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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돼지 2마리 들고나왔다, 동물단체 '화성판 옥자'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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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물권 보호 단체가 축사에서 돼지를 ‘구조’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축사 주인이라고 주장한 네티즌이 이 단체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예고하기도 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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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동물권 행동 단체 '디엑스이 서울(DxE Seoul)은 경기도에 위치한 한 종돈장에서 새끼 돼지들을 데려왔다고 밝혔다. ['Direct Action Everywhere-Seoul'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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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쯤 동물권 보호 단체 '디엑스이 서울(DxE Seoul; Direct Action Everywhere Seoul)'은 자신들의 페이스북 페이지와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한 종돈장(씨를 받는 돼지를 기르는 장소)을 찾아 돼지들을 데려왔다고 밝혔다. 해당 게시물에는 이 단체 활동가들이 한밤중 축사를 찾아가 새끼 돼지 3마리를 데려오는 현장 영상이 첨부됐다.

이들은 이후 게시물 등을 통해 “경기도의 한 종돈장에서 심각한 환경에 노출된 아기돼지 2마리를 구조하고, 사산된 1마리를 들고 나왔다”며 “축사 안에 돼지들이 꼼짝도 할 수 없는 우리에 갇혀 수유를 하고 있었고, 아기돼지들은 오물과 사체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해당 게시물에는 '구조할 권리' '동물해방' 등의 해시태그(#)가 달렸다.

이들은 데리고 온 새끼 돼지 2마리를 각각 ‘노을이’와 ‘새벽이’로 이름 지었다. 이들은 게시물 등을 통해 “노을이는 이미 다리에 심각한 염증이 있어 걷지 못하고 있었지만 치료받지 못했고, 심각한 영양 부족의 상태로 몸집이 두배나 더 작았다. 새벽이는 보기엔 튼튼해 보였지만 귀와 발에 오물들이 끼어 있었고, 심각한 곰팡이성 세균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디엑스이 측에 따르면 두 새끼 돼지는 현재 시골 모처로 보내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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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디엑스이 서울 측이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개한 사건 당시 축사 내부 모습. ['Direct Action Everywhere-Seoul'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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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후 이 게시물과 영상은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지며 논란이 됐다.

시민들의 반응은 양분됐다. 일부는 “돼지들이 구조되어 기쁘다” “더위에 죽은 돼지들도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는 등 해당 행위에 지지를 보낸 반면 일부는 “남의 것을 훔친 게 아니냐” “범죄를 인증하는 거 아니냐”는 등 불법성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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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옥자' 스틸컷. 영화는 주인공 미자가 자신이 키우던 동물 옥자를 축산공장에서 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사진 영화 '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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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소녀가 직접 자신이 키우던 돼지를 축산공장에서 구해내는 내용의 영화 '옥자'를 언급하며 구조활동을 지지하는 반응도 있었다. 한 누리꾼은 "지저분한 환경에 갇혀 사는 동물을 구조하는 모습을 보며 '옥자'가 떠올랐다"면서 "동물을 도울 다른 방법이 없지 않나"라며 동물권 단체를 옹호했다.

하지만 지난 14일에는 해당 단체의 유튜브 채널에는 자신이 종돈장 주인이라고 주장한 한 네티즌이 법적인 대응을 예고하기도 했다.



"절도죄 적용은 논란, 건조물 침입죄는 가능"



이들의 ‘구조’ 행위에 대해 절도 혐의를 적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검찰 출신인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돼지와 같은 가축은 법적으로 타인의 재물이고, 이 경우 절도의 고의성은 인정된다”면서도 “데려온 동물을 소유하거나 잡아먹으려고 한 것이 아닌 ‘해방’하려고 한 것이라면 불법영득의사가 없다고 봐 절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불법영득의사란 남이 가지고 있는 재물을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이용하고 처분할 목적이나 의사를 뜻한다.

이 교수는 “다만 동의 없이 밤중에 무단으로 개인 소유 건조물인 축사에 침입한 만큼 건조물 침입죄를 적용할 수 있고, 또 개인 소유권이 상실됐기 때문에 종돈장 측에서 민사적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종돈장 측에서 동물을 학대하는 등 동물보호법에 의해 주인을 처벌할 수 있는 행위를 했다면 디엑스이 측의 행위도 정당성을 인정받아 민사상 책임을 덜 수도 있다.



동물보호센터로 지정됐는지가 관건



해당 단체가 동물 구조를 할 자격이 있는지도 법적인 논란의 여지가 있다. 동물법학회 수석위원인 차민우 변호사는 “동물보호법상 원칙적으로 지자체장이 동물보호센터로 지정한 특정 기관이나 단체가 동물을 구조하게 할 수 있다. 디엑스이가 그런 지정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시와 경기도가 올해 발표한 동물보호센터 지정 현황에서 디엑스이 서울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차 변호사는 “구조된 동물은 지자체장이 기간을 정해 보호조치를 한다. 보호 중인 동물에 대해 소유자의 반환 요구가 가능하다는 규정이 있어, (구조한다고 해서) 소유권이 박탈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자는 디엑스이 측의 입장을 듣고자 했지만 이들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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