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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희가 쏘아올린 작은공 ‘좌절금지’… 청각장애 딛고 ATP 투어 첫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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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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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테니스 기대주 이덕희(21ㆍ서울시청)가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무대서 생애 첫 승을 거뒀다. 1972년 창설된 ATP 투어 사상 청각 장애 선수가 단식 본선에서 이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덕희는 청각장애인들을 향해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며 희망 메시지를 던졌다.

이덕희는 20일(한국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윈스턴세일럼에서 열린 ATP 투어 윈스턴세일럼 오픈(총상금 71만7,955달러) 단식 본선 1회전에서 세계랭킹 120위 헨리 라크소넨(27ㆍ스위스)을 2-0(7-6<7-4> 6-1)으로 꺾었다. 세계랭킹 212위 이덕희에겐 다소 버거운 상대였지만, 집념과 강력한 스트로크를 바탕으로 2세트에선 서브에이스를 9개나 몰아치며 완승을 거뒀다.

청각장애 3급으로 심판의 콜이나 지도자의 작전 지시, 팬들의 응원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덕희가 ATP 투어 대회 단식 본선에서 첫 승을 거두자 ATP 홈페이지는 물론 주요 외신들도 그의 인간승리에 주목했다. 이덕희는 ATP 투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감격해 했다.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경쟁력을 입증한 그는 “일부 사람들이 나의 장애를 비웃기도 하고 내가 좋은 선수로 클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가족과 친구 등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ATP 투어에 따르면 이날 인터뷰는 영어 질문을 한국어로 통역하고, 이를 이덕희 약혼녀에게 전달해 그녀 입모양을 본 이덕희가 질문을 파악한 뒤 대답했다. 이덕희는 “공이 코트, 라켓에 맞는 소리나 심판 콜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공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상대 몸동작 등을 통해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며 그간의 어려움을 전했다.

그의 의미 있는 도전은 6년 전인 2013년 라파엘 나달(33ㆍ스페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제천동중 3학년이던 이덕희가 성인 랭킹 포인트를 처음 따내자 나달은 “이덕희 스토리는 우리가 항상 도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최근까지 부진을 겪다 부활의 신호탄을 쏜 이덕희까지 두각을 나타내면서 국내 테니스계는 정현(23ㆍ한국체대), 권순우(22ㆍCJ 후원)와 트로이카 시대를 열 수 있단 기대에 차있다. 이덕희 은사인 주현상 마포고 테니스부 감독은 이날 본보와 통화에서 ”이덕희가 상반기까지 슬럼프를 겪었고, 자신감도 많이 떨어져있기에 ATP 투어 첫 승 소식이 더 반갑다”며 “이번 승리로 자신감을 회복한다면 자신이 목표한 세계랭킹 100위권 진입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있다”고 내다봤다.

이덕희는 2014년 7월 국제테니스연맹(ITF) 퓨처스 대회에서 16세1개월의 나이로 단식 우승을 차지하며 정현이 2013년 6월 세운 국내 최연소 퓨처스 대회 우승 기록(17세1개월)을 갈아치웠다. 재작년엔 세계랭킹을 130위까지 끌어올렸던 그는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남자 단식 동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이덕희의 2회전 상대는 세계 랭킹 41위 후베르트 후르카치(22ㆍ폴란드)다. 이덕희는 “2회전도 오늘처럼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