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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탄 지 한 달 만에 발가락 모두 절단···돌아온 건 권고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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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 절단된 이상국씨, 수술 중에 배는 떠나고 오히려 권고사직당해



경향신문

경기 평택항에 정박해 있는 한 대형 선박이 매연을 내뿜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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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2일, 호주 멜버른 컨테이너 부두에서는 체인블록(거중기)을 이용해 컨테이너를 이동시키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거중기 아래에는 기계를 다룰 수 있는 기관사와 선원들이 있었다. 보통 큰 선박에는 기관장과 3명의 기관사가 있다. 이상국씨(29)는 당시 작업 중이던 배의 3등 기관사였다. 이씨가 탔던 배는 8만톤 규모의 대형선박. 배는 ‘톤’ 단위의 컨테이너를 싣고 세계 곳곳을 누볐다.

거중기가 6톤 무게의 엔진부품을 끌어올릴 때였다. 거중기에 달린 체인이 끊어지면서 엔진부품이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졌다. 기계의 부품이 이씨의 발을 덮쳤다. 발가락 10개가 순식간에 절단됐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당시 사고 현장에는 이씨를 비롯해 기관장과 1등 기관사, 2등 기관사(필리핀 국적), 그리고 필리핀 국적의 선원 2명이 있었다.

1등 기관사가 울기 시작했고 필리핀 선원 2명이 들것을 가져왔다. 기계부품에 깔린 이씨의 발가락은 꺼낼 수 없었다. 호주의 한 병원에서 구급차가 왔다. 기관장은 이씨에게 “걱정하지 마라. 발가락 붙일 수 있게 빨리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이씨가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30분.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발가락은 도착하지 않았다.

사고 후 10시간 가까이 방치

발가락이 도착한 건 오후 8시가 넘어서다. 그마저도 이씨가 호주에 있는 한국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한 후였다. 그동안 이씨는 응급실에 혼자 남겨져 모르핀을 맞았다. 10시간 가까이 방치된 것이다. 의사는 안전화 속에 든 발가락 상태를 보더니 “이미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사고당한 부분을 절단하는 수술에 들어갔다. 이씨는 그렇게 발가락을 전부 잃었다.

현재 호주에 있는 이씨는 기자와의 전화를 통해 “집안형편이 많이 어렵다”고 말했다. 기관사가 되기 전에는 조선소에서 일했다. 2016년즈음 조선경기가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다른 길을 찾다가 눈에 들어온 게 해양 기관사였다. 배의 구조를 잘 아는 데다 해양대를 나오지 않아도 ‘해기사 단기양성과정 교육’ 1년과 6개월의 실습을 마치면 기관사 자격을 딸 수 있어 자신에게 맞는 일이라 생각했다.

조선소에서 모은 돈으로 1년 6개월을 버텼다. 그런데 배를 탄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사고를 당했다. 이씨는 “그날 전문 엔지니어가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엔지니어가 오기 전에 무리한 사전작업을 하다가 사고가 났다”며 “작년에 다른 회사에서도 2등 기관사가 비슷한 사고를 당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게 내 일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수술이 끝나고 깨어났을 때 이씨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근무하던 배는 이미 호주를 떠났다. 화가 난 이씨는 한국의 선박관리회사에 전화를 해서 “너네가 사람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선주와 보험사 등에 연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선박관리회사는 해외 선박을 타는 한국 선원들을 관리하는 일을 한다. 이씨가 탔던 배는 일본인 선주 소유다.

회사는 “잘 처리할 테니 걱정말라”고 했지만 며칠 뒤 이씨가 받은 것은 고용보험 상실 통지서였다. 통지서에는 ‘근로자의 귀책사유에 의한 징계해고, 권고사직’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씨와 회사 관계자의 통화 녹음파일을 들어보면 이씨의 항의에 회사 관계자는 “귀책사유라는 말은 신경쓰지 말라. 권고사직이 되어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회사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도 않은 ‘안전교육’을 사고 전에 했다고 호주 항만청에 보고했으며, 교육을 했다는 증거서류에는 이씨의 서명까지 조작돼 있었다. 이씨는 그런 사인을 한 적이 없다. 입수한 문서를 보면 이씨는 지금까지 한글로 서명을 했다. 안전교육 관련 서류에는 한자로 ‘이(李)’라고 서명이 돼 있다.

한국 회사 측도 이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통화 음성파일을 들어보면 회사 관계자는 “처음에 (이상국씨가) 서명한 문서들 있죠? 그거를 요약해서 선주한테 보고하는 거라서 임의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서명을 해야 하는데 사람이 없으니까 임의로…. 그런데 이건 내부 보고용이지 외부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내부든, 외부든 서명 조작은 말도 안 된다”며 “조작된 서명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안전교육 서류에 서명 조작도

문제는 이씨와 같은 사고를 당한 선원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실이 해양수산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동안 해외에 취업한 선원 중 다치거나 숨진 사람은 어선 선원 123명, 상선 선원이 184명에 이른다. 배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당사자들은 은폐된 사고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 다른 배에서 2년간 근무한 임모씨는 “일을 하다가 발목이 부러지고 인대가 끊어져서 너무 아파 울면서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출항해버렸다”며 “해경이나 119를 부르면 기록이 남으니까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산업재해 신청도 하지 못했다. 통계 밖의 산재다.

이씨 역시 아직 산재를 신청하지 못했다. 심지어 사고 직후 한국의 관리회사는 해양항만청에 사고사실을 신고하지도 않았다. 선원법 제82조는 ‘선박 소유자는 선원의 직무상 사고 등이 발생했을 때는 해양항만청에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선원법 적용 대상이 대한민국 선박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씨가 탔던 배의 선주는 일본, 선박은 라이베리아 국적이다.

6개월째 호주에서 치료 중인 이씨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해고와 서류 조작, 그리고 사고에 대한 사측의 책임을 물을 계획이다. 해고와 관련된 부분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려고 했으나 해고를 당한 시점으로부터 3개월이 지나버려 민사소송으로 진행해야 한다. 이씨는 “내가 당하기 전에는 배에서의 사고가 이렇게 엉망으로 진행되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오영훈 의원은 “해양에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의 보호와 해양사고 대응은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부가 이씨에게 보여준 태도에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번 국정감사에서 선원의 근로환경과 안전시스템에 대한 점검을 통해 대한민국 선원이 어떤 해역, 어떤 선박에서도 안전하게,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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