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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게이트 고공농성’ 새카매진 엄마 본 딸 “덤덤할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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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 ‘직접고용’ 요구하며 27명 50일째 고공 농성 중

1∼2년 재계약 하청구조, 여성노동자 근속 인정 못 받아

“아빠와 똑같은 3교대 근무하는데 엄마 월급만 왜 낮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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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지금 전화되세요? 어, 저 지금 보이세요? 어딘지 모르겠어요. 저 끝에 계신가본데….”

딸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드는 엄마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엄마는 딸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톨게이트 옥상 10m 위에서 오른쪽 발을 난간에 올려 몸을 기울였다. 50일 가까이 햇볕 아래 새카맣게 그을린 엄마가 웃는 건지 하얀 이만 환하게 빛났다.

지난 16일 오후, 김다은(22·가명)씨는 두 달 만에 엄마를 만나기 위해 경기 성남 서울 톨게이트 앞을 찾았다. 다은씨의 엄마는 한국도로공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지난 7월1일 서울 톨게이트 고공농성을 시작한 요금수납 노동자 정명선(48)씨다.

“덤덤할 줄 알았는데, 막상 엄마 얼굴 보니까 되게 반갑네요. 톨게이트는 자가용이 없으면 오기 어려워서 미처 엄마를 보러 올 생각을 못 했거든요.”

고향인 충북 청주의 오창 톨게이트에서 8년간 요금수납원으로 일해 온 엄마가 ‘시위하러 간다’며 서울에 온다는 소식을 들은 건 6월 말이다. ‘법원 앞에서 또 1인 시위를 하나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엄마의 상경이 ‘고공농성’으로 이어질 줄 다은씨는 꿈에도 몰랐다. 오창 톨게이트 수납원 가운데 자회사 전환을 통한 ‘정규직화’에 반대해 농성에 참여한 건 엄마 ‘명선씨’뿐이다. “날이 너무 덥고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낮 시간대에는 계속 잠을 청하신대요. 몸이 너무 지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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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은씨는 자신이 중학생이었던 8년 전 엄마가 왜 톨게이트 일자리를 구하게 됐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을 앞둔 지금은 엄마와 함께 싸우는 중년 여성 노동자들이 매연과 뜨거운 햇볕 속에서 한여름을 보내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엄마가 어렸을 때 팔을 다쳐서 장애인등록증이 있는데, 톨게이트는 장애인을 채용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서 엄마 같은 분들을 많이 뽑았다고 들었어요. 중년 여성들은 지금 일자리를 잃으면 더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지금의 일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 거죠.”

어린 시절 다은씨의 기억 속 엄마는 ‘늘 일하는 엄마’였다. 초등학교 입학 전의 엄마는 늘상 고된 일에 지쳐 피곤해하거나 소파에 쓰러져 낮잠을 청하는 모습들로 기억된다. 세차장, 카페 서빙, 마트계산원, 은행 텔러 등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이 되기 전 엄마가 거쳤던 일들은 여성 노동자들이 대부분인 저임금의 ‘성별화된 직업군’들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톨게이트에서 8년을 일하고도 한달 평균 150만~180만원의 급여를 받았다. 엄마가 매년 최저임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돈을 받는 건 1~2년마다 재계약이 이뤄지는 탓에 근속연수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은씨는 엄마의 월급이 ‘부당한 임금’이라고 생각한다. “아빠는 20년 동안 제조업 생산직으로 한 직장에서 근무하셨는데 매년 봉급이 올랐어요. 그런데 엄마는 아빠와 똑같이 3교대 근무를 해도 월급이 늘 제자리에요. 엄마가 아빠보다 덜 힘들거나 덜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게 아닌데 왜 엄마 같은 여성 노동자들은 ‘반찬값’ ‘학원비’ 정도의 돈만 받게 되는 걸까요. 진짜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은씨가 “우리 엄마의 일이 아니었어도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의 농성을 지지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이달 30일은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다은씨가 졸업장을 받는 날이다. 엄마는 딸의 대학 졸업식에 무척 가고 싶어 했다. 처음 톨게이트 캐노피에 오를 때 “한 달”을 기약했던 엄마는, 얼마 전 “3개월 안에 돌아갈 것”이라고 말을 고쳤다. 하지만 다은씨는 엄마가 3개월이 지나도 돌아오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고공농성 하시는 분들 보면, 1년 넘게 싸우는 경우가 많잖아요. 아직은 50일 정도니까 이런데… 만약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가까워지면 그땐 저도, 가족들도 감정적으로 흔들리겠죠. 이 싸움이 장기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에요.”

다은씨는 엄마의 농성을 두고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정규직 시켜달라고 떼쓰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비정규직 일자리가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한다. “정규직 노동자도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인데, ‘나는 떼쓰지 않고 비정규직부터 시작할 거다’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이야말로 ‘노예근성’ 아닌가요? 톨게이트 요금수납 업무가 스마트톨링 때문에 어차피 없어질 일자리라고 말하는데, 왜 사람들은 자기 일도 기계가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왜 못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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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안부 전화를 끝낸 다은씨가 집에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자 엄마와 함께 50일을 동고동락한 ‘언니’들이 연신 부부젤라를 불며 ‘정명선 동지’의 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19일 고공농성 50일째를 맞는 뙤약볕 아래 서울 톨게이트 캐노피에는 아직 27명의 여성 노동자가 싸우고 있다.

성남/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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