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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한국군 코멘터리]GSOMIA '조건부 파기’ 선언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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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6년 11월 23일 당시 한민구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에 사인을 하고 있다. 당시 국방부는 국민들의 반발을 의식해 협정식 장면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국방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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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는 지금 시계 두개가 ‘최종시간’을 향해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다. 먼저 ‘연장이냐, 파기냐’를 결정해야 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시계가 오는 24일을 마감으로 시곗바늘을 돌리고 있다. 그 옆에서는 일본의 경제보복조치인 화이트리스트(수출우대국) 배제조치의 시곗바늘이 효력 발생일인 오는 28일을 향해 째깍거리고 있다.

정부는 일본의 경제보복 초치에 맞서 GSOMIA 파기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일본이 ‘안보상’ 이유로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는데 ‘안보협력국’을 전제로 한 GSOMIA 유지는 상호 모순이기 때문이다. 반면 GSOMIA 파기는 한·일관계 뿐 아니라 한·미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일부에서는 한·미·일 안보협력 틀을 유지하면서 일본에 대한 대응조치도 되는 방안으로 GSOMIA를 연장하되 ‘정보공유의 일시중단’을 선언하는 조치를 제시한다.

이처럼 여러 입장이 있지만, 이제는 정부가 ‘GSOMIA 조건부 파기’를 하루라도 빨리 선언해야 할 때이다. 오는 24일까지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GSOMIA는 파기될 수밖에 없다고 발표해야 한다.

한국은 GSOMIA를 파기해도 한·미·일 정보보호약정(TISA)을 활용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한측이 GSOMIA를 파기하면 미·일도 TISA를 통한 정보제공을 거부할 수 있고, 한·미 동맹이나 한·미·일 안보 협력 틀이 무너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GSOMIA는 한·미·일 안보협력 사안의 전략적 옵션 중 하나일 뿐, 전부가 아니다. GSOMIA는 2016년 한국의 탄핵정국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 미국이 강요한 협정이다. 당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9%가 GSOMIA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GSOMIA는 표면적으로 북한에 대한 대응 차원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은 GSOMIA 체결을 압박한 당사자인 만큼 ‘결자해지’ 차원에서 GSOMIA 유지를 위해 일본 정부에 압박을 가해야 하는 게 도리다.

세부적으로 보면 GSOMIA는 상호 호혜적 정보교환이지만, 현재는 일본에 매우 유리하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대응은 조기경보가 핵심임을 감안하면 한국이 제공하는 정보는 일본 안보에 지대한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GSOMIA가 파기되면 일본의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많은 외교 전문가들은 GSOMIA를 파기하면 한국이 미국의 외교적 지원을 받아내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하고, 미국의 동북아 핵심전략은 더욱 친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이는 GSOMIA가 한·미·일 관계의 핵심이며, 미국은 한·미동맹보다 미·일동맹을 더 중요시한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즉, GSOMIA를 파기하면 한·미동맹이 약화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주장은 한국은 미·일동맹의 종속변수 정도임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거나 마찬가지다.

현재 한·미·일 관계는 상당한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이 추구하는 한·미·일 안보구조가 동등한 대칭적인 것이 아니라, 한·일 관계를 미·일 관계 밑에 두는 계선적인 하부구조로 만들려고 한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수직적 한·미·일 계선구도 속에서 GSOMIA가 한국의 전략적 역할과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파기하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미국은 일본의 경제침략 도발을 묵인하고 있다.

경향신문

한일 국방장관이 지난 6월 1일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국방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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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지난 12일 “(지난달 방미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미국이 한·미·일 공조를 더 중요시하는지, 재무장한 일본을 위주로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을 종속변수로 아시아 외교정책을 운용하려 하는지를 파악하려 했던 것”이라며 “미국이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 생각을 하면 관여를 할 것이고, 무장한 일본 위주로 아시아 외교정책을 하겠다 하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차장의 말대로 미국이 한·미·일 안보관계보다 일본의 재무장을 더 중요하게 판단한다면, GSOMIA 파기를 무시할 것이다. 반면 한·미·일 3각관계를 중요시 한다면 일본이 경제도발을 중지하도록 나설 것이다. 특히 미국이 만일 일본과 경제도발을 협의하지 않았다면, 동북아 안보질서를 한·미·일 구도로 가져가기 위한 첫걸음인 GSOMIA의 파기 상황을 그대로 지켜볼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GSOMIA 카드’는 미국에게 한·미·일 안보체제를 유지하려면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침략을 중지시키라는 궁색한 요구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현실이다. 미국은 3국 안보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도 한·일간 경제전쟁에 개입해 더 이상 피해를 확산시키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한국 정부는 GSOMIA 파기를 통해서라도 일본의 화이트국가 배제조치 중단을 시도해야 한다. 상대방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카드를 사용조차 하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GSOMIA 파기 선언은 일본이 지난달 각의 결정을 하기전에 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일이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 효과는 반감되기 때문이다. GSOMIA 파기는 또 박근혜 정부 이전으로 한·일 관계를 복원하는 것일수도 있다.

동맹관계를 강화시키는 것은 상호 신뢰다. 일방적 요구나 일방적 양보는 신뢰 상실로 이어진다. 한미동맹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지나치면 지나치다고 이야기 해야 동맹이 강화된다. 한·일간 생존적인 경제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미국 심기를 건드릴까 우려해 GSOMIA 파기조차 결정하지 못하는 나라는 비정상 국가다.

설사 정부의 GSOMIA 파기 선언에도 불구하고 미·일이 아무런 행동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한·미동맹이 견고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차원의 의미가 나름 있다. 아무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원하는대로 방위비 분담금 6조를 준다 하더라도 한·미동맹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현실에 눈뜨게 될 것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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