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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르포]"갑자기 '쩍' 소리에 아파트 무너지는 줄"...수원시 "외벽 균열 아파트 건물엔 이상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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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쩍' 하며 떨어진 환기구…"외벽에 큰 균열 발생했다" 119 신고
수원시 "환기구 연결철물 절단돼 붕괴 위험...즉시 철거"
놀란 주민들 긴급 대피…"이거 무서워서 들어가서 살 수 있나요"

"갑자기 ‘쩍’ 하고 벽이 갈라지는 소리에 놀라,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19일 오전 11시 수원시 권선구의 한 아파트. 수원시청, 경찰, 안전진단업체 등으로 구성된 정밀 안전진단팀이 아파트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이들은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정화조를 열어보고, 정화조와 연결된 배기덕트(환기구)를 살펴보기도 했다. 15층 높이 아파트 외벽에 설치된 환기구는 7층에서 15층까지 연결철물이 모두 떨어져 나간 상황. 이 아파트는 전날 오후 7시 "외벽에 큰 균열이 발생했다"는 신고가 들어와 주민 90여 명이 긴급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아파트 주민 6층 주민 A씨는 "정말 아파트가 무너지는 줄 알고 깜짝 놀라 밖으로 나갔더니 큰 균열이 생겨 있었다"며 "바로 119에 신고를 하자, 곧 경찰들이 와서 빨리 대피하라고 난리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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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7시쯤 수원시 권선구 한 아파트에서 외벽에 고정된 환기구가 떨어져 나가는 사고가 일어났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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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 "정밀안전진단 결과 즉시 철거 결정...건물 자체엔 이상 없어"
이날 오전 10시 30부터 이 아파트에 대한 정밀 안전진단이 이뤄졌다. 전날 시는 1차 육안 감식을 벌인 결과, 환기시설만 붕괴 가능성이 있고 건물 자체의 붕괴 위험은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오후 10시쯤 1~2라인을 제외한 나머지 3라인~6라인 주민들은 귀가 조치했다. 1~2라인은 환기구 부위가 무너지면 파편이 발생할 위험이 있어 대피 상태를 유지했다. 귀가하지 못한 주민들은 경로당과 교회, 인근 모텔 등에 묵고 있다.

수원시는 정밀 안전진단 결과, 아파트 자체엔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이탈된 환기구는 즉시 철거하기로 했다.

이영인 수원시 도시정책과장은 "정밀안전진단 결과 15층 아파트 1~2라인의 7층부터 15층 구간에 아파트 건물과 접합된 정화조 배기덕트(환기구) 연결 부분이 18cm가량 벌어졌다"며 "정화조 배기덕트의 붕괴 가능성이 있으나 아파트 건물 자체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안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해 참여한 전문가들은 만장일치로 ‘환기구 즉시 철거’로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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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11시쯤 수원시 권선구 한 아파트에서 외벽에 고정된 환기구가 탈착하는 사고가 일어나 수원시 관계자들이 안전진단을 하고 있다. /최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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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파트 1층부터 옥상 정화조까지 이어진 환기구를 벽면에 고정하는 연결철물이 층마다 4개씩 있다. 하지만 7층부터 15층까지는 빗물 유입이나 바람 등 외부환경 요인에 의해 부식이 쌓여 연결철물이 모두 절단된 상태였다. 이 환기구는 지난 1991년에서 1992년 사이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시는 이날 오후부터 철거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외부에 안전가시설을 설치하고 3~4일 내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층별로 철거해 크레인으로 옮기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이 아파트 동 주민들은 가스 단절 등 불편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환기구가 위치한 1~2라인 주민들은 철거 작업이 끝날 때까지 출입을 할 수 없다.

◇주민들 "아파트에 무슨 일 있어 불안해...강아지만 데리고 겨우 대피"
주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했다. 주민 백만산(82)씨는 "경찰관들이 빨리 대피하라고 채근해 주기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약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며 "시멘트가 무너지는 등 집에 다른 이상이 생길까 봐 불안하다"고 했다.

수원시 측은 아파트 경로당과 인근 교회에 대피소를 마련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대피하면서, 불편을 호소하는 상황이다. 경로당에 머물고 있던 이 아파트 10층 주민 B씨는 "급하게 대피하느라 생필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키우던 강아지만 데리고 대피소로 왔다"며 "여럿이 생활하는 공간에 강아지를 두기가 어려울 것 같아 시골 집에 잠깐 맡기려고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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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2시쯤 수원시 권선구 한 교회에 마련된 대피소. /최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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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대피소에는 한 노부부가 머물고 있었다. C씨는 "우리 동 뒤에 뭐가 ‘쨍’하고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며 "다른 주민이 119에 신고해서 들어보니까 벽에 1~2cm 균열이 갔고, 안에 있으면 안 된다고 해서 대피했다"고 했다.

일부 주민들은 현장의 수원시청 공무원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대피 주민들은 "가지고 나온 게 하나도 없어서 어쩌냐" "옆 라인을 통해서 옥상까지 올라가서 집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겠느냐"며 항의했다. 결국 수원시는 하루에 1회씩 관리사무소의 입회 하에 주민의 건물 출입을 승인하기로 했다. 수원시청 관계자는 "어젯밤 급히 대피하느라 생필품이나 의복 등을 챙겨 나오지 못한 주민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며 "임시 출입 조치를 승인하게 됐다"고 했다.

이 아파트는 지난 1991년 프리캐스트 콘크리트(PC) 공법으로 건축됐다. PC공법은 미리 공장에서 생산한 기둥과 벽, 슬래브(평판) 등을 현장에서 조립해 짓는 건축 방식으로, 내진 설계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단점이 있다. 이 아파트는 지난 2010년 "건물이 기울어진다"는 입주민 요구사항으로 6개월 간 기울기를 계측했지만, 기울기가 법정 허용 범위 내로 나와 재건축 기준에는 미달됐다고 수원시는 설명했다.

[수원=최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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