분에 생각보다 빠르게 책을 낼 수 있었다"고 했다.

심형철씨는 1980년대 후반부터 교직 생활을 시작한 1세대 중국어 교사다. 중·고등학교 중국어 교과서도 다수 집필했다. 2013년 '중국을 읽는 중국어 교사 모임'을 만들어 '지금은 중국을 읽는 시간'(세그루)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그는 "시집 번역이 사회 곳곳에서 운동처럼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고등학교 선생님이 자발적으로 중국어 번역 시집을 만든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누군가는 우리 시를 프랑스어나 아랍어로도 번역하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K팝이나 드라마뿐 아니라 한국 시로도 한류 열풍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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