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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5년간 290조원 투입”…軍 ‘안보위협 대응’ 가능할까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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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연합군의 에이테킴스(ATACMS) 전술미사일이 동해상에 설정된 가상 표적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국방부 제공


국방부가 14일 향후 5년간의 군사력 건설과 운영계획을 담은 2020~2024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했다. 내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290조5000억원을 투입해 구현할 국방력 강화의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다. 방위력 개선사업에 103조8000억원, 전력운영비 186조7000억원을 책정한 국방중기계획이 실행에 옮겨지면, 올해 46조6000억원이던 국방예산은 내년부터 연간 50조원을 돌파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북한의 핵과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에 대응하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필요한 핵심 군사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이를 위해 국방부는 적 전자장비를 무력화하는 전자기펄스탄(EMP)과 전력망 파괴용 정전탄 개발 등을 국방중기계획에 포함했다. 하지만 재정 여건 등을 감안하면 국방중기계획이 예정대로 실행되기는 어렵다는 지적과 함께 “국민을 안심시키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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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14일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진수된 독도함급 대형수송함 2번함 마라도함(LPH-6112). 독도함과 같은 배수량 1만4000t급의 마라도함은 1000여 명의 병력과 장갑차, 차량 등을 수송할 수 있고, 헬기와 공기부양정 2대 등을 탑재할 수 있다. 마라도함은 시운전을 거쳐 2020년 말 해군에 인도될 예정이다. 부산=연합뉴스


◆경항모에 합동화력함까지…첨단무기 개발 ‘속도전’

이번 계획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업은 합동화력함과 경항공모함 건조다.

2020년대 후반에 전력화될 예정인 합동화력함은 미 해군이 1990년대 중반에 구상했던 아스널 십(Arsenal Ship)과 유사한 개념이다.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5500t급) 수준의 크기로 만들어질 합동화력함은 함대지미사일을 대량 탑재, 지상 표적을 타격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북한이 휴전선 이남의 한미 연합군 탄도미사일 기지를 공격하면, 해상에 떠 있는 합동화력함에서 함대지미사일을 쏘는 제2격(second strike)을 감행할 수 있다. 북한이 장거리 대함공격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황을 감안했다는 평가다. 군은 합동화력함 2~3척을 건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형수송함-Ⅱ라는 사업명으로 진행될 경항모 건조는 내년부터 선행 연구를 시작해 2030년대 초에는 전력화를 완료할 방침이다. F-35B 수직 이착륙 스텔스 전투기 10여대를 탑재할 것으로 알려졌다. 3만t급 수준으로 유럽의 경항모와 비슷한 크기에 해병대 병력 300여명 등을 태우고 상륙작전을 펼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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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F-15K 전투기가 훈련을 위해 활주로를 이륙하고 있다. 공군 제공


항공 분야에서는 F-15K 전투기 성능개량이 이번 계획 기간 내 진행될 예정이다. 2000년대 도입 이후 일부 개량이 이뤄졌으나 레이더를 비롯한 전자장비 성능이 우리나라보다 F-15를 늦게 도입한 싱가포르보다 뒤떨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군은 F-15K 레이더를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로 교체하고 전자장비와 무장 등을 개량할 방침이다. 싱가포르의 F-15SG와 사우디 F-15SA에 탑재된 APG-63V3 AESA 레이더와 F-15SA의 전자전장비인 DEWS 등이 거론된다. 영국 BAE 시스템즈가 개발한 DEWS는 기존 F-15에 장착된 아날로그 전자전장비를 디지털 방식으로 개량한 것으로 AESA 레이더와 연동, 전투기의 생존률을 높여준다.

이와 함께 차기 조기경보통제기 사업도 본격 추진된다. 현재 운용중인 E-737 4대 외에 2대를 추가 도입해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및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감시에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후보기종으로는 미국 보잉 E-737과 스웨덴 사브 글로벌아이가 꼽힌다. E-737은 기존에 운용중인 기체로 비용 절감 등의 장점이 있으나 미래 전장에서는 뒤떨어진 기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아이는 지상과 해상, 공중 감시가 가능한 기종이나 E-737에 최적화된 공군의 운용구조를 넘어서는 게 관건이라는 평가다.

이외에도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에 탑재될 것으로 전망되는 함대공미사일-Ⅱ 사업은 미국제인 SM-2 함대공미사일과 유사한 수준으로 국내 개발하게 된다.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개발 당시부터 제기됐던 지대공 요격미사일인 철매-Ⅱ를 함대공미사일로 개조하는 방안 등이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군 정찰위성은 2023년까지 전력화한다. 1조2200억여원을 투입하는 이 사업의 완료 시점이 기존의 2024년에서 1년 앞당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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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여건 고려한 소요조정 이뤄졌나

국방부는 이번 계획 예산이 방위력 개선비 103조8000억원, 전력운용비 186조7000억원을 합쳐 5년간 290조5000억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연간 규모로는 58조원. 계획대로라면 내년부터 국방예산 50조원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하지만 예산을 퍼붓는다고 전력증강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똑똑한 소비’를 통해 꼭 필요한 분야에 예산을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산을 집중하려면 전력소요검증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육해공군은 자신들에게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무기를 도입하기 위한 소요를 국방부나 합참 등에 제기한다. 합참에서도 무기 소요를 제기하거나 검증하는 등의 작업을 진행, 중복 소요나 불요불급한 사업을 걸러내게 된다.

문제는 이번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소요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인 부분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해군의 사업에서 이같은 부분이 발견된다.

경항모 건조가 대표적이다. 국방부는 지난달 경항모 건조 사업을 2026년 이후 전력도입계획인 장기소요로 결정했다. 그런데 한 달만에 국방중기계획에 포함돼 내년에 착수하는 것으로 일정이 앞당겨졌다. 장기계획이 한 달 만에 중기계획으로 바뀌어 예산이 책정돼 연구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장기소요 결정 이후에 진행되는, 경항모가 실제로 필요한 무기인지 검증한 뒤 예산배정 여부를 따지는 국방중기계획 논의 단계는 한 달만에 끝낼 수 있는 절차가 아니다. 수조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인데도 ‘속도위반’에 가까울 정도로 신속하게 사업이 집행되는 과정에서 소요검증이 제대로 이뤄졌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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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의 전술함대지미사일이 가상 표적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합동화력함 사업도 마찬가지다. 미 해군이 아스널 쉽을 추진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은 잠수함 위협에 취약하다는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었다. 대(對)잠수함 전력이 막강한 미 해군도 이같은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마땅치 않았고, 핵추진항모가 있는 상황에서 지상공격에 특화된 수상함을 건조하는 것은 중복투자라는 지적이 더해지면서, 아스널 쉽은 오하이오급 전략핵추진잠수함에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탑재하는 방식으로 전환됐다. 미 해군보다 대잠수함 전력이 약한 우리나라에서 합동화력함 건조가 적절한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대목이다. 핵추진잠수함에 지상공격용 미사일을 탑재하는 방안이 효과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링스 해상작전헬기 성능개량도 “도입한 지 오래된 헬기를 굳이 개량할 필요가 있느냐. 새로 도입하는 것이 더 낫다”는 반론이 나온다.

재정 여건을 제대로 살폈는지 여부도 의문이다. 경항모는 함재기인 F-35B와 해상작전헬기, 상륙기동헬기와 전자장비 구매 등까지 합치면 수조원에 달하는 비용이 소요된다. 여기에 합동화력함 2~3척과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6척 건조까지 합치면 10조원이 넘는 비용이 투입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함대공미사일 개발, 장보고-Ⅱ 잠수함 성능개량 등의 사업을 고려하면, 소요예산은 더욱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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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원이 기동훈련 도중 상륙돌격장갑차에서 하차해 전방 경계를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신규사업이 예전보다 줄어든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우리 군의 미래 전력구조가 어떻게 변화할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 국민들의 안보불안을 덜어주는 것이 국방중기계획이다. 그런데 이번 계획에서는 그런 점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국방중기계획의 핵심은 무기를 새로 들여오는 사업의 규모”라며 “이번 계획은 과거보다 신규사업이 줄어든데다 4차 산업혁명을 앞세우면서 국민들이 안보태세 확립을 체감하기에는 미흡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국방중기계획은 우리 군의 전력증강은 물론 국민들의 군에 대한 신뢰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군 당국으로서는 그만큼 많은 신경을 써서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 계획을 수립하면서 재정 여건 등을 철저히 고려해 효율적인 전력증강이 이뤄지도록 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단지 “미국이 쓰고 있으니 우리도 도입하자” “미국제와 유사하게 무기를 국내 개발하자”는 식의 사업 추진은 예산 낭비만 초래할 뿐이다. 한국이 현재 처한 위협과 미래의 위협, 향후 정부재정 수준, 기술발전 추세 등 수많은 요소들을 감안해야 할 이유다. 디테일은 바뀌더라도 원칙은 변함이 없어야 군의 전력증강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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