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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생들 “너무 늦게 와서 죄송”…숨진 청소노동자 손선풍기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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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노동환경 몰라봐서 부끄럽다”

중앙도서관 추모공간 “학교와 사회 책임” 포스트잇 붙어

근무환경 개선 서명운동도…학교 측은 임시 휴게실 내줘

경향신문

에어컨과 창문 없는 휴게실에서 숨진 60대 청소노동자를 추모하는 공간이 서울대 중앙도서관 쪽에 마련됐다. 20일 오후 학생들이 추모의 글을 적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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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보잘것없지만 제가 가지고 있던 손선풍기 두 대와 약소한 간식입니다. 당장 제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였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으리라 판단해 오게 되었습니다.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하고 그런 만큼 꾸준히 응원하고 실천하겠습니다.”

지난 16일 자신을 경영대생이라 밝힌 한 학생이 서울대학교 제2공학관 지하 1층 남성 청소노동자 휴게실 문 앞에 갈색 선물 봉투를 놓고 갔다. 지난 9일 60대 청소노동자 ㄱ씨가 이 휴게실에서 숨졌다. 학생이 남긴 봉투에는 쪽지, 호박즙, 초콜릿, 두 대의 손선풍기가 들어 있었다. 동료 청소노동자 원모씨(67)는 이 봉투를 5층 비품창고에 보관했다. 그는 “사용해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 학교 중앙도서관 터널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도 손선풍기 한 대가 놓였다. 손선풍기는 창문조차 없는 휴게실에서 숨진 ㄱ씨를 추모하는 상징이 됐다. ㄱ씨가 사망한 그날도 동료 청소노동자들은 휴게실에서 땀을 식히려고 소형 선풍기를 목에 걸고 지냈다.

ㄱ씨를 추모하는 학생들은 늘어나고 있다. 학생단체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공동행동)은 지난 17일 중앙도서관 터널에 추모 공간을 마련했다.

20일 찾은 터널 벽면에 “여기는 302동 청소노동자 추모 공간입니다. 8월9일 금요일, 302동 청소노동자 한 분이 폭염 속 열악한 휴게실에서 휴식 중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을 포스트잇에 담아주세요”라 써진 대자보가 게시됐다. 학생들은 그 옆 전지크기 종이에 추모 포스트잇을 부착했다. “사회 또는 기관의 책임이 개인의 지병으로 전가되지 않기를” “노동자도 엄연한 학교의 구성원이다” 등의 내용이 적혔다. 포스트잇 아래로도 손선풍기 한 대가 놓였다.

이날 경제학부에 재학 중인 이민영씨(24)도 이 공간을 찾았다. 이씨는 “서울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놀랐다”며 “노동자분들이 이런 노동환경에서 10년 넘게 일하시는 걸 전혀 몰랐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다”고 했다. 이어 “학교는 책임을 부인하지 말고 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쉴 수 있도록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서울대 총학생회와 공동행동은 지난 15일부터 청소노동자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서명 결과는 총장실에 전달할 계획이다.

ㄱ씨 사망 이후 공과대학은 7층에 남성 청소노동자 임시 휴게실을 만들었다. 학생들이 스터디룸으로 사용하던 방이다. 학교 측은 ‘환경미화원 휴게실(남)’이라는 표지를 달았지만 정식 휴게실이라고 하지 않았다. 원씨는 “훨씬 넓고 에어컨도 있고 창문도 커서 환기도 잘된다”며 만족하면서도 “임시 휴게실이라 9월 개강 이후에도 이곳에 있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공과대학 시설지원실 관계자는 “7층 휴게실이 정식 휴게실로 확정되진 않았다. 6개월 동안 임시로 쓸 수 있도록 내부에서 결정됐다”며 “정식 휴게실로 쓸 수 있는 장소를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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