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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골프장서 번개 칠 때 카트 타는 건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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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필드 낙뢰 사고 피하려면

미켈슨 묵던 호텔에 벼락 내리쳐

나무 밑이나 조명등 아래는 위험

그늘집·클럽하우스 안은 안전

중앙일보

지난 6월 US여자오픈 기간 중 골프장 프레스센터 옆 나무에 번개가 내리치고 있다. 나무는 번개에 맞고 갈라졌다(아래 사진). [사진 미국골프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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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에 오른 프로골퍼 리 트레비노(80·미국)는 골프장 번개를 소재로 농담을 하기도 했다. 입심이 좋은 그는 “뇌우가 와서 신경 쓰이면 1번 아이언을 들고 있어라. 1번 아이언은 매우 치기 어렵기 때문에 신도 그걸 맞히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 말을 했던 트레비노도 벼락을 맞은 적이 있다. 1975년 PGA 투어 웨스턴 오픈에서 트레비노 등 한조 선수 3명이 벼락 한 방에 동시에 의식을 잃었다. 3명 모두 화상을 입었으며 트레비노 등 2명은 허리 수술을 해야 했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벼락에 맞을 확률보다 작다는 말이 있다. 벼락 맞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 아니라 희박한 낙뢰 사고를 당할 확률보다 로또에 맞을 확률이 더 낮다는 걸 강조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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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번개에 맞고 갈라졌다. [사진 미국골프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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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골프장 낙뢰 사고는 종종 발생한다. 여름철 골프장에 벼락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국 해양기후협회는 낙뢰 사고의 약 5%가 골프장에서 생긴다고 발표했다. 한국에서도 골프장에서 낙뢰에 의한 사고가 심심찮게 일어난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오프 2차전인 BMW 챔피언십의 최종라운드가 열린 18일 시카고 인근 골프장 주변의 호텔 지붕에 벼락이 떨어졌다. 이 때문에 화재가 발생했다. 꼭대기 층의 펜트하우스에 머물던 필 미켈슨(미국)은 급히 대피해야 했다. 미켈슨은 트위터를 통해 “미친 일이다. 옷과 클럽이 없어 경기에 못 나갈 것 같다”고 밝혔다. 다행히 그는 경기에는 출전할 수 있었다.

지난 6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에서 벌어진 US여자오픈에서는 골프장의 나무를 번개가 때리는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그대로 잡혔다. 현지 언론은 대포 소리가 났다고 보도했다. 나무는 일부 갈라지고 탄 냄새가 났다. 주최 측은 갈라진 나무가 넘어지면 갤러리가 다칠 수도 있어 이 나무를 잘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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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티프 구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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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US오픈 챔피언인 레티프 구센(남아공)은 벼락을 맞고도 살아난 것으로 유명하다. 15세이던 1985년 구센은 친구와 함께 이슬비를 맞으면서 골프를 했다. 티샷이 빗나가 나무 밑에서 공을 찾던 중 하늘이 번쩍하더니 벼락이 옆 나무에 꽂혔다. 40m 떨어져 있던 구센의 친구는 “지면과 젖은 잔디를 통해서 강한 충격이 발로 전해졌다”고 했다.

구센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옷이 번개에 다 탔고,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안경은 얼굴에 상처를 내고 30m 밖에서 발견됐다. 속옷과 시곗줄만 몸에 녹아 있었다. 구센의 눈은 함몰됐고 혀는 목구멍으로 말려 들어가 숨을 쉬지 못했다. 다행히 뒷 조에서 플레이하던 의사의 도움으로 구센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구센의 어머니는 “아들이 어릴 적 성격이 매우 급했는데 벼락 맞은 뒤 침착해졌다. 그래서 큰 대회에서도 우승할 수 있었다”면서 벼락 맞은 사건을 행운으로 여기려 했다.

1991년 US오픈에서는 벼락이 내리치는 바람에 갤러리 1명이 목숨을 잃고 5명이 다쳤다. PGA 투어 최다승을 자랑하는 샘 스니드는 벼락을 피하려 나무 밑에 있다가 나무를 강타한 벼락을 맞고 기절했다. 옆에 있던 사람이 급사하는 모습도 목격했다.

한국 전기연구원과 미국 번개 안전 기구는 번개가 치면 “가능한 한 빨리 안전한 곳으로 피하라. 항상 날씨 예보에 귀를 기울이라”고 한다. 규모가 크고 막혀 있는 건물 내부는 안전하다. 코스 중간의 그늘집이나 자동차처럼 폐쇄된 장소도 안전한 편이다. 그러나 차에서는 가능하면 금속을 만지지 말아야 한다. 반면 골프 카트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위험하다. 햇볕과 비를 막아주는 간이 휴게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큰 나무나 조명등, 국기 게양대 등에 가까이 가면 안 된다. 나무 등 높이 솟은 물체는 벼락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금속과 물 근처도 위험하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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