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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는 적극적 저항했나?'... 그 판사의 질문이 잘못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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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상관의 부하 여군 성폭력 ④] 욕하고 때려야만 폭행·협박? 재판부에게 '현실감각'을 요구한다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성소수자 여군의 성폭력 가해자인 직속상관과 함장에 대해 각각 징역 10년과 8년형이 선고된 사건이 2심에서 무죄판결이 된 것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공대위는 피해자를 지원하고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해당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서 상고심을 진행 중이다. 이에 공대위는 사건에 대한 법적 쟁점을 포함하여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 군사법원 판결의 문제점 등을 짚는 기획기사를 총 7회에 거쳐 연재할 예정이다. 네 번째 글은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박지영 활동가가 썼다. <편집자말>

아래의 이야기들이 나의 이야기라고 가정해보자. 나는 출근한 지 6개월도 안 된 신입사원이다. 나의 상사는 평소에 다혈질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 대하기 어렵고, 회식 때 술자리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싫어하는 내색이라도 하면 다음 날 고압적인 분위기를 내뿜는다.

심지어 그 상사는 나의 인사 권한을 쥐고 있고, 사무실 내에서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주도권을 갖고 있다. 게다가 우리 회사는 상하관계가 매우 분명한 문화이며 진급(승진) 경쟁이 치열하다. 상상이 가는가? 당신이라면 이런 회사의 상사에게 어떻게 대할 것 같은가? 회식에 가지 않겠다고 적극적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적극적으로 저항' 했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최협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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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항했느냐 묻는 최협의설에 입각한 해석은 구시대적이다. ⓒ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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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야기는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에서 군인인 피해자가 처해있던 상황 중 일부의 이야기다. 지난 2017년 보통군사법원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가해자 A에게 징역 10년을 판결하였다. 피해자는 "폭행, 협박은 없었다"고 진술하면서도 "폭행, 협박이 없었다는 취지는 때리거나 욕을 하지 않았다는 취지이지 간음할 때 팔로 누르거나 체중을 실어서 누르거나 추행을 할 때도 예상치 못하게 기습적으로 바로 만진다거나 하는 건 있었다. (중략) '피해자를 침대로 끌고 가 침대로 내팽개친 후 피해자의 몸으로 올라가 피해자를 눌러 반항하지 못하게 한 후'와 같은 사실들은 모두 경험한 사실들이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법률전문가가 아닌 자로서 법률적 용어인 강간죄 또는 강제추행죄에 있어서의 폭행, 협박의 개념과 일반적으로 쓰이는 폭행, 협박의 개념을 혼동한 것으로 보이며 위와 같은 피해자의 진술에 의하면 강간죄 또는 강제추행죄의 수단으로서 폭행이 인정된다"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위와 같이 피해자가 처한 맥락과 사정을 고려한 원심의 유죄판결을 뒤집고 2018년 11월, 고등군사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강간이나 강제추행이 인정되려면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 하는데 '반항'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폭행'은 없었기 때문에 무죄라는 것이다. 최근 유사한 판결들을 살펴보자면 35세 학원장이 10세 여아를 상대로 성폭력을 저지른 사건에서 피해자가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없었다'는 이유로 미성년자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았고(대신 미성년자 의제강간죄를 적용), 전 도지사 안희정 성폭력 사건에서 '위력은 존재하였으나 행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심 무죄 판결을 내린 사건이 있다.

이처럼 강간죄의 폭행·협박 정도를 좁게 해석하는 것을 최협의설이라 한다.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저항을 하였느냐' 묻는 것도 최협의설에 입각한 해석 때문이다. 상명하복의 문화, 직속 상관의 권력이 폭행·협박이 굳이 없어도 저항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재판부가 이 폭행·협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 있는 게 현실이다.

폭행/협박 없이 발생하는 강간 71.4%

최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에서 2019년 1월~3월까지 접수된 강간(유사강간포함) 상담사례 통계 분석 결과, 직접적인 폭행·협박 없이 발생한 성폭력 사례는 71.4%(735건), 직접적인 폭행·협박이 행사된 성폭력 사례는 28.6%(295건)으로 나타났다. 이 71.4%를 차지하는 현실의 성폭력은 1)피해자와 가해자와의 힘 또는 권력의 차이 2)저항을 할 수 없는 피해자의 취약한 상황을 이용 3)상습적인 학대에 노출되어 저항이 불가한 경우 등 직접적인 폭행·협박이 없이 일어난다.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 1차 의견서, 형법 제297조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동의여부'로 개정할 것을 촉구합니다, 19. 3. 30. 인용)

그렇기에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최협의설로 해석하는 것은 구시대적이다. '2018년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의 형법 제297조 '강간죄'를 개정해 피해자의 자발적인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피해자는 '나중에 협박이나 보복이 두려워 거부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거부랄 게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개를 돌리는 것뿐이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 환경에서, 그 상황에서 피해자는 '최선의 저항'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고등군사법원은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 내지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이 없었다는 최협의설에 입각한 판결을 내렸다. 또한,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고인들이 천편일률적인 방어 전략으로 사용하는 '연인관계였다'는 일방적인 주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피고인들에게 질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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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구 대법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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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법원은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을 심리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고 선고 한 바 있다(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8도7709판결).

이와 같은 판결에도 불구하고, 고등군사법원은 그 당시 피해자를 둘러싼 환경,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의 맥락들을 고려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소위로 임관한 지 6개월도 안 된 여군이었던 점, 피고인들과 피해자의 명백한 권력 관계, 그러한 권력으로 인해 저항할 수 없었던 피해자의 상황, 피해자가 성소수자라는 점, 신뢰하는 최고책임자인 함장에게 직속 상관에 의한 피해사실을 고발했으나 함장에게도 다시 피해를 입게 된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3심에서 피고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질문하라. 본인이 상관으로서 갖고 있는 지위와 권력을 스스로 인식하였는지, 직속 부하인 피해자에게 성적 행위를 할 때 '동의'를 구하였는지, 위의 성폭력 피해를 힘겹게 고발한 피해자의 신뢰를 악용하여 함장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방기하지 않았는지. 대법원이 낡은 '최협의설'에 입각한 고등군사법원의 부끄러운 판결을 기각하고,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정의로운 판결로서 화답하길 기대한다.

*(1) 해군본부 고등군사법원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가해자 A에게 무죄판결을 하였다. 1) 강간 및 강제추행죄 와 관련하여 각 범죄의 수단이 되는 폭행은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 내지 곤란하게 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할 것인데, 이 사건 공소사실에서 이러한 '폭행' 사실이 나타나지 않고, 피해자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폭행' 사실이 증명되지 아니한다", 2) "피고인의 성관계 요구에 피해자가 전혀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않고 스스로 응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팔을 잡아끌어 침대에 눕히거나, 피고인의 몸으로 피해자의 몸을 눌러 성관계를 한 행위를, 간음을 위하여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곤란하게 하는 정도의 '폭행'을 한 경우로 포섭하기는 어렵다."(해군본부 고등군사법원 2018. 11. 19. 선고 2018노195)

박지영 기자(ksvrc@sister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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