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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서 좋대요" 숙박비 2배로 내고도 묵는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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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산지승원 5-2] 안동 봉정사 템플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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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 영산암 가는 길 ▲ 대웅전에서 100m정도 떨어져 있는 영산암.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촬영지로 유명하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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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이어집니다)

지난 5월 산 속의 어스름이 살살 날릴 때 영산암을 찾았다. 영산암은 대웅전에서 100m 가량 떨어져 있는 봉정사 부속암자다. '영산'은 부처가 법화경을 설법을 펼친 영취산에서 유래했다. 108번뇌를 연상케하는 높고 가파란 계단을 오르니 너른 공터와 '우화루'란 현판이 붙은 길죽한 목조건물이 보였다. 살림집을 연상케하는 건물이었다. 암자 주변에 둘러쳐진 돌담은 시골집 뒤뜰을 연상시켰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마당을 가로질러 응진전과 그 옆의 나무 한 그루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수령이 200년도 더 된 향나무는 단단한 바위를 뚫고 나왔으니 그 아래 뿌리는 또 얼마나 단단할까 싶다. 참으로 장한 나무다. 영산암을 지키는 수호목이지 싶다.

정면에 법당인 응진전이 있고 마당을 사이에 두고 관심당과 송암당이라고 쓰여진 요사채가 마주보고 있다. 관심당과 우화루는 툇마루로 연결되어 있어 마당에 내려서지 않고도 오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요사채에는 아무도 없는 듯 조용했다.

응진전 문이 살짝 열려 있고 촛불의 붉은 빛을 타고 염불소리가 흘러나왔다. 간혹 바람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뿐 정적만이 가득했다. 한참을 앉아 있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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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암 응진전 벽에 그려져 있는 봉황 ▲ 영산암 응진전에 봉정사 창건실화를 표현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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짖지도 않고 차 마시는 개

다음날 아침 다시 영산암을 찾았다. 관심당 툇마루에 개 한 마리가 앉아 있다. 툇마루는 원래부터 그 녀석의 자리인지 마냥 편해 보였다. 나를 보고도 짖지 않았다.

"차 한잔 하실래요?"
"네, 감사합니다."


방에서 나온 보살님이 나를 보더니 차를 권했다. 사찰에서 템플복은 일종의 '통행증' 같다. 스님들도 보살님도 한 식구처럼 대해 주시고 많은 편의를 봐주신다. 그리고 흔쾌히 차를 권해 주신다. 템플복의 효력(?)은 봉정사만이 아니라 다른 사찰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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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 영산암 우화루 ▲ 우화루에 앉으면 바깥쪽으로는 영산암 앞마당처럼 너른 공터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안쪽으로는 응진전 등 영산암 내부가 한 눈에 들어온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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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님을 따라 우화루 마루 한 켠에 딸린 '차향실'에 마주 앉았다. 우화루에서 내다보는 안뜰과 바깥 풍경이 참 좋았다. 절이라기보다는 어느 사대부가의 정자같은 분위기였다.

"저 방들은 선방인가요?"
"예전엔 선방이었는데 지금은 템플스테이용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여기서도 템플스테이를 하나요?"
"네, 이곳에서 묵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아요. 가격이 훨씬 비싼데도 말이지요."
"아래쪽보다 불편해 보이는데요."
"네. 오히려 그런 것이 좋다고들 하세요. 옛날 그대로…"


툇마루에 앉아 있던 개도 보살님을 따라 들어와 보살님 옆구리를 툭툭 쳤다. 보살님은 "너도 차 마시고 싶다고?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하더니 작은 대접에 우리가 마신 차와 똑같은 차를 따라 개 앞에 놓아주었다. '설마 개가 무슨 차를 마셔?' 그런데 정말로 개가 차를 단숨에 들이켜더니 대접바닥까지 싹싹 핥아먹는 것이 아닌가.

"스님이 데려오신 갠데 스님이 차를 먹이셔서 지금은 밥먹고 꼭 차를 마셔야 해요. 차를 진짜 좋아해요. 차 맛을 안다니까요. 이 녀석 이름이 '솔'이에요. 솔밭에서 데려왔다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차 마시는 개라니. '솔'은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 방송에도 나왔다고 한다.

영산암은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동승>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다시 보니 영화 속 영산암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그대로였다. 곧 허물어질 것처럼 보이지만 굳건하게 세월을 견뎌내는 모습, 이것이 봉정사 영산암의 매력인가 보다.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자리에 있어주는 모습. 우리들이 누군가에 바라는 그 모습이 영산암에 있는 것이다. 일반 숙소보다 2배나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영산암에 머물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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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암의 명물 차 마시는 개 '솔' ▲ 밥을 먹으면 꼭 차를 마셔야 한다는 영산암 명물 '솔'이. 2백년 넘은 향나무와 함께 영산암을 지키고 있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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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또 다른 부속암자인 개목사로 향했다. 개목사를 놓치면 안되는 이유는 그곳에 '보물'이 있기 때문이다.

영산암 뒤쪽으로 난 솔 숲 사이 오솔길로 쉬엄쉬엄 오르니 40~50분 정도 걸렸다. 빠른 걸음이면 30분이면 충분할 거리다. 개목사 주변은 잘 정돈된 넓은 터와 연못이 펼쳐져 있어, 처음 지어졌을 때는 99칸 대찰이었다고 하는 말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천등산 개목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대문을 들어서니 원통전이 바로 보였다. 원통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으로 측면에 풍판이 달려 있다. 그런데 보물 242호인 원통전은 옛모습이 남아 있다는 설명과 달리 말끔하게 보수공사를 한 모습이었다.

개목사에서 500m 정도 더 오르면 능인대사가 수련하였다는 천등굴이 있다. 봉정사 처사님과 함께 하는 포행길 산책은 개목사까지 다녀오는 것으로 끝났지만, 참가자 몇 명은 천등굴로 향하는 모습이었다.

삶의 위안이 된 주지스님과의 차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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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 주지 도륜스님 ▲ 템플참가자들과 차담을 나누시는 도륜스님. 직접 말려 만드신 매화차와 좋은 말씀을 선물해 주셨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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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공양이 끝나고 템플 참가자들과 주지 도륜스님이 마주 앉았다. 주지 도륜스님이 직접 만든 차라며 참가자들에게 한 잔씩 따라 주셨다. 핀셋으로 새끼 손톱만한 붉은 꽃잎을 찻 잔에 띄워주시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진한 매화향이 방 안에 가득 퍼졌다.

"꽃잎을 얼렸다가 이렇게 한 잎씩 띄우면 그 정취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찻물 위에서 꽃잎이 부드럽게 퍼지더니 금방 딴 꽃잎처럼 통통하게 부풀어 올랐다. 스님에게 매화차 얘기를 듣고 음미하는 사이 한 시간 남짓한 차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차담 중에는 세상살이에 작은 위안이 될 덕담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그래서 편안한 자리였다.

차담이 끝나갈 무렵 스님이 인쇄물을 한 장씩 나눠 주셨다. 종이에는 영산암 응진전 벽화에 그려진 봉황 그림과 '세계문화유산 산지승원 봉정사'라는 문구와 봉정사의 스탬프가 찍혀 있었다.

"봉정사 템플 스테이에 참가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처음 한번 만들어봤어요. 이것도 다 인연인데… 여기 왔다갔다고 뭐라도 있음 좋잖아요."

도륜 스님이 나눠준 종이에는 참가자마다 모두 다른 '좋은 말씀'이 적혀 있었다. 내것에는 "어디서나 주인이 되자 도륜 합장"이라고 써 있었다. 도륜 스님에게 큰 마음을 받은 듯했다.

주지 스님방을 나서는데 어제와 달리 대웅전 마당과 만세루 일대가 훤했다. 대웅전 앞마당과 만세루에 달아 둔 연등에 불이 켜져 있었다. 능인대사에게 선물했던 '천등'도 이리 밝았을까. 요즘처럼 어지러운 세상을 훤하게 비춰주는 '천등'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봉정사 템플스테이는 참으로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스님이 주신 '템플 수료증'과 체험시간에 만든 염주 목걸이는 지금도 책상 서랍 속에 잘 보관되어 있다.

변영숙 기자(rubra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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