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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은 열여덟만 앓나요? 여전히 자라고 있는 강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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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의 심스틸러]

‘열여덟의 순간’의 어설픈 교사 오한결

옹성우·신승호 등 학생들 이끄는 중심축

코믹·브로맨스 이어 새로운 모습 보여줘

조정석처럼 희비극 오가는 배우로 성장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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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열여덟의 순간’에서 사제지간으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옹성우와 강기영. [사진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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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월화드라마 ‘열여덟의 순간’은 천봉고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학원물이다. 위태롭고 미숙한 ‘프리(Pre) 청춘’들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본다는 작품 소개처럼 겉보기엔 다 컸지만 속은 조금씩 덜 자란 아이들의 이야기다. 친구 대신 누명을 쓰고 강제전학 온 최준우(옹성우)는 유일한 가족인 엄마와 떨어져 사는 탓에 외로움이 습관이 된 아이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권력자 마휘영(신승호)이나 우등생 유수빈(김향기)도 결핍이 있긴 마찬가지. 완벽주의자 부모의 그늘 아래서 그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저마다 어두운 그림자를 키우고 있다.

이들이 조금씩 자아를 찾아가는 것이 극의 큰 줄기이지만,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인물은 따로 있다. 2학년 3반 부담임 오한결 역을 맡은 배우 강기영(36)이 바로 그 주인공. 스스로 ‘인서울’도 하지 못한 자격 없는 교사라 여겨 왔지만, 아이들이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함께 멈춰 서서 고민을 곱씹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영어 수행평가 주제로 ‘꿈’이란 제시어를 던져 놓고도 정작 본인 꿈은 “하루종일 리미티드 에디션 제품 언박싱하기” 같은 답변을 내놓는 철부지였지만, 빠르게 교사의 자격을 갖춰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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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의 순간’에사 교사 오한결 역을 맡은 강기영은 친구 같은 선생님으로 등장한다. [사진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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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절대 학생들을 다그치거나 몰아세우지 않는다. 대신 솔직하다.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반장 마휘영의 말에 발끈해 담임으로서 권위를 다잡아야겠다 마음먹고, 변화를 기대하지 않는 학생들을 향해 “세상이 그리 비정하지만은 않다”고 큰소리쳤다가도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꼬리를 내리고 작전을 수정한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다른 어른들과 달리 쪽팔리면 쪽팔린다고, 무서우면 무섭다고 터놓는다. 교실 안에 있는 학생뿐 아니라 교사도 함께 성장통을 앓고 있음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본인의 부족함을 알기에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그것을 채워나가는 데도 능하다. 문제아로 낙인 찍힌 최준우에게는 무한 신뢰를 보내며 부반장으로 앉히는 등용술을 발휘하고, 이를 통해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는 독재자 마휘영을 견제한다. 세련되거나 능수능란하진 않아도 마음을 움직이기엔 충분하다. 앞장서서 이끌어가는 리더는 아니어도 옆에서 함께 걸어가는 조력자가 되어주는 셈이다.

아이돌 그룹 워너원 출신 옹성우와 웹드라마 ‘에이틴’의 주역인 신승호가 첫 드라마 도전에도 헤매지 않고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는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을 터다. 흔히 처음 정극을 하다 보면 잔뜩 힘이 들어가 있기 마련인데 이들은 힘을 줘야 할 곳과 빼야 할 곳을 명확히 구분한다. 이처럼 강기영이 가운데서 중심을 잘 잡아준 덕분에 3반 친구들의 연기는 어디 하나 모난 곳 없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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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귀신님’에서 부주장방 역을 맡은 강기영은 능청스러운 연기로 눈도장을 찍었다. [사진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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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조력’은 그의 전문분야이기도 하다. 2009년 연극 ‘나쁜 자석’으로 데뷔해 2014년 ‘고교처세왕’으로 드라마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줄곧 주인공의 친구로서 감초 역할을 맡아왔기 때문이다. ‘오 나의 귀신님’(2015)에서는 부주방장 허민수 역으로 스타 셰프 조정석 곁을 지켰고, ‘김비서가 왜 그럴까’(2018)에서는 유명그룹 부회장인 박서준의 친구이자 사장으로 함께 했다. 누구와 함께하든 남다른 케미를 선보인 덕에 ‘브로맨스 전문’ 배우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는 쉬워 보이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수식어이기도 하다. 남녀 관계의 로맨스는 주고받는 대사와 감정이 비교적 명확히 설정돼 있지만, 남자 주인공 간의 브로맨스는 어디까지나 배우 하기 나름이다. 지문으로 표현되지 않는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탓이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사람 대 사람으로 친해져야 케미가 생긴다고 생각해 사석에서 많이 만나는 편”이라고 비결을 밝힌 바 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은 물론 부지런함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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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서가 왜 그럴까’에서 박서준과 브로맨스를 선보인 강기영. 코믹 연기에 능하다. [사진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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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준ㆍ박민영 등 동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애드리브 역시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튀어나오는 순발력과 유머 감각도 중요하지만 철저한 준비 없이는 힘든 일이다. 상대 배우와 대본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안 하니만 못한 애드리브가 되기 십상이니 말이다. ‘싸우자 귀신아’(2016)에 이어 ‘김비서가 왜 그럴까’를 함께 한 박준화 PD나 ‘고교처세왕’ ‘오 나의 귀신님’ ‘역도요정 김복주’(2016~2017) 등 세 작품 연속 호흡을 맞춘 양희승 작가 등 제작진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마 이번 작품이 끝나고 나면 그는 훌쩍 자라 있을 것이다. 남다른 공감 능력을 발휘해 한명 한명의 눈높이를 맞추다 보면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질뿐더러 깊이 역시 달라질 테니 말이다. 그가 롤모델로 꼽는 차태현이나 조정석처럼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는 얼굴을 갖게 되는 건 결국 시간 문제 아닐까. ‘열여덟의 순간’ 뿐만 아니라 스물여덟, 서른여덟의 시간에도 부지런히 자랄 수 있다는 건 배우로서도 행복한 일이겠지만, 시청자와 관객으로서도 반가운 일이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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